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어 공감 끌어낸 우수 방송작품 시사회

“와하하!”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부동산에 목을 매는 모습을 코믹하게 풍자한 장면 장면마다 관람객들은 연신 웃음보를 터뜨렸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어서일까.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MBC 공개홀에서 열린 세계우수공영방송프로시사회(Best of INPUT)는 1천 여 좌석이 꽉 찬 가운데 웃음과 박수 속에 진행됐다. 매년 MBC와 KBS가 공동 주최하는 이 행사는 전세계 도시에서 번갈아 열리는 세계공영방송(International Public Television:INPUT) 우수프로그램시사회 작품 가운데 일부를 국내에 소개하는 이벤트다. 지난 5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INPUT의 작품 가운데 5편이 이날 상영됐다. 전날인 17일엔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 PD수첩으로 유명한 MBC 최승호 PD가 우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 이선필

대중적이기보다는 혁신적이며 논쟁적인 프로그램들이 주로 시사회에 걸리는데, 이날 상영된 작품은 드라마 부문에서 <금붕어(Goldfish, 일본)>, TV특별 부문에서 <비판의 눈(The Savage Eye, 아일랜드)>과 <연결(Connected,이스라엘)>, 다큐멘터리 부문은 <한스 크래머의 슈타지 보고서(The Stasi Files of Hans Kramer, 독일)>와 <베를린의 토끼들(Rabbits a la Berlin, 독일)>이었다.

진행은 MBC 현직 PD들이 직접 나섰다. <PD수첩>의 최승호, <안녕, 프란체스카>의 조희진, <선덕여왕>의 박홍균 PD가 5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면서 관객의 질문에도 답했다.  <Goldfish>는 완성도 높은 단막극이었다. 외딴 섬에 머물고 있는 유명 소설가와 그의 원고를 받으러 다니는 출판사 직원 사이의 감정적 갈등을 통해 존재에 대한 의문과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를 내밀하게 다뤘다. 주연 배우 셋 외에 나머지 배역은 섬마을 사람들이 직접 맡아 연기했다는 점도 특별했다.

<The Savage Eye>는 드라마에 시사와 개그 코드까지 가미한 일종의 페이크(가짜) 다큐였다.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면서 실제 전문가들의 인터뷰까지 더해 부동산에 열광하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모습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The Stasi Files of Hans Kramer>는 독일 통일 직전인 1989년부터 약 1년 간 활동했던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에 대한 다큐로, 사찰을 당한 피해자와 그의 친한 친구이면서 가해자였던 인물을 직접 대면시키는 파격을 선보였다. 미묘한 갈등에서 상처의 치유까지 나아가는 두 인물을 담담히 담아낸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 <The Savage Eye> 의 한 장면

<Rabbits a la Berlin>역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베를린 장벽 근처에 서식했던 토끼의 시각으로 냉전시대의 독일을 다뤄 신선함을 주었다. 이 프로를 소개한 최승호PD는 ‘상징이 있는 다큐’라며 토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관객에게 질문했다. 한 학생이 “아무 것도 모른 채 생활영역을 제한당해야 했던 동독 사람들”이라고 답하자 최 PD는 “관객들의 수준이 높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Rabbit a La Berlin 의 트레일러 영상 ⓒ youtube.com

이날 소개된 작품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선 낯선 형식으로, 장르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혼합돼 가고 있는 세계방송의 추세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최 PD는 “한국에 의미가 있을만한 프로그램들을 엄선했다”고 밝혀 우리 방송들도 이런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내년 INPUT은 서울에서 열린다. INPUT은 1978년 이탈리아 벨라지오에서 15명의 방송인과 예술인이 ‘TV의 발전과 공영성 확대를 위해 노력하자’며 시작했는데, 유일하게 동양인으로서 의기투합했던 이가 백남준이었다. 이 비디오아트 거장의 5주기를 맞아 서울에서 INPUT이 열리는 것이다. 내년 5월 중 닷새 동안 약 100여 편의 우수 공영 프로그램이 상영될 예정이다. 준비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한 KBS와 MBC는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방송콘텐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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