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TV를 보니: 11.8~14] 주말 MBC 뉴스 시청률 상승의 의미는

빵빵 터지는 어록 제조기, 최일구 앵커

뉴스 앵커의 ‘가볍고 튀는’ 캐릭터가 주말 뉴스 판도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출범 40년 만에 저녁 9시에서 8시로 시간대를 옮긴 주말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이 눈에 띄게 올라가면서 이른바 ‘최일구 효과’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KBS와 시청률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MBC 주말 뉴스였다. 8시로 옮길 때 ‘SBS 뉴스에도 뒤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예측이 보란 듯이 빗나갔다. 최일구 앵커의 입담에 끌려 브라운관 앞에 모여드는 시청자들이 있다는 얘기다. 대중은 왜 그에게 환호하는 것일까? 그리고 여기에 뒤따르고 있는 ‘뉴스 연성화’에 대한 우려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

지난 14일 MBC 주말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14.8%(이하 AGB닐슨 미디어리서치 수도권 기준)로 전날의 14.3%를 넘어서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SBS 8시 뉴스의 시청률(10.6%)을 크게 앞질렀다. 아시안 게임의 선전소식이 주는 반짝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개편 직전인 10월 31일(일)의 6.3%와 비교하면 아주 큰 도약임이 분명하다. 방송 3사 중 주말 뉴스 시청률 꼴찌라는 불명예에서 완전히 탈출한 듯 보인다. 대중성 확보 면에서 주말 뉴스데스크의 변신은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가능하겠다. MBC도 자체 평가를 통해 “주말 뉴스데스크가 경쟁사 뉴스를 확실히 제치고 주말 8시대에 안착했다”고 선언했다.

▲뉴스 진행중인 최일구 앵커 ⓒmbc뉴스 캡처사진
5년 만에 앵커석에 복귀한 최일구 앵커는 기존 앵커들의 엄숙하고 딱딱한 진행과 다른 가볍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간다. 그는 이미 ‘빵빵 터지는 어록’으로 유명한 앵커계의 스타다. 새로운 뉴스데스크에서도 거의 모든 뉴스에 그의 ‘촌철살인’ 혹은 ‘재기발랄’ 멘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방송된 청목회 관련 뉴스에서 그는 “검찰이 정치권에는 대포를 쏘면서 왜 청와대 대포폰에 대한 수사는 고무줄 새총 수준이냐”고 비꼬았다. 물위에서 펼쳐진 광저우아시안 게임 개막식 소식을 전하면서 “다음 아시안 게임 개막식은 인천 앞바다에서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14일 방송에선 수리를 위해 광화문을 떠나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향해 “이 제독님, 잘 다녀오십시오”라는 인사를,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중인 박태환 선수 소식을 전하면서 “3관왕 장담합니다”라는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다. 

앵커가 현장 리포트를 한다는 것 역시 눈에 띄는 변화다. 지난 6일 전남무안 낙지어민 탐방에 나섰던 최 앵커는 14일에는 재래시장으로 출동했다. 기업형슈퍼마켓(SSM)과 대형마트때문에 상권이 붕괴되는 서울 정릉시장을 조명한 '재래시장의 눈물’ 리포트에서 그는 시장 상인 문순자(63)씨의 절규에 곧바로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지난 14일 방송된 시장 상인 문순자씨의 절규ⓒmbc뉴스 캡처사진
"내가 닭 장사 23년 하다가 다 때려치우고.......다 치우고....... 지금 여기가, 시장이 하나마트 때문에 아무것도 안 돼. 지금 왜 저거를 허가를 내줘, 시민이 먹고 살 것이 없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허가를 내주냐고, 정부에서! 국회를 가서 때려 부셔버리던지 해야지. 일을 내버려야해. 생선이 팔려 뭐가 팔려, 여기가. 다 때려치웠는데.......여기다가 마이크 대지 말고 거기 가서 들이 대."

문 씨의 격앙된 목소리는 고스란히 전파를 탔고,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생생하다’ ‘타방송과 차별성이 있다’  ‘통쾌하다’ 는 의견들이 MBC 뉴스 인터넷 게시판에 줄을 이었다.

대중과의 직접적이고 솔직한 소통

물론 주말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상승에는 심층 취재의 확대, 생활 밀착형 기사의 발굴, 뉴스 스튜디오의 부드러운 변화 등이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 정점에 앵커 개인의 캐릭터가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앵커 자신이 표방한대로 ‘대중과의 직접적이고 솔직한 소통’이 먹히고 있는 것이다. 

대중들은 우리나라 뉴스 앵커들의 천편일률적인 말투와 엄숙한 자세에 식상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일구 앵커는 이것을 뒤집은 것이다. 대중들에게 아주 신선한 자극이다. 그는 특히 서민들이 생활 속에서 흔히 쓰는 단어와 표현을 동원한다. 이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최일구 어록’도 대부분 골목과 거리, 식탁에서 흔히 오가는 표현들이었다. 그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태도와 말투는 뉴스 전달의 상투성을 깨는 ‘전복’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다분히 기자와 앵커 중심이었던 뉴스의 틀을 과감하게 깸으로써 새로운 대중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뉴스의 대중 영합, 즉 ‘연성화’에 대한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진지해야 할 뉴스가 너무 가볍게 전달돼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편 직후 MBC 오상진 아나운서가 이런 생각을 살짝 트위터에 내보였다가 사내에서 혼이 난 일이 있다.

"전 시의성 떨어지는 TV뉴스가 갈 길은 다양한 화면과 공손한 전달 톤이라고 보는데, 앵커의 이미지나 진행이 마초적이어서 좀 별로라 느꼈어요."

직설적인 최일구 앵커의 진행 스타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 것이다. 그러나 2주째 방송이 나간 지금 뉴스 연성화에 대한 논란은 일단 수그러든 분위기다.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들은 오히려 심층, 기획 취재를 강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앵커가 직접 현장에서 취재하는 시도도 칭찬을 받고 있다. 이진숙 MBC 홍보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화하듯 진행하는 최일구 앵커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며 "일각에서는 연성화도 지적하지만 '컨텐츠는 강화하고, 진행은 편안하게'가 이번 개편의 방향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높아진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뉴스 진행 스타일에 대한 불안감은 존재한다. 지금보다 더 예민한 사안을 다룰 때 비판과 흥미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특히 최일구 앵커의 ‘가볍고 튀는’ 스타일에 대한 논란은 쉽게 수그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지해야 할 사안마저 오락거리처럼 가볍게 다룰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주말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상승 행진이 계속 이어질지, 최 앵커의 진행 방식이 진지한 뉴스에서도 호소력을 발휘할 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기존의 진행 방식을 뒤엎는 ‘추세의 거스름’을 통해 그가 시청자에게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제공함으로써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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