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 등 복고풍 드라마에 중견배우 휩쓸어
[지난주 TV를 보니: 10.25~31]

‘젊은 애들’이 케이블과 인터넷으로 간 탓일까? 공중파 드라마의 판도가 중년층이 선호하는 복고풍 소재와 중견 스타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10월 마지막 주, 주간 시청률 정상에 오른 SBS 대하드라마 <자이언트>가 대표적인 예. 지난 26일 방송분에서 민우(주상욱 분)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간절한 사랑을 밀어낸 채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는 미주(황정음 분)의 모습을 보여 준 <자이언트>는 시청률 28.7%(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기준)로 <대물>(26.4%)을 당당히 제쳤다.

 <자이언트>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한 가족의 성공기를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피도 눈물도 없이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듯 했던 민우가 미주를 만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진화해가는 캐릭터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자이언트>의 흥행은 최근 한국 안방극장 주 시청층의 변화를 대변한다. 최근 막을 내린 KBS 2 TV <제빵왕 김탁구>와 마찬가지로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 밑바닥에서 출발한 인물의 눈물겨운 성공기를 절절하게 보여줘 30~60대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연령대 변화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김남주, 황신혜, 김혜수, 고현정 등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이미 10여년 전 전성기가 지났다고도 볼 수 있는 중견 여배우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상큼함과 발랄함 대신 원숙함과 노련미로 옷을 갈아입고 ‘중년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 <역전의 여왕>의 한 장면 ⓒ캡처사진
드라마의 열세로 한 때 고민에 빠졌던 MBC는 최근 월화와 수목드라마 모두 중년 여배우를 전면에 배치했다. 월화드라마 <역전의 여왕>에서 김남주는 일에는 억척이지만 연애에 쑥맥이던 노처녀로 등장, 훈남 신입사원에게 꼬리치는 작업녀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결혼에 성공한 후에는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가계를 책임지는 억척주부로 거듭나며 눈물과 웃음을 버무린 명품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부진의 늪에 빠졌던 수목드라마도 황신혜 김혜수 투톱의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물론 요즘 가장 눈길을 모으는 여주인공은 SBS <대물>에서 여성 국회의원으로 맹활약 중인 고현정이다.

 반드시 주인공 역할이 아니더라도 존재감이 뚜렷한 중견 여배우가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KBS 2 TV의 <신데렐라 언니>에서 남자와 돈을 밝히는 변신의 귀재 송강숙을 실감나게 연기한 이미숙이 그렇고, <제빵왕 김탁구>에서 아들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과 야망을 표독스럽게 연기한 전인화도 그렇다. SBS의 <나쁜 남자>에서 격정 멜로를 선보인 오연수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이들 중견 여배우들은 중장년 시청자들이 젊은 시절 열광했던 스타들로, 나이 들면서 원숙한 아름다움과 연기력을 더해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공중파 TV의 주요 시청층이 중장년층으로 넘어가고, 드라마 소재와 연기자 선택도  이에 좌우되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닌 듯싶다. ‘공중파는 가난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자조적인 얘기가 해외로부터 전해져 온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젊은 미디어 수용자들이 공중파TV보다 인터넷과 케이블 등 신생 미디어를 더 익숙하게 여긴다는 말도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흐름이 미디어 생태계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두들 궁금해 하고 있다. 브라운관 앞으로 바싹 다가선 중장년층을 끌어안으면서도 떠나는 젊은층을 붙잡을 수 있도록, 공중파 제작진의 긴장과 분발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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