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반기 도입 방침...더 강력한 ‘토빈세’ 요구도
[두런두런경제]홍기빈 제정임의 경제뉴스따라잡기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정확히는 세금(tax)이 아니라 거시건전성부담금이라고 해서, 영어로 뱅크 레비(bank levy)라고 합니다. 국세청 등 세정당국이 걷는 게 아니라 한국은행이 걷어서 별도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 부담금을 내는 주체는 우선 은행들입니다. 국내은행과 외국은행국내지점들인데요, 정부는 부과 대상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외국에서 빌려오는 비예금성 부채, 즉 외화 예금이 아닌 장단기 외채에 일정비율의 부담금을 물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물린 것인가는 아직 미정인데요, 1년 미만의 단기외채에 대해서는 총 금액의 0.2%, 1~3년의 중기외채에 대해서는 1%, 3년 이상 장기외채에 대해서는 0.05%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환위기 리스크 높이는 단기외채 억제에 초점
홍: 이렇게 부담금을 물리는 게 어떻게 외환위기 예방에 도움이 되나요?
제: 지난 97년 아시아위기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의 경험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은행들은 외국에서 싼 이자의 자금을 만기 1년 미만의 단기부채로 잔뜩 들여와서 국내기업들에게 중장기로 대출했는데요, 국제금융시장에 불안요인이 생기니까 한꺼번에 대출금 회수요구가 밀어닥쳤습니다. 그 때문에 97년에는 외환위기를 겪었고, 2008년에는 원달러환율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의 충격을 크게 겪었죠. 이번에 신설하는 은행세는 외채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일종의 ‘과속방지턱’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정비율의 부담금을 물려서 외채의 기대이익을 낮추고, 무분별한 외채도입에 제동을 걸게 되니까, 외채가 그만큼 덜 들어오게 되고 따라서 나중에 급격히 빠져나갈 때의 위험부담도 완화한다는 것입니다.홍: 외환위기 때 문제가 됐던 건 주로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인데요, 왜 중장기외채에도 은행세를 물리나요?
제: 처음엔 단기외채에만 물리는 방안을 놓고 정부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당국의 설명은 일단 대외지불능력과 거시경제안정성을 따질 때 외채의 총량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모든 외채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은행들이 단기 외채를 중장기로 위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문제도 있다고 합니다. 다만 장기로 갈수록 위험도가 낮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부담금의 요율을 차등해서, 즉 장기일수록 낮은 부담금을 물려서 가급적 단기 외채 도입을 억제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모든 투기적외환거래에 세금 물리는 토빈세보다는 약해
홍: 외환유출입을 규제해서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흔히 토빈세(tobin tax)가 거론되는데, 은행세는 토빈세와 어떻게 다릅니까?제: 토빈세는 말 그대로 세금(tax)입니다. 정식 국가재정으로 들어가는 돈이라는 점에서 거시안정성부담금과 차이가 있습니다. 또 토빈세의 부과대상은 투기적 성격이 있는 단기외환거래 전체입니다. 은행 뿐 아니라 모든 경제주체가 가진 외국자금이 국내에 들어와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할 때, 또 청산하고 나갈 때 일정비율의 거래세를 물리는 것입니다. 은행세, 즉 거시건전성 부담금이 외채의 총량에 대해 한 번만 납부하는 것이라면, 토빈세는 단기외환거래에 대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세금을 물립니다. 그래서 투기성 외자의 유입은 물론 유출까지 규제하는 수단으로 토빈세가 훨씬 강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홍: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외국자금이 한꺼번에 빠져서 주가 폭락, 환율 급등의 소동을 겪는데요, 외자의 급격한 유입 뿐 아니라 유출도 막기 위해서는 토빈세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요?
실효성 있는 규제 수단 갖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어야
홍; 그러면 사실상 토빈세를 도입한 브라질의 경우 외국투자자들이 달아나 버리는 부작용이 있었나요?
제: 브라질은 토빈세의 개념을 자기 나라 실정에 맞게 응용해서 도입한 사례인데요, 금융거래세를 도입한 이후에도 너무 많은 달러가 몰려서 통화가치 절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브라질 경제가 워낙 급성장 중인데다, 금리가 연 10% 내외로 높아서 금융거래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자금 등이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외국투자자의 선택은 토빈세 유무가 아니라 그 나라에 얼마나 이익의 기회, 즉 수익을 올릴 기회가 있는가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토빈세와 같은 규제수단을 한쪽으로 확실하게 가지면서 다른 한 쪽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여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홍: 은행세도 보기에 따라 자본유입 통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외국에서 여기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않나요?
제: 만일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전에 우리가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 했다면 그런 시비가 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로벌금융위기로 세계 모든 나라가 이른바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개별국가의 방어수단이라는 차원에서 은행세를 도입하는 데 대해 시비를 걸지 않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각국은 외환안정성 보다 재정수입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다양한 내용의 은행세를 이미 도입했거나 곧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도 대형금융회사들에게 은행세를 물려 구제금융에 쓴 돈을 회수하려고 했는데, 일단 의회 반대에 부닥쳐 있는 상황입니다.
*이 기사는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와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방송 내용은 <손에 잡히는 경제> 12월 22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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