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가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노점 자갈치 시장. ⓒ 부산시 홈페이지

이제는 ‘전통’ 또는 ‘재래’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린 우리 시장은 원래 길을 따라 상점이 늘어선 곳이었다. ‘가게’란 말의 어원도 길을 따라 임시로 지은 집, 곧 ‘가가’(假家)에서 비롯됐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시장이 시작됐고, 더 걷다 보면 시장을 벗어났다.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느 길을 통해서든 시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시장은 여러 곳에서 사람이 모여드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열려있었다. 시장은 성별도, 나이도, 출신지도 가리지 않았다. 시장을 ‘장거리’, ‘저잣거리’라고 불렀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이라기보다는 ‘관광지’로 더 유명한 부산 자갈치시장도 그랬다. 입구가 따로 없이, 미처 시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비릿한 생선냄새가 사방에 퍼져 시장의 자리를 알렸다. 하지만 개발과 현대화의 열풍은 자갈치시장도 빗겨가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길 사이에 오밀조밀 모여있던 노점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얼마 전에는 노점상 60여 곳이 자진 철거했다. 다른 장터로 터전을 옮긴 곳도 있지만 그 중에는 장사를 아예 그만둔 사람도 있다. 부산시가 ‘국제도시 부산’에 걸맞은 ‘명품관광단지’를 자갈치시장 일대에 조성하겠다는 선언을 한 탓이다.

부둣가 한쪽에는 으리으리한 7층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 외벽에는 ‘자갈치시장’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옛 시장통을 생각하고 이곳을 찾았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 이제 자갈치시장은 ‘입구와 출구가 있는’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노점상이 철거된 곳에는 앞으로 ‘명품관광단지’를 위한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남아있는 노점들도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자갈치시장은 ‘전통’시장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 현대화한 자갈치시장. ⓒ 자갈치시장 홈페이지

시장은 태생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레 관광지가 됐다. 타지 사람들은 사방이 뚫린 시장에 망설임 없이 들어왔다.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그들의 삶 속에 파묻히고, 그래야 진짜 부산을 맛본다. 자갈치시장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이렇게 사람 사는 모습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갈치시장이 ‘명품’을 외치며 깔끔한 외관과 최신시설을 갖추는 사이, 사람을 불러들이는 시장 본래의 모습은 옅어진다. 자갈치시장을 ‘사람’이 모이는 길거리가 아닌 ‘관광객’이 모이는 공간으로 바라봤기 때문일 것이다.

▲ 김영아 기자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들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남겨놓아야 했다. 번듯한 건물과 깔끔한 포장도로에서는 어쩐지 삶의 냄새가 나질 않는다. 시장거리에서 상인들이 하나둘 떠나가면서, 그들의 삶도 시장에서 하나둘씩 사라졌다. 부산을 찾는 타지 사람들이 자갈치시장에서 진짜 부산의 삶을 접할 수 있는 매력 또한 사라지는 꼴이다. 이제 사람들은 어디서 ‘부산’을 느끼고, 어디서 진짜배기 ‘자갈치 아지매’를 만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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