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되는 천주교 ②] 정의를 위해 거리로 나선 사제들

지난해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식이 열렸다. 시복식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나 생전에 덕행이 뛰어났던 교인들을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의식이다. 최초의 한글교리서인 <주요교지>를 집필한 정약종(1760~1801) 등 124명이 이날 복자의 반열에 올랐다. 실학자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신유박해(1801)의 광풍 속에서도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 만민평등을 당당히 외치다 참수됐다.  

한국 천주교는 순교자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세상은 온갖 방식으로 신앙을 포기하거나 시대에 순응할 것을 요구했지만 순교자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주저 없이 목숨을 버렸다. 교황은 시복식 강론을 통해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해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이 말한 순교자들의 유산은 오늘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거리의 사제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억울한 이들과 함께 

지난해 12월 8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미사’가 열렸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마련한 미사였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등 소송에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고법에서 받았던 정리해고 무효 판결로 희망에 부풀어 있던 해고노동자들은 터져 나오는 절망의 눈물을 주먹으로 닦아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 윤충렬(47) 부지회장은 자신들처럼 좌절하고 소외당한 이들과 함께 해 주는 사제단에 크나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미사'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는 윤충렬 씨. ⓒ 조수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이 있어 주셨어요. (쌍용차해고관련 사망자를 위한) 대한문 앞 분향소가 강제철거 당할 때도 같이 계셨는데, 결국 같이 연행되고 구치소에서도 며칠 동안 같이 있었습니다. 사제단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사제단 신부님들을 보면 종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신앙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사제단은 지난 2013년 4월 8일부터 11월 18일까지 225일간 서울 대한문 앞에서 ‘매일미사’를 열었다. 매일미사가 정리된 후에는 매월 둘째주 월요일마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과 경기도 평택의 쌍용차공장 굴뚝농성장 앞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미사를 이어가고 있다. 사제단은 재개발 철거민 등이 희생된 용산참사 현장에서도,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는 ‘밀양 할매’들의 농성장에서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끌려 나가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함께 고초를 겪어왔다. 

“쌍용차 문제는 비단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쌍용차라는 빙산의 일각 아래 더 많은 고통과 절규들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쌍용차 문제는 이 사회가 돌아가는 세계관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그냥 지켜볼 수 없었고 지금까지 같이 해오고 있는 겁니다.” 

사제단 상임위원인 장동훈 빈첸시오(42) 신부는 자본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 세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돈이 절대기준이 되면서 사람도 돈으로 환산되고, 인간성·사랑·평화·상생·나눔 등 비물질적이거나 보이지 않는 가치는 모두 쓸모없게 여겨지면서 인간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사제단은 사람들의 아픔과 동행하고 연대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를 주고자 한다. ⓒ 조수진

“참 종교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잃어버린 것을 찾게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가요. 인간이란 가치입니다. 저희의 역할은 인간이란 가치를 되찾도록 영감을 주는 겁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자본에게 버림받았지만 자본을 굴리는 것 역시 인간인 만큼 그들의 상처는 결국 인간에게 받은 상처라고 장 신부는 말했다. 서로 상처주고 아프게 하는 게 인간이지만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인간뿐이라는 게 장 신부의 믿음이다. 사제들은 인간이 인간을 치유할 수 있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 대한문 앞에서 225일간 열었던 매일미사의 주제를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로 잡기도 했다. 그는 “사제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한 모습으로 무력한 사람들의 아픔과 동행하고 끝까지 연대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를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출범한 정의구현사제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역사는 4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74년 7월, 강원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1921~1993)는 ‘유신헌법 무효’라는 양심선언으로 구속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9월 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신부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결성한 조직이 정의구현사제단이다. 사제단은 교회 안에서는 복음화 운동을, 사회에서는 민주화와 인간화를 목표로 활동한다.

사제단은 자발적인 결사체여서 조직의 틀이나 규모가 명확하지 않다. 사제단에 가입하기 위해 작성해야 할 원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회원 명부나 정관 등도 없다. 물론 조직을 관리하는 대표와 총무, 상임위원 같은 의사결정기구는 존재한다. 특정 사안에 대해 사제단 내부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결집하기로 의견이 모아지면 전국의 사제들에게 연락이 간다. 이에 응답할지 여부는 사제 개인이 자율적으로 정한다고 한다. 

