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미디어읽기] 우리가 <슈퍼스타 K2>에 푹 빠졌던 이유

‘키워드로 미디어읽기’는 구세라 홍윤정 기자가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는 미디어와 대중문화 이야기입니다. 2주에 한 번 여러분을 만납니다. 이번 주 키워드는 2010년을 뜨겁게 달군 엠넷(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입니다.

구세라(이하 쿠) : 홍홍홍홍........너 왜 이렇게 넋이 빠져 있는 거야? 얼굴에 ‘나 상사병 걸렸소이다’하고 씌어 있는 걸! 아직도 떠나간 K군을 못 잊었구나. 이번에는 좀 착한 사람 만나라고 했더니, 또 나쁜 남자를 만났군!

홍윤정(이하 홍) : 그러게. K군이 여간 매력적이었어야 말이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나쁜 남자의 매력, 난 그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어. 게다가 날 화끈하게 사로잡았던 그 자신감까지!

▲ <슈퍼스타 K2>의 TOP11. ⓒ엠넷

쿠 : 듣고 보니 과연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었던 슈퍼스타 K군이군! 네 말대로 K군은 넘치는 자신감을 원동력 삼아 시청자를 끌어 모았지. ‘오디션 참가자 수 134만 6402명’, ‘2억 원의 상금’, ‘최첨단 크로스오버 차량’, ‘초호화 음반 발매’, ‘대국민 문자 투표’ 등 간판으로 내건 구호들이 모두 강력했어. 우리가 단연 최고니 봐달라는 거지. 솔직히 ‘그렇게 대단해?’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언어의 마력 때문인지 자꾸 보게 되던 걸?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프로그램인가 싶더라고.

홍 : 맞아. 지상파 방송도 잘 사용하지 않는 ‘대국민 문자 투표’를 거듭 강조하면서 ‘여러분의 선택입니다’하고 외쳤던 게 떠올라. 그냥 국민이라고 해도 되는데, ‘對국민 투표’로 뽑는 한국의 슈퍼스타라고 하니 투표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 따지고 보면 잘못된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 방송에서 방송인 배철수 아저씨가 “초호화 음반 발매는 처음 들어 보네요”라고 말했잖아. 나도 그 때 ‘맞아 맞아’ 속으로 외쳤어. 엄청 ‘뻥’이 셌던 거지.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최고’라고 말함으로써 얻는 인기가 꽤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쿠 : 그래. ‘과시하기’ 기법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슈퍼 심사위원’, ‘슈퍼 MC’, ‘슈퍼스타 밴드’까지 모두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떠들었고, 예선까지 포함해 30명의 심사위원단들 또한 쟁쟁한 인물들이라고 소리쳤지. 중간 중간 이문세, 박선주, 윤건, DJ DOC 이하늘, 자우림 김윤아 등을 등장시키며 발이 넓다는 점을 부각했어. ‘나 이런 프로그램이야!’하고 말야. 섭외 능력까지 넘버원이라는 거지.

홍 : 음. 존박과 허각의 팬미팅 장소가 대형쇼핑몰 타임스퀘어였던 점, 톱(TOP)4 무대부터 4천석 규모의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점도 큰 장소에 사람들을 꽉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방송 시간도 금요일 밤 11시. 방송가 얘기에 따르면 이때는 사람들이 보통 집에서 TV를 잘 보지 않는 시간이라고 해. 그런데 슈스케(슈퍼스타K)는 당당하게 이 시간에 나와서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까지 올라갔어.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1분광고가 나와서 우릴 애타게 했지만 끝까지 TV 앞에 앉아있게 한 힘. 정말 무시 못 할 일이지.

숨을 멈추게 했던 한마디, “제 점수는요!”

쿠 : 슈스케가 자신만만했던 데는 심사위원들의 카리스마도 한 몫을 했다고 봐. 강승윤이 ‘본능적으로’를 부르고 난 뒤 이승철이 “지금까지 점수 중 최고의 점수를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장재인이 ‘님과 함께’를 부르고 난 뒤 윤종신이 “짧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좋은 가수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짜릿했다고나 할까. 출연자를 보면서 소름이 끼친다는 느낌이 든 그 순간, 심사평이 내 감정을 시원하게 정리해준다는 쾌감이 들더라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계속 구설에 올랐던 강승윤이 이승철의 말에 자신감을 얻었고, 거듭 좋은 무대를 보여주던 장재인이 윤종신의 말에 더 빛났으니까. 물론 공연도 심사평처럼 끝내줬고! 이런 심사평이 하나 둘 모여 슈퍼스타K의 카리스마가 생겼다고 생각해.

▲ <슈퍼스타 K2>의 심사위원 이승철,엄정화,윤종신. ⓒ엠넷
홍 : 난 처음에 왜 한국의 수많은 뮤지션 가운데 이승철, 윤종신, 엄정화가 대표 심사위원으로 나왔는지 궁금했어. 이승철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알지만 주로 콘서트 활동을 많이 해서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윤종신도 오히려 예능인으로 대중들에게 더 알려졌잖아. 엄정화도 댄스가수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그래서 그들이 어떤 심사를 할지 궁금했어.

쿠 : 심사위원 능력이나 인지도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구나. 난 사실 그들이 충분히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했어. 다만 우리나라 방송들이 대체로 젊은 팬이 좋아하는 가수 위주로 방송을 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그 자리와 어울리는지 갸우뚱 할 수는 있었겠지. 가창력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이승철과 감성적인 싱어송 라이터 윤종신이 이제야 대중들에게 제대로 인식된 거지. 엄정화도 한국의 마돈나라고 할 수 있는 가요계 아이콘이잖아. 이번 기회에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심사를 하며 자리를 빛냈다고 생각해.

