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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한정 세습’으론 망할 수도 있다
무명 매니저 발탁한 버핏이 우리 기업에 주는 교훈
[두런두런경제] 박경철 제정임 이성철의 생생토크
2010년 10월 31일 (일) 10:28:00 윤성혜 기자 yoonsh@danbinews.com

   
박경철(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안녕하십니까. 국내 기업들이 차명계좌와 비자금, 자녀에 대한 불법경영권 승계 문제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워런 버핏이 무명의 펀드매니저를 후계자로 선정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책임자로 뽑힌 사람은 39살의 토드 콤스인데, 버핏은 그가 회사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누구보다 잘 운영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발탁했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실력을 본 것이죠. 이에 비해 국내 대부분 기업들은 자동차 보험의 ‘가족 한정 특약’처럼 ‘가족 한정 세습’을 고집합니다. 보험의 가족 한정 특약은 운전면허가 없으면 보장받지 못하지만, 기업경영권은 경영 능력이 없어도 보장됩니다. 가족세습 자체가 문제될 수는 없지만 후계자를 가족 내에서만 정하다보면 진짜 리더를 놓칠 수 있는 것이죠. 로마가 쇠락한 것도 자녀세습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 10월의 마지막 주 생생토크 함께 할 두 분, 한국일보 경제부 이성철 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입니다. 먼저 이 부장님, 워런 버핏의 후계자 지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투자․경영철학 공유한 무명 펀드매니터 투자책임자로 선정

이성철(한국일보 경제부장) : 월스트리트에서는 ‘누가 워런 버핏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가 늘 관심을 모았는데요, 지금까지 한 번도 가시적으로 누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39살의 무명 펀드매니저 토드 콤스가 등장했는데요, 월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경력도 일천하고, 그동안 운영했던 자산의 규모도 굉장히 작죠. 물론 이 사람이 100퍼센트 후계자로 임명된 것은 아직 아니고요, 가장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이 된 셈인데, 월가는 좀 의심스럽게 보는 분위기입니다. 콤스가 최고 투자책임자로 임명되니까 곧장 버크셔의 주가가 떨어졌어요. 워낙 알려진 것이 없다 보니 시장에서 조금 불안하게 바라보는데요, 분명한 것은 그가 워런 버핏과 투자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리하게 이익을 내기 보다는 손실을 방어하는 쪽, 조금 보수적인 편이라는 것이죠. 사실 워런 버핏을 ‘투자의 귀재’ ‘미다스의 손’이라고 얘기를 합니다만, 장기 수익률이 높은 거지 단기수익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콤스라는 인물도 투자철학, 경영철학을 공유한다는 것이 후계자 선정에 가장 유력한 배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능한 경영자는 혈연이나 지연보다 자기의 경영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인물을 뽑는 게 가장 중요한 잣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 제 교수님, 워런 버핏 할아버지가 워낙 통찰력이 뛰어난 분 아닙니까. 더구나 평생 동반자인 찰리 멍거와 합의를 해서 콤스를 발탁했을 텐데요. 그래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들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죠?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 안 좋아한다기보다, 아까 이부장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콤스라는 인물이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되고 확인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뭔가 불확실하다는 것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버핏이 떠나는구나, 그러면 누가 해도 버핏만 하겠나’ 이런 우려도 있는 것 같고요. 하지만 콤스에 대한 기대감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버핏은 이미 자신의 재산 90퍼센트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속한 사람이고, 투명한 승계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왔고요, 지금까지 투자에서 보여준 판단력을 미루어볼 때 그의 사람 보는 눈을 믿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예, 사실 버핏은 세 자녀에게 1억 달러가 조금 넘는 돈을 물려줬고, 세 자녀는 그 돈을 고스란히 자선재단 운영에 쓰고 있죠. 그리고 워런 버핏이 가진 90퍼센트 이상의 자산은 콤스라는 무명의 펀드매니저가 잘 운용해서 빌게이츠 재단 같은데서 좋은 일 하는데 써라 하는 만화 같은 이야기 아닙니까. 이런 면에서 우리가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겠죠. 어떻습니까, 우리 기업들처럼 후계자를 자녀 가운데서만 선정한다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위해서도 썩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제 :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 자체가 나쁘다, ‘절대 악’이다, 이렇게 볼 수는 없겠죠.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 후계자가 과연 기업을 잘 꾸릴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 승계과정이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됐느냐 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 기준을 통과한다면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유럽의 대기업들 중에서도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곳이 있는데, 우선 다른 경영자들과 경쟁을 시키고, 일부러 어려운 공장을 맡겨 해결하는 능력 등을 본 뒤 합격한 경우에 후계자로 발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식을 곱게 키워서, 그룹의 알짜배기 자산과 주요한 일감을 몰아주어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성과를 축적하게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줬는데도 실패하는 사업이 있으면 그룹의 다른 기업들이 대신 떠안아 주기도 하고요. 재산을 증여하는 과정에서도 세금을 요리조리 회피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보니 승계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승계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회적인 지지가 생기질 않고 시비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과거 20~30년을 돌아보면, 거리에 간판이 크게 내걸렸다가 지금은 사라진 대기업들이 많습니다. 그 대기업들이 대부분 2세, 3세 승계과정에서 망했어요. 한 대기업이 몰락한다는 것, 최고경영자가 능력이 없어서 기업이 망한다는 것은 개인의 손실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주주들의 손실이고 직장을 잃게 된 노동자들의 손실이고 국가전체의 손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기업들의 승계구도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거죠.

