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기행] ② 이탈리아 크레모나

안세희 기자가 지난 여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주관하는 ‘유럽 음악여행’에 참여해 여행기를 썼다. 12일간 이 ‘특별한 여행’을 다녀온 안 기자는 숙명여대에서 기악을 전공했고 음악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3회에 나누어 싣는 이 기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1월호에도 전문 게재된다. <편집자>

도시 전체가 공방, 골목길마다 들리는 악기소리

크레모나는 명성과 달리 너무나 소박한 소도시였다. 런던과 파리, 그리고 알프스의 인터라켄에서 잘 차려진 ‘유럽식 정찬’을 즐겼다면,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있는 대로 차려주어도 ‘맛있는 집밥’을 먹는 느낌이랄까? 널브러진 거리 조형물,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더미는 런던에선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 목격한 질펀하면서도 사람 냄새 나는 모습들은 우리를 덩달아 편안하게 했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동남쪽으로 70km를 달리면 크레모나에 도착한다. 날것 그대로 소박함이 살아있는 크레모나는 우리를 방문객이 아니라 고향 사람처럼 대하는 듯했다. 이 소도시가 세계를 흥분시키는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넬리, 그리고 아마티의 본고장이라니! 시골 마을처럼 차가 진입하지 못해 입구에서 내려 좁은 길을 걸어 들어갔다. 나지막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건물들, 야외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피자를 먹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관광객 티를 팍팍 냈다. 아기자기한 상점에서 호들갑을 떨고 보도블럭 대신 멋스런 돌이 깔린 길에 감탄사를 자아내는 것도 여행객의 특권이 아니던가?

▲ 크레모나의 한 골목길. 왼쪽 건물에 공방임을 알리는 악기 그림이 보인다. ⓒ 안세희

몇 만에 불과한 인구에 자전거로도 몇 십 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을 듯한 작은 도시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현악기에 매료된 이들이다. 스트라디바리, 과르넬리, 아마티 등 걸출한 장인들을 배출해낸 크레모나는 고급 수제 현악기의 본향이다. 좋은 악기를 사러 오는 이들부터 악기 제작을 배우거나 공방을 둘러보는 이들까지, 현악기의 매력에 빠진 이들은 크레모나를 성지 순례하듯 방문한다. 이들이 크레모나에서 쓰는 돈이 한 해 1억 유로 이상이라니 줄잡아 1천5백억원의 돈벼락이 이 도시에 떨어지는 셈이다.
 
멋스런 골목을 걸으며 차창 너머로 엿보는 악기 공방, 거리마다 느껴지는 장인들의 숨결과 들려오는 악기 소리는 크레모나가 관광지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로마나 베네치아처럼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중소도시의 여유를 맛보고 싶다면, 세계 음악인들을 흥분시키는 악기와 제작자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하루 정도 크레모나에서 시간을 갖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다.

악기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마을 입구에서 우리는 일단 두오모로 향했다. 성당의 돔을 뜻하는 두오모는 이탈리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결정하는 랜드마크인 동시에 이곳 사람들의 종교와 생활 중심이다. 두오모를 등지고 돌아서니 크레모나 시청이 보이고, 그 곳에 딸린 조그만 별관에 바로 현악기 제조의 거장 스트라디바리를 기념하는 악기 박물관이 있다. 흔히 말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혹은 ‘스트라드’는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현악기의 통칭이다. 17~18세기 70여년에 걸쳐 1100여 대의 스트라드가 생산됐는데, 현존하는 것은 바이올린 540여대, 비올라 12대, 첼로 50여대로 추산된다.

▲ 크레모나의 두오모. 두오모는 이탈리아 사람들 생활의 중심에 있다. ⓒ 안세희

 연간 3만여 명이 찾는 이 박물관, 특히 악기가 보관된 방은 매우 작다. 몇 명씩 나눠야 입장이 가능하고, 기다리는 방문객을 위한 방이 따로 마련돼 있다. 사람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며 거장의 숨결을 접할 준비를 한다. 상주 경찰관과 동행해 방으로 들어가자 유리관 속에 고이 보관된 현악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악기 발전에 지대한 공을 한 아마티의 것부터 과르넬리,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드디어 만났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기쁨은 없었다. 몇 백 년 전에 생산된 초고가 악기와 조우하면서도, ‘이게 스트라드고 저게 과르넬리구나’ 그게 다였다. 내 눈으로는 늘 봐오던 바이올린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리관 속에 얌전히 걸려있는 악기를 보며 그저 ‘이 악기의 실제 음색은 어떨까’라는 공상을 해볼 뿐이었다.
 
어떤 것이든 제 자리에 있을 때, 제 주인을 만났을 때 가장 빛이 나는 법이다. 300년 역사를 품고 수십억 몸값을 자랑한대도 울림을 전할 때 악기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실제로 악기는 가만히 두는 것보다는 꾸준히 연주를 해줘야 악기의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작은 방에 모셔져 있는 10개 남짓한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넬리, 아마티는 비슷해 보였고, 오히려 오는 길에 봤던 크레모나 거리악사의 바이올린이 더 값져 보였다. 관계자에게 이 바이올린들이 연주에 쓰이지 않는지 물었더니 특별한 경우 심사를 거쳐 대여가 이뤄진다고 했다.

