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삶의 언어로 시와 기사를 씁시다
[저널리즘스쿨 문사철특강] 도종환 시인
주제② 아메리칸 드림, 유로피안 드림

우리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보다 잘 살고 있는가

“이야기하다가 객관성과 현실성이 떨어지고 너무 낭만적으로 가면, 시 쓰는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감안해서 들어주세요.”

도종환 시인은 학생들을 편안하게 한 뒤, 꽃이 향기로 자신을 부르는 듯한 감상에 젖었던 얘기를 꺼냈다.

▲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 ⓒ 이슬기

“4월 어느 비 내리는 날, 달콤한 향기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라일락 꽃나무가 있어요. '꽃나무 향기구나. 꽃나무가 나를 왜 부르지?' 다가가 봤죠. 향기는 꽃의 언어잖아요.”

그는 “시를 쓰는 사람들은 사물을 새롭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시인은 남들이 사용하지 않은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은 사물과 사람, 현상의 이면을 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동물들의 행동, 곧 동물행동학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벌은 동료가 춤추는 모양을 보면, ‘아, 어떤 방향 얼마 떨어진 곳에 꿀이 있구나’하고 알잖아요. 저는 이 춤이 벌의 언어라고 봐요. 수천, 수만 마리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동물 중에 개미가 있잖아요. 개미는 냄새가 언어입니다. 새도 언어가 있어요. 소리의 음절을 바꿔서 ‘쉬어 가자’, ‘속도를 높이자’고 대화를 하니까요.”

그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자기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미도 마찬가지다.

“매미로 생존하는 기간은 1주일밖에 안돼요. 짝짓기를 위해 우는 건데,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생각하지만 매미에겐 절박한 일이죠. 봄에 새들이 울죠? 우는 것은 수컷이에요. 암컷에게 자기 존재를 알리고 선택 받기 위해 절박하게 우는 거죠.”

그는 새들의 짝짓기는 사람의 짝짓기와 너무나 비슷하다고 했다. 수컷 새가 암컷에게 선택 받으려면, 잘생겨야 하고, 먹이를 많이 물어다 줄 능력이 있어야 하고, 둥지가 있어야 하는 건 사람과 똑같다고 했다. 동물 세계에서는 암컷에게 더 많은 권한이 있기에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수컷이 아름다워졌다.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씨는 <여성시대에는 남성도 화장을 한다>에서 여성의 권한이 커진 시대에는 여성뿐 아니라 여성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남성도 화장을 한다고 썼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습니까? 이걸 외치는 역할을 하는 게 기자 아닌가요?”

그는 시인과 언론인의 역할이 비슷한 데가 많다고 했다. 현상의 이면에 들어 있는 진실, 곧 실체를 보는 것이 기자의 삶이라면, ‘우리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보다 잘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시인의 삶’이라고 말했다.

“맑은 물하고 흐린 물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는 충북 보은의 깊은 산속에 황토집을 지어뒀다. 글 쓸 일 있으면 그곳에 간다. 집 주위에 과수원 말고도 꽃나무들이 많단다. 사람들은 대개 복숭아나무, 배나무를 보면 과일이 맛있을까를 미리 생각하지만, 나무 하나를 일년 내내 지켜보면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고 한다. 꽃이 필 때부터 잎이 무성할 때, 열매 맺을 때, 모든 것을 떨구고 빈 몸으로 겨울을 견딜 때……. 이렇게 지켜보다 보면 ‘이거 한 개 따먹을까’ 하는 생각보다 ‘어떻게 이런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는 것이다.

꽃은 예쁜 꽃에 집착하지 않고 내실 있는 열매에 집착한다. 나무들은 어디에 있든 자기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삼을 줄 안다. 그는 “그런 것이 내가 애정 어린 눈으로 나무를 봐줬기 때문에 복숭아나무, 사과나무가 내게 해 준 말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 나무들보다 잘 살고 있을까?

한번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금강 가에 수련회를 간 적이 있었다. 한 참석자의 아들로 보이는 여섯 살쯤 된 아이가 도 시인에게 물었다.

