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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상상사전] ‘손’
2015년 03월 13일 (금) 15:46:56 유선희 기자 tjsgml881101@naver.com
   
▲ 유선희 기자

김수로와 이승기의 공통점은 뭘까? 둘 다 본래 자기 분야를 뛰어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골고루 제 역량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배우인 김수로는 화려한 입담과 탁월한 예능감각으로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승기 역시 가수이면서 연기자로 인정받았고 ‘허당’ 캐릭터로 한때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활약했다. 어느새 김수로와 이승기 이름 앞에는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한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떤 역할도 잘 소화해내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다. 요즘 기업도 다재다능한 ‘멀티(Multi)형 인재’를 선호한다.

멀티형 인재를 원하는 시대에 발맞춰 기술도 함께 진보해왔다. 애플사에서 개발한 아이폰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 곧 다중작업을 가속화했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음을 뜻하는 ‘멀티태스킹’은 이제 핸드폰에서도 가능하다. 애플사는 핸드폰 기기 안에 검색기능, 고화질 사진기능, 음악기능 등을 넣어 아이폰 하나만 갖고도 대부분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했다. 최근 선보인 구글글라스도 안경에 부착된 손톱만한 기기로 인터넷 검색과 사진•동영상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기술의 첨단을 보여준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멀티태스킹 ‘덕분에’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발로 뛰어다니며 했을 일도 이젠 손으로 몇 번만 클릭하면 해결할 수 있다. 동시에 다양한 업무처리가 가능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TV나 영화 보기, 음악 감상 등 여가활동도 편리하다. 더 이상 사람들은 mp3나 노트북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 손만 바쁘게 놀리면 업무처리나 여가활동을 간편하고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폰 하나로 편리하게 업무처리나 여가활동을 할 수 있다. '손'으로 모든게 해결되는 사회는 인간관계까지 바꿔놓고 있다. ⓒ kbs 화면 갈무리

‘멀티형 인재’와 ‘멀티태스킹’이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숨어있다. 멀티형 인재가 선호되는 사회에서는 하나만 잘해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남들보다 외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나거나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 등이 있어야 주목받는다. 그러고 보면 학점을 포함해 외국어점수, 봉사활동, 인턴경험 등 이른바 ‘스펙’을 탄탄하게 만들려는 요즘 20대의 몸부림은 이상할 것도 없다. 멀티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전념하고 싶은 일을 상당부분 포기해야 하고 같은 영역에서 남들과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경쟁사회로 내몰린다. 

멀티태스킹으로 손이 바빠진 시대는 인간관계까지 바꿔놓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친구와 직접 만나 얼굴을 보는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SNS) 안에서 ‘손’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SNS에서 인간관계는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된다. 친구가 올린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트위터 글을 퍼 나르는 것은 관계 유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손으로 이뤄지는 인간관계가 의무적이거나 별 의미 없는 ‘클릭질’에 불과하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이라는 광장이 시공간을 초월한 까닭에 만나는 사람의 범위도 넓어졌지만 깊이 있는 관계가 지속되기는 어렵다.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위해 멀티태스킹이 포함된 기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무엇으로 여겨지나 보다. 

한병철도 <피로사회>에서 멀티태스킹의 역설을 지적했다. “멀티태스킹은 문명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수렵자유구역의 동물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습성”이라고 꼬집었다. 수렵자유구역 동물들은 야생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법으로 멀티태스킹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멀티형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멀티태스킹 기술개발에 골몰하는 개발자들도 결국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한병철은 멀티태스킹을 “퇴화”라고 결론지었다. 천편일률적인 스펙 쌓기 경쟁을 하고, 인간관계까지 ‘손’으로 맺는 이 시대는 과연 진보하는 걸까, 퇴화하는 걸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5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올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을 졸업하고 <한겨레>에서 인턴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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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기자]
단비뉴스 전 취재부장, 환경팀
진실에 더 가까이 간다면, 그 어느 후미진 곳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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