사제단은 70~80년대 군사정권의 폭압에 정의구현이란 구호로 맞서며 민주주의 수호 활동을 벌였고,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도 인권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미사를 이어갔고,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4대강 사업 반대와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시국선언 등을 했다. 최근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1987년 6월 항쟁 촉발에 큰 역할을 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런 사제단의 사회참여에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보수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인 서석구(72) 변호사 등은 지난 2012년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을 만들어 성직자들의 사회참여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모임의 이계성(75) 대표는 사제단 신부들이 용서와 화해, 평화와 사랑이라는 가치에 배치되는 언행으로 신자들을 교회와 등지게 만든다고 성토했다.

“신부님들의 역할이 뭡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용서와 화해, 사랑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제단은 사람들에게 증오와 갈등, 폭력을 전하고 심어주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분열과 갈등만 심화시키고 있는 겁니다.” 

사제단 전 총무인 김인국 마르코(53) 신부는 성당에서 공동선이나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 일부 신도들이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치적이며 세속적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국적으로 진행했을 때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서울의 한 신자가 “본당신부 나오라”며 소란을 피운 일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마음이 아파요. 신자들이나 시민들은 성당이 아닌 세상에 살기 때문에 세상이 보여주고 믿으라는 대로 믿죠. (하지만) 사람들이 오해하고 불편해한다고 이런 말을 피해간다면 스스로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거죠. 세상에 불이 나면 자다가 일어나 주변사람들을 깨워야지, ‘고요한 밤 거룩한 밤’만 이야기한다면 그건 세상을 망치는 무서운 범죄죠.”

정의를 지키기 위한 길에서 비켜서지 말라 

김인국 신부는 ‘연대’가 약자들의 무기지만 그 연대는 너무나 연약하고, 유동적이며 일시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政)재(財)관(官)학(學)언(言)’이라는 강자들의 ‘동맹’은 구조적이며 상시적인 ‘철옹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람을 뽑았다가 마음대로 내버리는 배척과 배제의 시스템은 과거보다 더 악랄하고 세련되게 약자들을 괴롭힌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그러나 교회가 연대와 동맹 어느 한 쪽만 미워하거나 편들 수 없다고 말한다. 연대든 동맹이든 그 안에 든 것은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 김인국 신부는 "연약한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악한 시스템에 저항하며 마음의 심지에 불을 켜야 한다"고 말했다. ⓒ 조수진

“성서는 ‘높은 산은 깎아내리고 깊은 골짜기는 메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높은 쪽은 자꾸 높아지고 낮은 쪽은 갈수록 낮아지기만 하면 결국 공멸하고 말 겁니다.”

김 신부는 높은 산을 이루는 1%는 자신의 기득권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깊은 골짜기를 이루는 나머지 99%는 당장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악한 시스템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약한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당장 나에게 불행과 파국이 닥치지 않았더라도 언제가 맞닥뜨릴 수 있는 일로 여기고 마음의 심지에 불을 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신부는 “오늘날 부유해진 교회들도 깎여야 할 높은 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3년 직접 작성해 배포한 <복음의 기쁨>에서 “교회는 정의를 지키기 위한 길에서 옆으로 비켜 서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데 관심을 기울이자”고 강조했다. 김인국 신부는 지난해 12월 13일 쌍용차 해고노동자 두 명이 평택공장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설 자리가 없어 굴뚝으로 올라간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비 맞는 사람 곁에서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제들의 ‘무력한 사랑’은 그렇게 이 땅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가 어루만지는 그의 행보에 천주교도가 아닌 국민들도 큰 위로와 감명을 받았다. 늘 낮은 곳을 살피고 못 가진 이들과 함께 하려는 그의 모습은 세속화된 종교인과 대비되며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그늘진 곳에서 억압받는 이들과 묵묵히 함께 해 온 한국 천주교 사제들의 존재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천주교회가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함께 하는 현장에 찾아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종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기록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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