연주자들이 좋은 악기에 열광하는 이유

실제로 미국의 대형 악기상인 ‘바인 앤 푸시’는 비영리단체인 스트라디바리협회를 운영하며 세계의 명기 수집가들과 연주자들을 연결시켜 준다. 연주자는 좋은 악기로 연주하고, 청중은 그 음색을 즐기고, 소유자는 악기가 연주되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 악기의 상태를 더욱 좋게 만드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이다. 명연주자의 손을 거치며 그 명기는 더욱 전설이 된다.
      
전 세계 연주자들이 그토록 좋은 악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뛰어난 음색이지만 그 악기의 전통과 가치에도 큰 매력을 느낀다. 수백 년간 여러 연주자 손을 거치며 악기에 새겨진 이름들은 연주자와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음악 이상의 감동을 자아낸다.
 
2000년대 초반에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구입한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가 화제가 됐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에 출연해 배경음악을 담당했던 그가 악기를 손에 넣게 된 과정이, 영화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바이올린이 3세기 동안 겪는 운명을 그린 영화에 나온 바이올린은 벨의 그것과 같은 붉은색이었다. 정경화가 1967년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극적인 공동 우승을 차지할 당시 한국에 연락해 집을 팔아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나, 필립 퀸트가 자신의 악기를 찾아준 택시 기사를 위해 공항에서 무료 공연을 펼쳤다는 사연 등은 이미 유명하다.
 
악기의 울림이 주는 분위기, 지나치게 ‘고가’라는 것이 주는 경외심, 잘은 모르겠으나 대단하다고 하니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도도함, 뭐 이런 것들이 합쳐져 고가의 현악기는 대단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에도 비싼 악기가 소재로 종종 등장해, 의뭉스럽거나 비밀스러운 뒷얘기를 지닌 오묘한 실체로 묘사된다. 그것은 흔히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대표된다.
 
하지만 스트라디바리에 비견할 장인이 바로 주세페 과르넬리 델 제수다. 역시 탁월한 제작자로 자신의 악기에 십자가와 함께 예수를 뜻하는 ‘I.H.S(iota-eta-sigma)’라는 표식을 새겨 넣어 델 제수란 별명을 갖게 됐다.

스트라디바리에 맞서는 장인, 과르넬리는 '짐승남'?

지난 7월, 사상 최고가(약 210억원)의 매물로 나와 화제가 됐던 이 바이올린도 그의 작품이고, 이미 팔린 악기 중 가장 비쌌던 것(115억 원) 또한 마찬가지다. 200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0억 원에 낙찰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훌쩍 앞선다. 이렇게 과르넬리가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몸값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희귀성’ 때문이다.

현존하는 과르넬리는 약 150대 정도로 스트라디바리에 비해 적다. 일단 그는 스트라디바리보다 수명이 짧았다. 일설에 따르면 과르넬리는 불성실한 제작자였다.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악기 제작 완성도에 기복이 심했다고 한다. 감옥을 여러 번 다녀왔다는 설도 있다. 천재의 이미지가,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한 소문이라 할지라도 정교한 설계로 성실하게 제작했던 스트라디바리에 비해 과르넬리가 직관적이고 자유로웠던 제작 스타일을 지녔음은 분명하다.

▲ 왼쪽부터 스트라디바리, 과르넬리, 과다니니. ⓒ 한국일보

 그러다 보니 남아있는 악기 수량이 적고, 몸값은 올라갔다. 성실함의 가치를 깨뜨려버린 역설적 상황이 악기 세계에는 존재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드와 과르넬리를 각각 고고한 귀부인과 솔직한 농부로 비유한 적이 있다. ‘둘 다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맛이 느껴진다는 과르넬리만 사용한다’며 말이다.
 
연주자마다 선호하는 음색이 다르고, 그에 따라 악기가 다르기에 무엇이 더 낫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다. 다만 각각의 특징을 읽어낼 수는 있는데 스트라드는 여성스럽고 우아하다면 과르넬리는 남성적이고 거칠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미 가진 완벽한 음색에 나를 맞춰가야 하지만, 과르넬리는 조금 덜 다듬어진 보석 같아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외형에서도 드러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섬세하게 다듬어진 반면, 과르넬리는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거칠게 손질돼 있다. 재미있게 비유하자면 요즘 말하는 ‘초식남’과 ‘짐승남’ 정도로 대비할 수 있을까? 각자 뛰어난 매력 덕분에 음악가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명품 악기 도시 크레모나의 비밀

이 두 장인이 나고 자라서 활동한 곳이 바로 크레모나다.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조 전통은 16세기 중반에 시작된다. 현존하는 최초의 바이올린은 바로 이곳 출신인 안드레아 아마티(1505~1577)가 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크레모나의 악기 제조 전통은 공방과 가업을 통해 맥을 이어왔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역시 아마티 공방의 문하생이었다.
 
크레모나에서 생산되는 악기들이 보다 깊은 울림을 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 중 가장 많이 나온 분석은 재료의 특별함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넬리가 생산된 17~18세기는 소빙하기로 나무결의 밀도가 높고 나이테가 촘촘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균일하면서도 섬세한 소리가 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화학물질인 도료의 역할에 가치를 뒀다. 북이탈리아 숲에 서식하는 벌레로부터 바이올린을 보호하려고 발라놓은 도료가 잡음을 제거했다는 주장이다.
 
정확한 이유는 현대 기술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수많은 모조품들이 제작됐지만 어떤 것도 원악기와 똑같은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 깎고 다듬었을 장인의 정성이 빠졌기 때문은 아닐까? 현악기는 400년간 진화하고 400년간 퇴화한다고 한다. 오래된 현악기래야 대부분 1700년대 제작된 것들이니 지금도 진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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