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나] 안수찬

중간자의 미덕은 어중간하게 버텨내는 것

▲ 안수찬(한겨레21 사회팀장)
중간 책임자의 어려움은 그 ‘중간성’에 있다. 주간지 팀장인 나는 위로는 편집장을, 아래로는 후배 기자들을 모시고 산다. 내가 처한 ‘중간성’의 고충은 후배들의 고충을(까짓 무슨 고생했느냐 싶어도) 위로해주고, 내 고충은(아무리 외롭고 슬퍼도) 억누르며, 편집장의 고충을(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인생, 쌓일 스트레스가 없음이 분명해 보여도) 혜량하는 데 있다.

쉽지가 않다. 후배들은 내 마음 같지 않고, 편집장은 내 마음을 몰라준다. 인생은 자꾸 처량해진다. 위아래를 두루 미워하게 된다. 미움은 미워할 이유를 만들어낸다. 사람이 미워지니 공연히 죄를 지어낸다. 저것들이 오뉴월 엿가락처럼 위 아래로 붙어 무고한 나를 바싹 말려 죽이자고 달려드는 게 아닌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가끔 술기운을 빌어 위아래로 으르렁대기라도 하면, 금이 가는 것은 오직 내 ‘중간성’이다. 술 먹고 뱉어낸 말의 전부를 다음날 아침에 후회한다. 중간자의 미덕은 어중간하게 버텨내는 데 있다. 덕이 부족하면 술이라도 끊어야 한다. 그래야 중간이라도 간다.

다행히 최근 ‘중간성’의 고충이 조금 줄었다. 누가 봐도 명백히 어려운 취재를 후배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낌없이 후배들을 격려하면, 편집장 역시 군말 없이 정상을 참작한다. 여기에 이르러 ‘중간성’은 고요한 무풍지대가 된다. 덕이 부족한 중간 책임자조차 기자 노릇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사랑할 이유를 만들어낸다. 사람이 좋아 보이니 없는 미덕도 갖다 붙인다. 이제 드디어 <한겨레21> 기자들은 가난을 들춰 보여주는 비법을 저마다 갖추게 됐다고, 자다가도 혼자 웃게 된다.

무심히 보고 넘겨버린 우리 곁의 오지

지난 10월 말부터 ‘우리 곁의 오지’ 기획을 시작했다. 지난해 ‘노동 OTL’같은 장기탐사취재 방식은 아니다. 한나절 정도 현장 취재를 한다. 작은 에피소드의 연속인 셈이다. 그래도 기자들이 건져내는 사실의 작은 파편이 기사에 있다. 그 파편을 심장에 맞으며  매 주를 보낸다.
 

 ▲ 70m 타워크레인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노동자. ⓒ 한겨레21
첫 현장은 공사장의 타워 크레인이었다. 작은 사실 하나. 70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냥 사다리 타고 올라간다. 손에 땀이 찰 수밖에 없는데, 땀이 차면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면 죽는다. 그게 두렵다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건설사 사장 몫의 돈이 줄어든다. 도심 가득 공사장마다 멀뚱히 서있는 타워크레인을 무심히 보아 넘기면서, 지금까지 나는 그 작은 사실을 몰랐다.

두 번째 현장은 맨홀 아래, 지하 3m 시궁창이었다. 주택·식당·공장의 화장실·부엌의 오수가 흘러내리는 곳이다. 작은 사실 하나. 오수관 바닥을 긁어내는 노동자들은 어두컴컴한 것을 더 좋아한다. 온갖 오물이 다 섞여 있으니, 밝으면 더러워서 일을 못한다. 가냘픈 손전등으로 빛의 길을 내어 발 디딜 자리만 확보하고 나면, 그 주변에 흐르는 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오줌물인지 빨랫물인지 모른 채 삽질을 한다.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환갑이 넘었다. 그 정도 나이를 먹지 않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열 걸음마다 나오는 맨홀 뚜껑을 무심히 밟으면서도, 그 아래 내 똥물을 밟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작은 사실을 지금껏 나는 몰랐다.
 

 ▲ 오수관 바닥을 긁어내는 노동자. ⓒ 한겨레21
최근엔 강원도 원주의 컨테이너 집을 찾았다. 주로 중소도시 외곽 농촌 지역에 있는데, 혼자 사는 극빈층의 거주지다. 작은 사실 하나. 컨테이너에는 전기와 수도가 없다. 예전 공사장에 쓰였던 (무허가) 컨테이너를 (불법)점유해 비와 눈은 피하고 살지만, 전기가 없으니 촛불을 켜고 수도가 없으니 냇물을 길어 쓴다. 하다못해 찜질방·쪽방에도 전기와 수도는 있다.

