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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
[단비국가론] 조수진 기자
2014년 12월 08일 (월) 14:47:08 조수진 기자 sujieq@gmail.com
   
▲ 조수진 기자

월드컵이나 올림픽 시즌에도 한국을 응원하지 않았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특별히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고, 싫어하지도 않았다. 내가 한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점 외에 국가와 나의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웠다. ‘국가’라는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면서부터였다. 세월호 침몰과 수습과정을 지켜보면서 방송에서, 주변 사람들 입에서 ‘국가’란 단어가 자주 나왔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재난이나 위기 때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가 직무를 유기할 때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국민들 지켜주는 게 국가지.”

궁금했다. 왜 아무도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 것인가? 왜 모두 배가 침몰하는 광경을 보고만 있는 것인가? 한 민간 구조업체가 TV에서 말했다. “구조는 국가의 임무입니다.” 아. 그럼 배가 침몰하고 있을 때 국가가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다. 국가는 그 자리에 없었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동안 의자로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아이들을 배 안에서 꺼내줄, 국민을 지켜줄 국가는 그 자리에 없었다. 지난달 11일 참사 발생 209일 만에 실종자 수색이 종료됐다. 12월 3일 현재 실종자는 아홉 명이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대통령이 국가지.”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고 진상을 철저히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유가족들에게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국가인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려는구나 했다. 세월호 참사는 막을 수 없었지만 제2의 세월호 참사는 막을 수 있겠구나 했다. 6‧4 지방선거가 끝나자 국가는 다시 사라졌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발뺌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배에서 선장과 선원이 제일 먼저 탈출했다. 초기 구출 실패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시스템을 확립해야할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제일 먼저 탈출했다. 가장 절실할 때 반드시 있어야 할 선장과 대통령은 그 자리에 없었다.

동생에게 물었다. “국민들이 모여 있는 커다란 공동체이지.”

세월호 참사 이후 여덟 달이 다 돼간다. 유가족은 지금까지도 단식농성을 하며 진상규명을 호소한다. 자식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아이들, 대한민국의 다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청와대와 여당은 세월호가 민생 문제를 발목 잡는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심지어 여당의 한 의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세월호 인양을 반대하며 “시신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힘든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극우 단체는 유가족을 비난하고 조롱까지 한다. 세월호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들에겐 눈뜨고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의 아픔은 보이지 않는 걸까. 세월호는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내가, 우리 가족이 비극적 대형참사에 희생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뭉쳐 한 목소리를 내야 할 시기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흩어져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 그 선두에는 정부와 여당이 있다. 국가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대답한다. “에밀레종”

가라앉는 배 선실은 차디찬 바닷물과 함께 엄청난 공포가 밀려들었을 것이다. 거기에 학생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며 탈출하지 않은 선생님이 있었다. 친구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양보한 아이들이 있었다. 100일이 지나고, 200일이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제는 잊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중이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에는 아직도 노란 리본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시민이 있다. 아직도 유가족과 함께 싸우는 시민이 있다. 가라앉는 한국을 걱정하는 국민이 있다.

한 소설가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글에서 한국이 ‘에밀레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때 슬프지만 길고도 아름다운 여운을 간직한 에밀레 종소리를 들으며 어떤 슬픔도 극복할 희망을 느꼈다. 금속덩어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장인의 노고가 필요했다. 한국이 지금의 고통과 절망, 무관심을 껴안고 가라앉는 ‘세월호’가 되지 않으려면 에밀레종 주조 때처럼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한국호를 다시 끌어올릴 시작점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구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라 곳곳에 숨어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참사의 불씨를 꺼야한다. 안전장치가 뚫린 곳은 없는지 위험에 노출된 곳은 없는지를 샅샅이 살펴야 한다. 국민은 국가가 울타리를 제대로 설치하는지 관리·감독해야 한다. 이미 소를 잃었다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다른 소를 잃지 않는다. 아직 한국이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 말하는 국가로 돌아올 기회는 남아있다. 에밀레종으로 변할 기회는 남아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중 하나가 '국가는 무엇인가'다.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워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공화정 이래 권력의 상징인 국가의 역할과 의무, 개인인 국민의 자연권과 행복추구권 사이의 관계는 치열한 논쟁과 싸움을 통해 국민이 주인인 민주국가에 이르렀다. 21세기인 오늘 다시 묻는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가. 대한민국은 어디있는가. <단비뉴스>는 앞으로 5차례 걸쳐 '단비국가론'을 싣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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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기자]
단비뉴스 환경팀장
쉽지만 가볍지 않은 글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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