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되는 천주교 ①] 고통 받는 이에게 다가가는 사제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가 어루만지는 그의 행보에 천주교도가 아닌 국민들도 큰 위로와 감명을 받았다. 늘 낮은 곳을 살피고 못 가진 이들과 함께 하려는 그의 모습은 세속화된 종교인과 대비되며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그늘진 곳에서 억압받는 이들과 묵묵히 함께 해 온 한국 천주교 사제들의 존재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천주교회가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함께 하는 현장에 찾아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종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기록했다. (편집자)

 “우리 아이를 잃고 신부님과 수녀님을 뵀을 때 처음으로 하신 말이 ‘준형이 어떤 아이였냐’고 물어보신 거였어요.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자세히 알려달라시며. 다들 아이 얘기 꺼내기 어려워하고 언제부턴가 TV에서나 주위에서나 다들 잊으라고 할 때도 계속 아이 얘기를 해달라고 하세요.”

장소희(36·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씨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조카 장준형(단원고2)군을 잃었다. 준형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생모가 집을 나간 후, 일 때문에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와 두 고모가 아이를 돌봤다. 아들 같던 준형이를 잃은 장씨를 더 힘들게 했던 건 ‘고모가 조카 보험금 욕심낸다’는 주위의 오해 섞인 시선이었다. 슬픔과 분노를 덜고 싶어 안산 합동분향소 부근에 정부가 마련한 심리상담소를 찾았지만 담당상담사는 언제부턴가 “이젠 잊어야 한다, 떨쳐내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는 아이가 살아있을 때 엄마처럼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데 아이가 가자마자 바로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준형이가 다녔던 성당이었다. 한 때 사제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던 준형이는 안산시 원곡동 성당에서 신부를 도와 미사를 보조하는 복사 역할을 했다. 그곳엔 준형이의 흔적이 있었고 준형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 옆에서 한 신자가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 ⓒ 구은모

 

‘잊으라’ 하지 않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

“매일 미사를 드려요.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에 참여해주는 분들이 계세요. 아까 지팡이 짚고 나가는 어르신 보셨죠? 땅이 꽁꽁 얼어도 매번 저렇게 오세요. 성당 덕분에 고마운 인연들을 매일 알아가고 있어요.”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 옆에 약 8평(28㎡)크기의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세월호사고 13일 후인 지난해 4월 29일부터 천주교 수원교구 안산대리구 사제들이 돌아가며 매일 저녁 8시에 미사를 집전한다. 지난해 12월 23일은 미사를 시작한지 239일째 되는 날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 일어설 때마다 지팡이를 짚는 할머니, 희생자 부모 등 25명이 간이의자에 앉아 미사에 참여했다. 전기난로 두어 대가 있었지만 온기가 약해, 기도를 욀 때마다 사람들 입에서 하얀 김이 새어나왔다. 경기도 수원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장씨는 이날도 퇴근 후 바로 이곳에 와서 사제가 미사를 바로 드릴 수 있게 준비했다. 그는 “신부님이 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오늘도 미사를 드리는 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며 “언젠가 이 미사를 그만두는 날이 오더라도 준형이를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의 고통은 ‘함께 아파해주는 교회’와 함께 조금씩 치유가 돼가고 있었다.

‘함께 기억하고 함께 아파한다.’ 이는 천주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다. 가톨릭 서적을 출판하는 성바오로딸수도회의 미디어영성교육팀 이명옥 요세피나 수녀는 천주교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가 ‘공동체성’이라고 말한다. 

 

▲ 지난해 12월 8일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두 수녀가 종신서원을 받고 있다. ⓒ 성바오로딸수도회

 
“손가락을 살짝만 베여도 모든 신경이 그 쪽으로 쏠리고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신체현상과 같아요. 모든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예수)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라도 고통 받고 있다면 우리의 신경은 거기로 쏠리고 그 아픔을 함께 하고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천주교회는 각 지역 교회가 분리된 개별 조직이 아니고 전체가 모여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 이명옥 수녀는 “천주교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하나의 정체성, 즉 ‘그리스도인(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고통에 빠진 사람이 제대로 된 위로를 받으면 손가락에 난 상처가 아물 듯 마음의 치유가 일어난다. 바로 치유를 위해 제대로 된 위로 즉, ‘함께 아파함’을 행하는 것이다. 이명옥 수녀는 “하느님은 임마누엘(하느님께서 함께 계심)로 우리 개인을 위로하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개인의 아픔을 위로하는 행동은 어떤 정치적 견해나 신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고통 받는 인간을 위로하는 하느님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천주교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할머니, 세월호참사 유가족 등 아파하는 이들 곁에서 기도하며 연대하는 이유다.