이들은 비닐하우스촌과 달리 모여 살지도 않는다. 마을과 동떨어진 외곽에 덜렁 컨테이너 하나 빌어 혼자 산다. 마을 사람들은 거기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다. 시골 마을마다 한두 개씩 보이는 컨테이너를 그저 공사장 인부들이 사용하는 숙소라 여기며 서울과 지방을 잇는 철길과 고속도로를 무수히 오가면서도, 나는 그 곳에 한국 사회 최극빈층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껏 몰랐다.

가난을 보지 못하는 한국 중간층 

그것은 한국 중간층의 비극이기도 하다. 한국 중간층은 가난을 보지 못하고 산다. 안 보고 사는 데 익숙해졌다. 나의 어린 시절에만 해도, 가난의 현존을 웅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청소부, 버스 안내양, 연탄 배달원, 고물상 아저씨, 똥지게 할아버지는  대문 밖 골목과 거리에 항상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그들은 반면교사 또는 동정의 대상 때로 긍휼의 상대였다. 드물긴 했지만, 공동체의 책임을 절감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혐오·경각·공감·연대의 감정이야 각자의 몫이지만, 어쨌건 그들은 우리의 감성·이성을 향해 항상 ‘존재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위정자들이 감히 자화자찬하는 것처럼 가난(한 노동)은 정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지금까지 진행된 사태의 책임을 나눠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난을 해결하는 대신 가난을 지웠다. 가난의 자취와 흔적을 없앴다. 농가부채는 그대로 두고, 색색깔 기와지붕만 얹으면 빈농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던 새마을 운동의 방식을 판판이 따랐다.

우리는 도심의 달동네를 지웠다. 재개발을 빙자한 철거로 그들의 거주지를 없앴다. 그 자리에 우리가 들어가 살면서, 그들은 도심 외곽으로, 다시 중소도시로, 결국 농촌으로 밀려났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노동 공간을 허물었다. 어린 ‘시다’들이 가득했던 청계천 피복 공장 자리엔 번쩍이는 쇼핑몰이 들어섰다. 기계소리 가득했던 구로 공단엔 하늘 높이 주상복합건물이 등장했다.
 
우리 곁에서 조용히 호흡하는 그들

그래도 그들의 일부는 우리 곁에 있다. 자취는 지웠으나, 존재까지 없애진 못했다. 재개발과 현대화를 빙자해 그들의 주거와 노동 공간을 주저 없이 밀어냈어도 가난(한 노동)은 여전히 현존한다. 그들은 도심 곳곳의 연립주택 반지하방에 산다. 그들은 보증금 100만~500만 원, 월세 10만~30만 원의 반지하방에서 조용히 먹고 자고 일하러 나간다. 부부가 말다툼하다 홧김에 불이라도 질러야 그들의 존재를 이웃이 알아챌 것이다. 이들보다 더 운이 나쁘면, 월 20만원의 고시원으로 가야 한다. 불이라도 나면 모두 타죽을 수밖에 없는 폐쇄의 침실이다. 더 밀려나면 찜질방·만화방·쪽방 그리고 컨테이너로 옮겨 간다.

또한 그들은 주상복합건물에 들어찬 실내 공장에서 일한다. 구로 디지털단지에는 수십만 명의 비정규직이 월 80만~120만 원을 받으며 일한다. 겉으론 멀끔해도 안에는 유해 화학물질이 그득한 작은 공장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피를 토하며 죽어야 그들의 존재를 사회가 알아챌 것이다. 이들보다 더 운이 나쁘면, 안산·반월·남동·구미 등 지방 소도시 공단으로 가야 한다. 비정규 노동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가지 않을 가난한 노동의 슬럼 지대다. 더 밀려나면 크레인 위로, 맨홀 아래로 옮겨 간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정말이지 우리와 함께 호흡한다. 거리와 아파트와 빌딩의 청소부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바로 우리 곁에서 일한다. 다만 그들은 더 이상 우리와 ‘직접’ 만나지 않는다. 90년대 후반 이후, 각 구청은, 그리고 아파트와 빌딩 관리사무실은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용역회사는 싼 값에 계약직 청소부를 고용했다. 청소부는 더 이상 주민들을 만나지 않는다. 청소용역회사는 “절대로 주민·직원·고객의 눈에 띠거나 불편을 주지 말라”고 지시한다. 그들은 컴컴한 새벽 또는 아무도 없는 식사 시간에만 일한다.

 ▲ 새벽에 일하는 청소 노동자. ⓒ 한겨레21
어쩔 수 없이 우리와 접촉해야 한다면, 그들은 곱게 화장을 한다. 백화점 매장의 아름다운 종업원들은 모두 월 150만 원 이하의 비정규직이다. 대형마트의 활기찬 종업원들은 모두 용역회사에 고용된 시급 4천 원짜리 계약직이다. 편의점·패스트푸드·택배회사의 직원들은 그보다 더 형편이 열악한 단기직이다. 다만 그들은 그럴듯한 유니폼을 입고 항상 웃으며 서있도록 지시받는다. 가난을 화장할 능력이 없다면, 그들은 가난만 그대로 품고 노동은 그만둬야 할 것이다.
 
