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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전쟁을 쉽게 말하나?
[마음을 흔든 책] 서경식 '고뇌의 원근법'
2010년 06월 19일 (토) 20:26:36 박소희 기자 sost38@danbinews.com

예술과 현실의 간극, 그것은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예술의 현실도피인가? 순수문학파와 카프의 대립 이래 문학의 순수성과 사회성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달아오른 때는 1967년이었다. 불씨를 지핀 이는 젊은 평론가 이어령이었고, 거기 뛰어들어 몸을 불사른 이는 시인 김수영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8편의 글이 오갔다. 각각 문학의 순수 영역과 사회적 역할을 옹호하는 두 사람의 글은 화려했다. 그러나 끝낼 수 있는 논쟁은 아니었다.

       
  ▲서경식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김수영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세 번째 미술에세이집 <고뇌의 원근법>에서 그는 몸집만큼 진중하게, 하지만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한다. 예술이란 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그려내는 일이라고, 예술은 정치적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고.

왜 한국 근대미술은 예쁘기만 한가?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않은데.” 그래서 서경식이 소개하는 그림들은 예쁘지 않다. 아니 추하다. 여인은 발가벗겨졌고, 찢어진 육신들과 붉은 피로 가득하다.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 전쟁. 그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을 철저히 꿰뚫어보고, 남김없이 그렸기 때문이다. 오토 딕스가 대표적이다. 이 독일 화가는 1, 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다. 전쟁 후 다시 붓을 든 그가 가장 많이 그린 인물 중 하나는 상이군인이었다. 팔다리가 없고, 얼굴은 일그러진 채 거리에서 구걸하는 상이군인에게 지나가던 애완견마저 오줌을 싸며 지나갔다. ‘조국이 부른다는 부추김에 전장으로 달려갔지만, 전후의 혼란은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딕스는 이 주제를 반복해 그리면서 국가권력의 독단과 자본주의 사회의 무자비함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은 전쟁의 고통과 무서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었다. 딕스는 4년간 자신의 체험을 <전쟁>이라는 제목의 제단화(祭壇畵)로 담아내는 데 몰입했다. 이 그림은 출동하는 병사들, 처참한 전장, 파괴된 참호에서 동료와 함께 탈출하는 병사, 누워있는 자들, 이렇게 네 개 화면으로 구성된다. 마지막 그림이 제단의 밑 부분이라 순서대로 보면 꼭 시곗바늘 돌아가듯 원이 그려진다. 즉 이 제단화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무한히 계속되는 전쟁의 양상이 그려져 있다.

서경식은 독일 드레스덴 주립미술관 전시실에서 이 그림을 관람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느낌을 묻는다. 여행 중인 형제는 그림이 모든 인간에게 경고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너무 잔혹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드레스덴 주민은 아름답진 않지만,” “전쟁은 잔혹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답한다. 딕스는 모든 인생의 천박함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전쟁에 지원했다. 그는 영웅신화와 같은 전쟁의 낭만을 벗겨내고, 자신의 눈으로 본 전쟁, 악마의 짓을 그림으로 고발했다. 불안이나 패닉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무서움을 전하고 전쟁을 저지하는 힘을 일깨우기 위한것이었다

   
▲ 오토 딕스 '전쟁'

딕스는 물론이고 이 책에 소개된 화가들은 대부분 생소하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참전으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의 카니발이란 이미지밖에 그릴 수 없었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다윗의 별을 단 채 살아가야 하는 유태인들의 불안과 공포를 가라앉은 색채로 표현한 펠릭스 누스바움. 그들은 전쟁과 학살의 시대를 꿰뚫어보았다. 그들에게 전후(戰後)’란 없었다. 지금 발버둥치고 있는 추한 현실을, 삶에 가득 찬 고뇌를 그려내는 것이 그들의 예술이었다.

올해는 한국전쟁 60돌이다. 3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이 땅은 비극의 현장이었고, 지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전쟁은 추상명사로, 기록으로 남아버렸다. 아니 기록으로도 제대로 남지 않았다. 전쟁영웅들의 동상과 장군들의 회고록으로 남았을 뿐, 무명용사들은 증언도 비목도 없이 산하에 누워있다. 광기와 잔인함, 고통의 증언과 기억은 쉽게 잊혀졌다.

전쟁미술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예쁘기만했던 한국 근대미술이 적어도 망각곡선을 가파르게 만들었으리라. 전쟁을 쉽게 잊은 사람들은 전쟁을 쉽게 말한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지만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된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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