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기행] ③오스트리아 빈

안세희 기자가 지난 여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주관하는 ‘유럽 음악여행’에 참여해 여행기를 썼다. 12일간 이 ‘특별한 여행’을 다녀온 안 기자는 숙명여대에서 기악을 전공했고 음악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3회에 나누어 싣는 이 기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1월호에도 전문 게재됐다. <편집자>

비엔나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거쳐 이번 음악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빈(비엔나)으로 들어가는 버스에서 가이드가 물었다.

“여러분, 비엔나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비엔나소시지요. 큭큭.”
“비엔나커피!”
“빈 필하모닉이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이드가 말했다.

“많이들 비엔나소시지와 커피를 이야기하시죠. 가끔 빈 필도 나오고요. 그렇지만 사실 비엔나엔 비엔나소시지와 커피가 없어요. 여기 사람들 소시지는 우리처럼 작지 않고 길쭉하고요. 비엔나커피같이 크림이 올라간 건 있지만 비엔나커피라고 부르진 않아요. 빈 필하모닉은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죠. 우리나라 지휘자로는 정명훈 씨가 빈 필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지요.”
 
이처럼 빈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 같으면서도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도시다. 작곡가만 하더라도 잘츠부르크 하면 모차르트가 떠오르는 정도지만, 빈 하면 너무 많은 대가들이 떠올라 거장도 평범해지는 음악도시가 바로 빈이다. 베토벤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장들이 빈에서 활동하다가 빈에 잠들어 있다. 생활비조차 없어 비참하게 죽은 모차르트 역시 빈의 한 공동묘지에 위치도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있다. 거리 곳곳에 그들이 살았던 집과 그들의 음악이 연주됐던 명소들이 즐비하다. 음악도시로서 빈의 위상은 “이곳으로 온 한국유학생의 90% 이상이 음악 전공자”라는 현지 유학생 말에서도 나타난다.

▲ 빈 시립공원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안세희

가장 많은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곳

빈은 전세계에 중계되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일년 내내 수준 높은 연주회가 열리는 세계 음악의 수도이다. 그러나 그런 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관객의 수준이라고 한다. 관광객뿐 아니라 빈 시민들도 생활의 일부로서 공연을 즐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노인도 모차르트 교향곡인 건 알아차린다고 한다.
 
관객들 수준이 높기에 연주자들 실력도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두터운 음악애호가층 덕분에 연주자들은 연주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 연주는 물론 레슨과 강의까지 해야 하는 우리나라 음악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목이다. 거닐기만 해도 영감이 솟는 곳, 작곡가와 연주자 그리고 청중이 진정으로 소통하는 곳. 예술가로서 빈에 머무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우리 유럽 음악여행단도 빈을 방문한 것이 작은 축복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던 숀브룬 궁전에서 밤에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빈에서 유명하다는 호이리게 정식을 먹기로 했다. ‘호이리게’란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처럼 그 해 오스트리아산 햇포도주를 일컫는 말이었다. 지금은 ‘호이리게’를 취급하는 음식점을 통칭하는데, 그린칭이란 마을에 밀집해 있다.

▲ 빈을 가로지르는 도나우강

베토벤의 유서를 50번 베껴쓰게 했던 교수님을 떠올리며...

그 곳으로 가는 길에도 거장들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바로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가 쓰여진 곳이었다. 다른 여행객들에겐 그저 그런 베토벤 유적지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특별한 감회를 자아냈다. 음대 재학시절, 그의 유서를 50번 베껴서 쓴 적이 있다. 과제 중 하나였는데 “직접 써보며 서른 두 살 베토벤의 절망을 느껴보라”고 하시던 교수님이 너무나 야속했다.
 
50번 베껴 쓰며 뭔가 느낄 수는 있었다.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한 청력을 잃어가며 느꼈던 절망감과 두려움, 아직 다 불사르지 못한 음악에 대한 열정과 미련, 죽음을 예감하고 유서를 써내려 가던 베토벤의 심정이 조금은 전해지는 듯했다. 그 모든 것이 구구절절 그의 유서 속에 담겨있었다. 다행인 것은 사후에 발견된 유서의 뒷부분에 적힌 ‘작곡을 위해 더 살아야겠다’는 구절이었다. 바닥을 딛고 다시 올라가듯 베토벤은 그 유서를 쓴 뒤 30년을 더 살았고, 음악의 형식과 표현에 있어 큰 변화를 보이며 <전원교향곡>과 같은 숱한 대작을 남겼다.
 
흔히 음악사나 뒷이야기에서 그려지는 베토벤은 심각하고 괴팍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천재다. 남성적 웅장함이 특징인 그의 음악 스타일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유서 베껴 쓰기’ 과제를 하며 그런 이미지는 어쩌면 우리의 오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까칠한 ‘강마에’ 캐릭터도 베토벤의 고착된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은 아닐지? 아닌 게 아니라 헤어스타일조차 베토벤의 초상과 비슷하다.
 
슈베르트가 방문했고, 근래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그린칭 마을의 호이리게는 동화 속에 나오는 집들 같았다. 특별히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아늑한 분위기에서 햇포도주와 함께 식사를 즐겼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지 악사가 아리랑을 연주해주어 더욱 기분이 좋았다.
 
지친 행색으로 유럽을 누볐던 우리는 음악회를 위해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빈의 다른 공연도 그렇듯 반드시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바지와 운동화 차림은 연주자에 대한 매너에 어긋난다는 생각에서였다. 웅장한 규모의 숀브룬 궁전 한 편에서 열리는 연주회였지만 빈 좌석은 거의 없었다.

▲ 오스트리아 빈의 숀부른 궁전 오케스트라 ⓒ imagevienna

곡목 대부분은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였다. 관광객이 많기에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이 많이 연주된다고 현지 가이드가 전했다. 피곤한 여행객들에는 두 시간 남짓한 공연이 부담될 수도 있었지만 장르가 다양하고 레퍼토리가 귀에 익숙해 금방 시간이 흘렀다. 1부는 모차르트 작품들이지만 아리아와 서곡에 무용수의 공연까지 어우러져 흥미로웠다. 2부 역시 음악가 가문 슈트라우스의 곡들이 잘 짜여있었다.

도나우강엔 역사가 흐른다

마지막 곡은 너무나 유명한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독일에서 발원해 빈을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 강은 연주회가 열린 숀브룬 궁전과 멀지 않았다. 도나우강이 흐르는 곳에서 듣는 왈츠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다뉴브 강으로도 알려진 도나우는 내륙국가인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해변’과 같은 휴식처다. 노래가 있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도나우강 양편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위대한 음악가들이 살았던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문득 예술가의 흔적들마저 개발에 밀려나고 있는 서울 풍경과 대비됐다. ‘한강팔경’은 물론이고 모래톱조차 자취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 장벽으로 둘러싸인 한강의 처지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12일간 여행의 마지막 밤. 아쉬움을 달래려고 호텔 바에서 홀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데, 쌉싸래한 유럽 맥주 맛이 여기가 낯선 이국 땅임을 새삼 일깨운다. 여행은 늘 아쉬움과 향수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끝나는가? 유럽 음악여행! 12일간의 짧은 충만이여, 안녕.


덧붙이는 말

87세의 관록, 조르즈 프레트르가 지휘하고 빈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2008년 신년 음악회)' 영상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왈츠를 추는 장면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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