가난한 존재에 눈을 감는 둔감한 사회

그렇게 하여 우리는 마침내 가난(한 노동)을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에게 혐오·경각·공감·연대의 신호를 보낼 방법도 사라졌다. 그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살아간다. 가끔 그들을 마주쳐도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보지 않고, 느끼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가난(한 노동)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비극적인 사태가 남아 있다. 그런 사회적 둔감 속에서 마침내 가난한 자들조차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

가난의 현장을 거듭 취재할 때마다 전율하며 발견하는 작은 사실이 있다. 그들 인생의 어느 순간, 혹은 그들 부모 인생의 어느 순간, 그들 역시 중산층이었다. 70년대 석유파동, 90년대 외환위기 등 한국 경제가 크게 흔들릴 때마다 그들의 부모 또는 그들은 급전직하했다. 일단 가난해지고 나면, 미래를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할 수가 없다. 더 나은 직업을 위해 대학에 가거나 고시 공부에 매달릴 단 몇 년의 여유가 그들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얼마라도 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천형은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이어진다. 짐승은 살아남으려 먹고, 먹기 위해 노동(사냥)한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노동에서 가치를 찾는다. 오늘날, 빈곤(노동)자의 처지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에 가깝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적어도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눈감았다.

한국엔 슬럼이 없어 다행인가?
어떤 면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현명했다. 오랜 개발독재 끝에 그들은 가난의 흔적을 지웠다. 그 결과, 한국에는 슬럼이 없다. 슬럼은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이 모여 사는 극빈 주거지역이다. 슬럼은 가난·범죄·매춘·마약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슬럼 안에서 마약을 팔고 사람을 죽인다. 그렇지 않으면 굶는 수밖에 없다. 범죄율이 높은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엔 반드시 슬럼이 있다. 슬럼에서만 범죄가 무수히 많다. 중간층과 부유층은 슬럼과 접촉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런 슬럼이 한국에 없어서 다행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슬럼은 도시에 대한 급진적 저항의 공간이기도 하다. 슬럼 주민들의  체념은 어느 순간 폭발한다. 남아공의 흑인 민권운동, 미국 LA 폭동, 심지어는 프랑스 파리의 빈번한 대중 시위조차 모두 슬럼의 ‘무정부적 분노’에서 자양분의 일부를 얻었다. 한국에 슬럼이 없다는 것은, 가난한 이의 무자비한 봉기의 에너지가 이 사회엔 없다는 뜻이다.

대신 폭동의 에너지는 원자화된다. 때려 부수고 빼앗고 불 지르지 않고, 스스로 죽는다. 제 몸을 팔지도, 사람을 죽이지도 않고, 스스로 세상을 뜬다. 그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 길 가던 아이와 여성을 납치해 괴롭히고 죽인다. 이를 ‘증오 범죄’라 이름 붙이며 치를 떠는 새로운 경각의 기운이 한국 사회에 번지고 있는데, 그것은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똑같은 짓을 저질러도 모자랄 사람들이 스스로 죽는다. 죽을 것인가, 죽일 것인가의 경계는 얇디얇다. 

한국에선 하루 평균 40건, 매년 1만5천여 명, 인구 10만 명당 30명꼴로 자살한다. 세계를 통틀어 20위권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에선 최고다. 대규모 슬럼으로 악명 높은, 슬럼 안에서 갱단이 기관단총으로 서로 전쟁을 벌이는 브라질에서 살인 사건으로 죽는 이는 인구 10만 명당 25명꼴이다. 브라질의 슬럼이 없어서, 브라질처럼 극심한 빈부격차와 극빈의 실존을 목도하지 않아서, 우리 ‘중간층’은 정말 행복한가. 슬럼은 피해 다닐 수라도 있지만, 빈곤의 나락에 떨어지는 운명은 개인의 의지와 이성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데도?

사태는 우리의 천진함보다 더 거대하고 엄청나다. 하루라도 빨리 가난한 노동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공범인 우리의 실체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가난은 머지않아 (정말이지 극소수를 빼고)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것이다. 짐승, 기껏해야 노예의 처지에 불과한 바로 그 가난이 왈칵 달려들 것이다. 우울하다고, 슬프고 막막하고 힘 빠진다고, 독자들이 간혹 항변해오지만, 그래도 기사를 멈출 수 없다. 내가 이 시대에 떠안은 ‘중간성’은 부자와 중간층에게 가난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한다. 가난도 어중간해야 눈감아줄 수 있다. 이건 가난이 아니다. 부당·불합리·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다. ‘반인간’의 사태다. 


*이 칼럼의 일부 내용은 <위스트르앙 부두>(오브나스 지음·윤인숙 옮김·현실문화연구)에 실린 필자의 추천사에서 발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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