: 말씀을 듣고 보니까 다른 나라들은 아들, 딸에게 물려주더라도 기업 내 경쟁을 시키는데 우리는 아들, 딸끼리 집안 내 경쟁을 시키죠. 월드컵 승률을 정확히 맞췄던 스타 문어 파울이 죽으니까 프랑스 출신 문어가 후계자로 선정됐다고 하던데, 요런 승계에는 혹시 불법, 편법, 비자금이 개입하지 않았을까요?(웃음) 이부장님, 이번 주 어떤 뉴스에 주목하셨습니까?

이 : 네, 큰 뉴스가 많았습니다. 일단 지난 주말 G20 경주 재무장관회의에서 이루어졌던 합의가 환율전쟁의 향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심이 갑니다. 두 번째는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결국 퇴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것, 마지막으로 LG전자의 실적악화 문제, 이렇게 세 가지를 꼽아봤습니다.

: 예, 의미심장한 소식들을 꼽으셨는데요, 제 교수님은 어떤 뉴스를 뽑으셨습니까?

제 : 네, 저는 한나라당이 ‘부자감세 철회’를 검토하다가 아니라고 하는 등 논란을 빚었던 해프닝을 주의 깊게 봤고요, 주요 20개국 정상회담, 즉 G20회의를 앞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밀실 재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기업형 슈퍼마켓이죠, SSM의 골목상권 진출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의 국회처리가 여야 공방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을 꼽았습니다.

: 저는 G20경주회의, 그리고 천신일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 압박, 그다음으로 SSM 처리과정, 이렇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우선 라응찬 회장 사태부터 짚어보죠. 이부장님, 라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을 모아놓고 했다는 얘기가 의미심장하더군요. “연임을 하려고 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이 말의 함의가 만만치가 않은데요. 이부장님, 이 사태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신한사태 문제는 후계구도의 불확실성 때문

   
이 : 신한사태가 터진지 두 달 됐습니다. 발단은 신한금융지주가 신상훈 사장을 횡령 문제로 고소를 한 것이었죠. 사실 신 사장은 라응찬 회장으로부터 가장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고, 신 사장의 라 회장에 대한 충성도 대단해서 이 두 사람이 갈라지는 일은 누구도 상상 못했죠. 라 회장이 그만두게 되면 당연히 신한의 대권은 신 사장에게 갈 것이라고 생각들을 했는데요, 이 두 사람을 갈라지게 한 것이 뭐냐는 것을 놓고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연임을 둘러싼 문제, 비자금을 둘러싼 갈등, 정치권 개입설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결국 따지고 보면 후계구도를 두고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 점, 그 갈등 문제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이제 결국 두 사람 모두 중도 퇴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지배구조가 가장 튼튼하고, 모든 은행들이 모델로 삼았던 신한은행이 이렇게 될 줄은, 또 ‘살아있는 경영의 신화’로 여겨졌던 라응찬 회장이 51년 뱅커 생활을 이렇게 마감하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이고, 금융사로서도, 또 우리 경제로서도 대단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예, 애당초 3연임 정도 하고 명예롭게 박수를 받으면서 떠났다면........ 하는 생각도 들고요, 반대로 신 사장의 경우는 어차피 기다리면 언젠가는 기회가 왔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렇게 되면 이백순 행장, 이 분의 운명은 어떻게 됩니까?

