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 안 돼 다툼...‘닭장’같은 공간 불날까 걱정도
[가난한 한국인의 불안 2부] ⑤ 고시원

 

서울 청룡동 서울대입구역 부근 4층짜리 건물에 자리 잡은 H고시원. 폭 1m도 안 되는 복도가 미로처럼 얽혀있고 복도를 따라 15개의 방들이 늘어섰다. 맨 위층으로 올라가 구석에 있는 방을 열어보니 왼쪽 벽면에 바싹 붙인 침대가 눈에 띈다. 1인용 침대인데 폭이 성인 남성의 팔 한쪽 너비밖에 되지 않는다. 누워보니 조금만 뒤척여도 바닥에 떨어질 것 같다. 벽지는 도배를 한 지 몇 년이 지났는지, 침대 주변과 전등스위치 등 손발이 닿는 곳마다 누런 때가 꼬질꼬질하다. 문 주변 등 모서리 부분의 벽지는 닳아서 벗겨져 있다.

침대 오른쪽으로는 좁다란 옷장과 책상이 벽을 따라 놓여있다. 이것들이 차지하는 면적을 빼면 사람이 디딜 수 있는 방바닥은 신문지 한 면 정도 넓이밖에 되지 않는다. 방 크기는 한 평(3.3제곱미터)을 조금 넘을까. 밖으로 난 창이 없어 월세는 창 있는 방보다 5만 원 싼 28만원. 문 옆으로 에이포(A4)용지 두 개만한 창문이 복도를 향해 뚫려 있다. 

옆방으로 가보았다. 밖으로 난 창이 있지만 방 한가운데 기둥이 튀어나와 좁기 때문에 창이 있는 다른 방보다 월세가 3만 원 싸다고 한다. 기둥을 중심으로 뒷쪽에는 침대가, 앞에는 옷장과 책상이 간신히 자리 잡았다. 안쪽으로 열리는 문이라 사람이 드나들려면 의자를 책상에 밀어 넣어야 한다. 책상 위와 벽면을 채운 수납장에는 식기 등 생활용품이 꽉 차 있고, 천장에는 세탁소처럼 빨래가 옷걸이에 주렁주렁 걸려있다. 각 층에 한 개씩인 세탁기를 놓고 15명이 경쟁하는 것도 힘들지만, 빨래를 널고 말릴 공간이 따로 없다는 것도 고역이라고 한다. 

▲ 청룡동 고시원의 침대 매트리스와 벽지에 누런 때가 가득하다 ⓒ 김지영

한 평 남짓한 방, 천장엔 빨래가 주렁주렁

각층에는 두 개의 공동 화장실과 한 개의 주방이 있다. 두 개의 화장실 중 한 곳은 세면대, 샤워기와 변기가 한 공간에 있는데, 누군가 용변을 보는 동안에는 씻을 수 없다. 세면시설이 없는 다른 화장실은 대변기 하나만 놓여있다. 변기와 양쪽 벽 사이의 공간은 주먹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여서 앉은 채로 양 다리를 벌리면 무릎이 벽면에 닿는다.

층별로 하나씩 있는 주방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와 전기밥솥, 가스레인지가 있다. 냄비와 같은 조리기구는 각자의 것을 쓴다. 가정용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할 만한 대용량 냉장고를 열자 김치냄새가 진동한다. 안에는 검은색, 혹은 투명한 흰색 비닐봉지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각자 자신들의 반찬을 구분 짓기 위해 싸놓은 것인데, 일일이 열어보지 않으면 뭐가 뭔지 모를 것 같았다.

▲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양벽면에 닿는 청룡동 고시원 화장실 (위), 바로 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기 때문에 구부정하게 서서 소변을 봐야 하는 신림동 고시원의 화장실 (아래) ⓒ 김지영

서울 신림동 삼성초등학교 부근의 G고시원.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에 있는 방들은 두 평 정도 넓이에 거리로 난 창이 있는데 월세가 28만원으로 저렴했다. 가장 가까운 전철역이 버스로 10분 거리여서 교통이 불편하다는 게 주된 이유라고 한다. 이 곳에 사는 안민수(25·가명·휴학)씨는 “창이 있어 덜 갑갑하지만 춥고 시끄러워 잠을 자기 어려운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말, 그 방에서 하룻밤을 자보았다. 이불을 깔고 누우니 등은 따뜻했지만, 얼굴이 시렸다. 바닥에서는 온기가 올라왔지만, 창과 문틈으로 바람이 새어들고, 벽면 단열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리 내지 않는 인간'으로 살다 우울증

방음이 되지 않는 것도 괴로웠다. 다른 방에서 문 여닫는 소리, 컴퓨터 음악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좁은 공간을 얇은 자재로 갈라 붙인 고시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몇 달 전엔 안씨의 친구가 놀러왔는데, 다른 방 입주자가 두 사람이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찾아와 시끄럽다고 싫은 소리를 하는 바람에 말다툼까지 벌였다고 한다. 이렇게 고시원에 살다보면 라디오나 전화통화 따위를 조심하는 것은 물론 음식 먹는 소리, 커피 마시는 소리, 심지어 기침 소리도 죽이게 돼 ‘소리 내지 않는 인간’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 공간 절약을 위해 침대 발치 부분이 책상 아래로 들어가 있는 신림동의 한 여성전용 고시원 방. ⓒ 유라

3년 전 서울 노량진의 한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던 추승미(30·가명·여)씨는 ‘닭장’같은 공간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생활에 우울증을 얻어 넉 달 만에 포기하고 귀가했다고 한다.