홍 : 나도 점점 심사위원들의 숨겨진 면모와 실력에 빠져들었어. 한마디로 재미가 쏠쏠했지.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심사평을 신뢰하게 되더라. 존박이 ‘빗속에서’를 불렀을 때, 윤종신이 “장재인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했었지. 실제로 인터넷 문자 투표에서 4주 연속 1위를 하던 장재인을 제치고, 5차 투표에서 존박이 역전했어. 달리 심사위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

쿠 : 슈스케는 심사위원들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해. 방송 내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심사위원’이라는 소개를 들었으니까. 시청자들은 1등인 허각과 톱4에 올랐던 존박, 장재인, 강승윤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이승철, 엄정화, 윤종신을 기억할거야.

있는 그대로 보여준 널 사랑해!

홍 : 심사위원들은 원래 뮤지션이잖아. 심사를 하면서 자신의 음악성을 알릴 수 있었지. 그런데 출연자들은 그 이상이었어. 노래 실력을 보여주러 나와서 개개인의 이야기까지 들려줬지. ‘자기’를 과감하게 드러낸 거야. 이런 모습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어. 방송을 띄우려고 출연자의 아픈 사생활을 꼭 들춰내야 하냐고.

쿠 : 물론 출연자가 시련과 상처를 드러내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꼭 그 점을 나쁘게만 볼 순 없다고 생각해. ‘눈물겨운 성공 스토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요소니까. 중요한 건 우리가 접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달렸겠지. ‘얼짱’이나 ‘엄친아’가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부터 허각과 장재인이 흘린 눈물까지 시청자들은 각자 다른 이유 때문에 열광하지 않았을까? 힘든 경험을 알기에 그들이 부른 노래를 더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테고. 무조건 비판하는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었으면 해.

홍 : 맞아. 출연자들의 사생활을 드러낸 것이 흥미를 높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사실 시청자 입장에선 그들의 노래와 삶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고 봐. 음악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음악이 있는 거 아니겠어? 장재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알았기에 그 목소리가 그토록 절절하게 들렸던 거지. 허각의 오늘을 있게 한 건 길거리에서 행사가수로 떠돌던 시절의 땀과 눈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거야.

쿠 : 최후의 1인이 되고나서 허각이 앵콜송 ‘언제나’를 불렀을 땐, 나도 울컥했어. 그 사람의 삶이 내 살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아서.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요즘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주는 감동을 뜨겁게 느낄 수 있었어. 아, 쏟아지는 눈물. 우리 너무 진지했나?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슈퍼스타K 최고의 매력은 ‘우리의 선택’이었지. 시청자가 직접 만들어준 스타이기 때문에 그만큼 감동의 강도가 셌던 것 아닐까?

 ▲ <슈퍼스타 K2>의 TOP4 장재인, 존박, 허각, 강승윤.  ⓒ엠넷

게임 세대를 흥분시킨 절묘한 경쟁 구도

홍 : 그래! 슈스케가 게임과 비슷하다는 점을 꼽고 싶어.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주인공을 키우는 육성(育成) 게임을 보면, 게임 속 캐릭터가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잖아. 슈스케 출연자들도 촬영하는 동안 카메라가 돌아가는 숙소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채 살았지. 또 게임에서 주인이 시키는 미션을 수행하면 대가를 받는데, 슈스케도 미션에서 우승을 하면 보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보상이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더 강해지는 느낌이었어. 다음 미션에서 우승하면 어떤 상품을 줄까 기대도 되고.

쿠 :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떠오르는군. 1등에게는 당근이 주어지고, 평가가 나쁜 사람은 탈락해야 했지. ‘당근과 채찍’은 점점 더 경쟁의 강도를 높여갔지. 슈스케가 너무 경쟁심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난 웃으며 볼 수 있을 만큼의 ‘경쟁’ 덕분에 프로그램이 재미있었다고 봐. 치열한 경쟁 뒤엔 항상 서로를 격려해주는 출연자들의 우정이 있기도 했고.

홍 : 이런 점도 들 수 있겠네. 육성 게임에서 주인공이 미션을 잘 수행하면 만나는 사람들의 레벨이 올라가는데,  슈스케 출연자들도 비슷했지. 유명한 뮤지션과 접촉할 기회도 가지고, 심사위원들과 개인적으로도 친밀해지고. 그들을 좋아하는 팬도 점점 늘어났지!

쿠 : 난 ‘패자부활전’도 대표적인 게임의 요소라고 봐.

홍 : 그럼! 위기의 순간에서 탈출하면 더 재미있잖아. 톱11이 정해지기 전 라이벌 미션 때, 한 무대에 선 존박과 허각. 허각은 박진영에게 감동을 준 유일한 사람, 존박은 거의 꼴등으로 통과한 사람이었는데 예상 외로 존박이 이겼어. 그 후, 허각은 패자부활전을 통해 Top11에 들어와 결국 최후의 1인이 됐잖아. 전개 과정이 얼마나 긴박하고 떨렸니. 한 판의 게임 아니겠어? 이게 바로 슈퍼스타 K의 묘미였지.

쿠 : 톱3 방송 때, 난 사실 허각이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문자를 보냈었거든. 내가 낳은 자식마냥. 그런 마음이 네가 말하는 묘미인 것도 같다.

홍 : 아, 슈스케도 끝나고 이 허전함을 어떻게 달래지? 어릴 적 읽었던 오디션 만화나 다시 읽어볼까? 아니면 육성 게임이라도 하러 가야하나?

쿠 : 이참에 우리도 슈퍼스타K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 아님 MBC에서 새로 하는 ‘위대한 탄생’에 가볼까? 와하하하!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