나그네였던 예수 대하듯 소외된 이웃에게 손 내밀어

▲ 이상민 시몬 신부. ⓒ 조수진

천주교는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특히 사회에서 소외된 이와 함께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이주민센터 ‘엑소더스’의 이상민 시몬(40) 신부는 ‘소외계층’ 대신 ‘함께 해야 할 이웃’이라는 표현을 쓴다. 동정해야 할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눠야 하는 이웃이라는 의미다. 매주 1백여 명의 동남아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이 다녀가는 엑소더스에서는 주로 이주민의 의료·임금체불 상담과 한국어교육 등이 이뤄진다.

“그리스도인, 즉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관념적인 사랑, 머릿속이나 마음속에만 머무는 사랑은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착한 사람이라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저희는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뿐입니다.”

이 신부는 천주교의 역할을 ‘사랑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성경의 가르침처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되며,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다문화가정 자녀의 고교진학률이 낮은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이주사목(성당에 속하지 않고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활동)을 지원했고 지난 2012년부터 엑소더스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4년 다문화가정 자녀의 고교진학률은 76.7%로 전체고교진학률 93.7%에 비해 크게 떨어지며 지역별로는 이보다 훨씬 낮은 곳도 있어 대책이 절실하다. 이 신부는 “우리나라엔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려는 좋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다”며 “이주노동자분들이 좋은 한국인을 더 자주,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4년째 엑소더스에 온다는 한 베트남 청년(30)은 “천주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고 말해 이 신부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고 있음을 보여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강조하는 것도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는 일이다. 그는 성직자와 평신도들에게 보낸 <복음의 기쁨>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징표가 하나 있다. 바로 보잘것없는 사람들,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경기도 파주 이주민센터 ‘엑소더스’에서 한국어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 ⓒ 조수진

 

신부는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는 상담사

천주교에는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베푸는 종교의식인 일곱 가지 성사(세례·견진·성체·혼인·고해·병자·신품)가 있다. 이 중 고해성사는 신자가 성찰(죄를 알아내는 과정)·통회(죄를 뉘우치는 과정)·고백(사제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과정)·보속(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일) 등의 절차를 통해 죄를 용서받는 의식이다.

“누구든 마음 안에 불편한 감정이 있을 때 그냥 ‘감정’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죠. 하지만 그건 뜨거운 불에 달군 돌과 같아요. 빨리 식지도 않아서 마음에 담아두면 둘수록 마음은 더욱 다치게 되죠.”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인 홍성남 마태오(60) 신부는 고해성사가 현실적으론 ‘상담치료’에 가깝다고 말한다. 고해를 받는 신부는 재판관이 아닌 상담사이며, 고해하는 신자는 죄인이라기보다 치료받는 사람이다. 제대로 된 고해성사를 하려면 자신이 지은 죄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어떻게 짓게 됐는지 전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상담심리학에서 말하는 ‘털어놓기’ 과정이다. ‘불에 달군 돌’ 같은 불편한 감정을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신부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음의 병이 치료되도록 돕는 것이다. 

홍 신부는 종교의 역할을 “아프고 불안한 이들의 마음을 균형 잡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울과 불안으로 기울어진 마음은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만 비로소 균형이 잡힌다고 설명했다. 홍 신부는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한국사회에서 아직까지 물질이나 권력으로부터 순수성을 지키고 있는 곳이 종교”라고 말했다. 불안한 사람들, 기댈 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종교는 순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사제가 꿈이었던 고(故) 박성호군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지은 ‘성호의 성당’. 안산 화랑유원지 분향소 앞 주차장에 위치해 있다. ⓒ 구은모

 

지난해 12월 23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미사를 집전했던 이재현 요셉 신부는 ‘고통과 불안이 가득한 사회’에서 성직자와 신자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주님께 ‘힘들고 아파하고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왜 당신은 그저 바라보고만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은 ‘내가 너를 보낸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바로 우리가 그분들의 이웃이 되어야 하고, 벗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쁨조차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웃에게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당신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뤄지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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