“방 안에서 삼각 김밥을 먹다가 갑자기 설움이 복받쳤는데, 소리를 내면 안 되니까 입을 막았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제가 제 목을 조르려고 하는 거예요.”

서로 모른 체 하는 공간 "외로운 짐승 같아"

대전 유성구 궁동의 5층 건물에 자리한 M고시원. 지방 국립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수현(26·가명·여)씨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책상에 정강이를 부닥친다. 공간을 절약하느라 침대 발쪽이 책상 아래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양팔을 벌리면 두 벽을 만질 수 있는 좁은 공간이지만, 연로한 부모에게 생활비를 타서 쓰는 이씨는 감지덕지다. 특히 아침식사를 주고, 점심 저녁에도 전기밥솥의 밥과 냉장고의 김치를 꺼내 먹을 수 있는데, 월세가 22만원에 불과한 게 다행이다. 예전에 노량진에 있을 때는 월세가 2배 가까이 됐다.

이 곳엔 한 층에 40개가 넘는 방이 있고 미로 같은 복도가 화장실, 샤워실, 주방으로 이어진다. 주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좀처럼 서로 아는 체 하지 않는다.

▲ 신림동 한 고시원의 거실에 있는 냉장고와 세탁기. 사용금지 시간 등 거주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이 붙어 있다.  ⓒ 유라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여기 들어온 거 아니잖아요. 그냥 못 본 척 해요.”

주방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샤워실을 쓸 때는 괴롭다. 때에 찌들고, 미끈미끈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샤워실에서 벽이나 바닥에 몸을 닿지 않게 하려 무척 신경을 쓴다. 그나마 밤 12시가 지나면 시끄럽다고 샤워실 사용을 금지하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샤워를 한 뒤 조금 더 자는 경우도 있다. 세탁기를 쓰는 것은 더 고역이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면 흰 수건이 점점 회색이 돼요. 빨래를 해도 말릴 곳도 없고요.”

이 씨는 매달 생활비 70만원을 받아 방값 22만원과 학자금 대출 이자 8만원을 낸다. 학원비는 25만 원이다. 그러면 15만 원이 남는다. 휴대전화는 가장 싼 요금제를 쓰고, 학원은 걸어 다니고, 밥은 점심만 사 먹는다. 친구도 만나지 않는다. 2주에 한 번 정도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 먹으며 컴퓨터로 미드(미국드라마)를 보는 게 그녀의 유일한 사치다.

“밤에 모니터 앞에서 치킨을 뜯으며 미드를 보면 좋은데, 어쩔 땐 내가 짐승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외로운 짐승. 주위에 아무도 없고........”

대학 졸업 후 2년째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그녀는 “만일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면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갈 수 있을 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위험한 줄 알지만 싸니까 산다

이 씨처럼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타지에서 온 대학생, 독신 저소득 근로자에게 고시원은 가장 저렴한 주거공간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일반적인 전월세 임대에 비해 보증금 등 목돈이 없어도 입주할 수 있고, 최저 월 20~30만 원에 방값과 식대, 관리비까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형 쪽방’이라고 할 만큼 좁고 불편한 공간인데도 가난한 독신자들이 몰리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올해 초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집계한 데 따르면 전국의 고시원은 지난 2009년을 기준으로 모두 6126곳. 이 중 80%인 4977곳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있으며, 서울에서는 관악 동작 강남 서초 송파 등 5개구에 43%가 몰려 있다. 각종 학원이나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 고시원이 많이 모여 있는 셈이다.

서울의 고시원 수는 3738곳으로 2007년 대비 약 20%가 늘었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경제위기 이후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주거 사정이 더 나빠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고시원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고시원협회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전국의 고시원 거주자는 약 25만 명으로 추정된다.

최근 들어 고시텔, 원룸텔, 리빙텔 등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있는 고시원 중에는 월 50~60만 원 이상을 받는 ‘고급’ 시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상당수는 냉난방이 잘 되지 않는 불편과 소음, 공동시설 사용의 번거로움 외에 화재 등 재난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은 방, 좁고 구불구불한 복도, 제구실을 못하는 비상구, 미흡한 소방시설 등으로 자칫 불이 났다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

서울 구로동의 한 고시원에서 2년간 생활했다는 박상진(27·가명·휴학)씨는 “고시원에서 화재가 났다는 뉴스를 들을 때 마다 혹시 내 일이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박씨가 묵었던 고시원에선 한겨울에 너무 추워 전기장판을 많이 썼는데, 과열로 불이 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료를 따로 내지 않기 때문에 고시원에서 쓰지 말라고 해도 몰래몰래 다 쓰는 분위기였다. 화재의 위험을 가까이 느끼면서도 박씨가 2년간 고시원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학교 주변에 그만큼 싼 방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걸 알지만, 내 분수에 맞는 나만의 방이었다고 생각해요.”

몇 차례 고시원 화재 사건이 일어난 뒤 당국이 시설기준을 강화하면서 고시원 거주자들은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시원들이 방재를 위한 리모델링으로 벽면 재질을 바꾸고 스프링클러(살수기)등을 설치하면서 방값이 뛰었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지역은 월 55~60만 원이상을 내야하는 고시원이 늘고 30만 원 아래 방은 찾기가 힘들어지면서 이 지역에서 식당보조, 청소 등 비정규직 일을 하는 근로자들이 더 먼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소형 공공임대주택, 특히 보증금을 목돈으로 요구하지 않는 임대시설을 대거 늘려 숨통을 터주길 바라지만,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주거 난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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