“아저씨, 맑은 물하고 흐린 물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맑은 물이 이기는 방법은 없어요?”

“맑은 물이 계속 흐르면 이기겠지.”

그는 아이의 '철학적' 질문을 통해 그 수련회에서 얻어 가야 할 것을 모두 얻었다고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이 맑아지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지식인과 종교인, 그리고 언론인의 역할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도 특별한 게 없는데 이걸 국민 상당수가 봤잖아요. 현실에서는 김마준 같은 사람이 돈과 권력, 명예를 갖고 비정상적 방법으로 이기려 하지만, 드라마는 권선징악으로 끝나면서 착하게 사는 사람들의 소망을 채워줍니다. 결국 맑은 물, 곧 선이 이긴 거고 거기에 시청자들이 반응한 거죠.”

성공한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 그는 그것을 ‘공감능력의 차이’에서 찾았다.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은 선별적으로 듣지 않는다. 남을 대할 때, 인정할 줄도 알고, 동의할 줄도 알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도 안다고 했다. 
 

▲ 강연 중인 도종환 시인. ⓒ 이슬기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善(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선)’은 먼저 내가 덕을 갖추고, 그 다음에 이웃과 가까워져서 이웃을 깨우면 이웃이 새로운 사람이 되고, 우리가 함께 선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뜻이에요. 성공하는 사람은 주눅들지 않아요. 김탁구도 그러잖아요. ‘가르쳐주시면 될 거 아니에요’라고.”

아메리칸 드림에서 유로피안 드림으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방식이 우리네 삶의 방식이 된 점을 안타까워했다. 제레미 리프킨은 ‘유럽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한다’고 했다.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고,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우리의 삶을 끌어온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삶의 질에 주목한다’고 도 시인은 말했다. 이제는 우리도 ‘Well-dying하려면 Well-being해야 한다(아름답게 죽으려면,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질 높은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보다는 유로피안 드림에 주목해야 하고, 나아가 우리 현실에 맞는 ‘코리안 드림’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제안했다. 한국에 맞는 것을 찾아서, 우리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 행복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소설가 김별아 씨가 강허달림에 대해 쓴 칼럼(한겨레 8월31일치)을 인용하며 청춘의 삶을 얘기했다.

“아름다운 것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어찌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이 20대죠. 그 마음이 아름다운 것. 상상력, 의지, 그게 청춘이고요. 그런 청춘 같은 자세로, 지금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낭만적인 언어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전해졌다.

담쟁이는 수천 개 잎을 이끌고 벽을 넘는다

행복한 삶의 조건은 무엇일까? 돈과 여유? 평화 혹은 좋은 환경? 도종환 시인은 핀란드가 이런 조건을 고루 갖춘 나라라고 말했다. 핀란드는 국민소득 4만 달러, 국제학업성취도평가 1위 국가다. ‘유로피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담쟁이와 같은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시, <담쟁이>를 읊으면서 얘기를 이어갔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물과 흙 같은 생존의 필수조건이 결여된 이곳, 바로 벽이다. 담쟁이는 최악의 생존 조건인 벽에서 살아간다. 벽을 뚫을 순 없어도 붙들고 있으면서 말이다. 나 하나 잘났다고 혼자 가는 게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간다. 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않으면서 악조건을 아름답게 바꿔나간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벽을 넘기보다 허물어뜨리는 쪽을 선택했어요. 4.19혁명이나 갑오혁명 때도 그렇듯 위인의 희생이나 혁명을 통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담쟁이는 그보다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어요. 담쟁이는 벽을 벽으로 받아들였고 다른 담쟁이와 함께 넘어갔죠.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어요. <담쟁이>는 제가 직장을 잃어 좌절했을 때 쓴 시입니다. 저 역시 제 시를 통해 위안을 얻었지요. 담쟁이는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침착하게 벽을 넘었습니다. 시련이 때로는 개인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시련을 받아들이되 함께 넘어갑시다.”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문사철특강>은 도종환, 김진석, 한홍구, 이권우, 이주헌, 장승구 선생님이 맡았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를 방학 동안 <단비뉴스>가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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