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국가론] 유선희 기자

   
▲ 유선희 기자

노부부는 늘 함께했다. 종종 음악회도 찾아다니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마비증상이 오면서 노부부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극진히 돌보지만 아내의 병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남편은 마침내 함께 죽기로 결심한다.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 <아무르> 내용이다. 아내는 죽었지만 남편은 온전히 그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영화 마지막에서 남편도 자살했음을 암시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내를 소유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아내를 버리고 떠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굳이 그를 먼저 살해하고 자신도 죽음을 택한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모든 대상을 ‘소유’와 ‘존재’의 관점으로 봤는데, 하네케는 노부부의 사랑을 어떤 대상을 통제해서라도 ‘소유’하는 것으로 그려냈다.  

‘소유’한다는 것은 공격성을 내포한다. 대상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통제하기 어려운 대상은 소유하기 쉽지 않다. 국가는 다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하나의 사상을 강요하기 힘든 집합체다. 그럼에도 과거 권력자들은 국가를 ‘소유’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해왔다. 유신시절, 박정희 정권은 ‘막걸리 반공법’을 만들어 취중담으로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해도 처벌했다. 박정희 정권을 포함해 전두환·노태우 정권 모두 불온서적을 지정하고 서적을 검열했다. 국가가 상위 개념이고 국민이 부속품으로 취급되는 ‘소유’ 개념의 통치형태다. ‘소유’ 개념의 국가통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종북딱지를 붙이거나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이라며 고소를 남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반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최근에야 겨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야 할 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가 독립성을 명확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다. 사고 진상을 덮고 정부는 민생을 이야기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행과정은 박근혜 정부 역시 과거 여러 독재자들처럼 ‘소유’ 개념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정부에 정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되레 떼쟁이 혹은 이기적인 집단으로 내몰아버린다. 전형적인 ’소유’ 개념의 국정운영이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길거리로 나서야 했다. 도보행진, 단식농성, 진상규명 서명운동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했다. 단원고 학생들도 도보행진에 참여했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는 46일간 단식농성을 벌이다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 이후 문화계·학계·연예계가 자발적으로 릴레이 일일 동조단식을 이어갔다. 국가가 국민을 통제대상으로 삼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개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 모순된 사회, 오늘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소유’의 개념으로 국민을 통제하려고 할수록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통제는 국민을 다루기 쉬운 방법 같지만 문제가 내면화돼 장기적으로 국가는 더 큰 손해를 본다.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을 마치 정치공방으로 몰고 가는 동안, 정작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려 했던 안전한 대한민국은 사라져버린 것이 그러하다. 국가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대상이다. ‘존재’는 국민의 다양한 가치관과 사고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풀면 될 일이다. ‘소유’의 최후는 죽음이겠지만, ‘존재’의 최후는 만남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중 하나가 '국가는 무엇인가'다.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워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공화정 이래 권력의 상징인 국가의 역할과 의무, 개인인 국민의 자연권과 행복추구권 사이의 관계는 치열한 논쟁과 싸움을 통해 국민이 주인인 민주국가에 이르렀다. 21세기인 오늘 다시 묻는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가. 대한민국은 어디있는가. <단비뉴스>는 앞으로 5차례 걸쳐 '단비국가론'을 싣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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