이 : 어차피 경영이라는 것은 지속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세 명이 옷을 벗긴 어렵겠지만 이 행장도 결국은 책임을 공유하는 수순을 밟지 않을까 예상이 됩니다. 3자가 결국 시차를 두고 다 물러나는 상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제 교수님, 누가 승계자가 될지 모르지만 하마평이 벌써 돌기 시작하더군요. 내부 인사도 있고, 정치권에서도 이야기가 오가고요. 여기서 방향을 잘 잡지 못하면 나름대로 방어벽을 구축해왔던 금융사들이 또다시 관치의 시대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죠?

제 : 그렇습니다. 아까 이부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은 굉장히 모범적인 금융사였고, ‘신한 웨이(Way)’라고 경영학 용어까지 만들어내면서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과시해왔었죠. 이렇게 쌓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이번에 물거품이 된 것이죠. 앞으로 누가 경영책임을 지더라도 무너진 주주들의 지지, 고객들의 신뢰, 그리고 종업원들의 자부심, 이런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금융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도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요.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걱정을 하는 것은 힘의 공백이 나타난 상황에서, ‘낙하산’이라고 하는 관치금융의 유혹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까 하마평 얘기를 하셨는데 논의되고 있는 이름들을 보면 내부인도 있지만 외부 유력자와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불행한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신한은행의 재일동포 주주들이 ‘세 사람 모두 물러나라’고 하면서도 ‘후임은 꼭 내부에서 발탁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죠. 민간은행으로서의 자율성, 독립성을 해치지 않게, 투명하게 후임자 인선이 이뤄지도록 사회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 지금부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한이 제대로 이 상황을 수습 못하면 반드시 외부의 힘이 들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금융이 더 이상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잘해야 합니다. 정부와 당국 쪽에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요, 지금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우리가 들어가서 바로 잡아야 된다는 ‘선의의 개입’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느낀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참아야 하고, 기다리는 게 정부가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LG전자, 하드웨어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도

   
: 이번엔 LG전자 ‘어닝쇼크’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요? 이부장님이 주목하신 이슈였어요. 사실 이것이 의미심장한 게, 국내 대기업들이 자칫 안주하고 주춤하다가는 정말 하드웨어 장비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는 사태 같았고, 또 외부보다는 기업 내부문제라는 시각이 많은데요.

이 : LG전자가 지난 3/4분기에 무려 1,800억 원의 적자를 냈죠. 아시다시피 그 이유는 스마트폰 때문이고요. 애플이 워낙 앞서나갔고, 삼성은 추격을 하고 있는데 LG는 전혀 대응을 못했어요. 사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만 하더라도 LG가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3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소니 에릭슨을 제쳤고 모토로라까지 따라 잡으면서 노키아, 삼성과 함께 이른바 ‘3강구도’를 형성했다고 찬사를 받았었는데요, 스마트폰으로 급변하는 환경에서 타이밍을 놓친 것이죠. 자꾸 대응을 늦추다 보니까 결국 이렇게 된 건데, 그래서 최고경영자인 남용 부회장이 경질됐는데요, 전적으로 경영상의 잘못이고 외부를 탓할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에 백색가전이라든가, 중후장대 사업 등 기술의 변화가 빠르지 않은 분야에서는 조금 늦게 움직여도 기회가 있었는데요, 스마트폰처럼 기술적 흐름이 빠르고, 또 어떻게 보면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산업에서는 출발이 하루라도 늦으면 1~2년 격차로 벌어질 수도 있는 거거든요. 지금 같은 IT산업, 흐름이 바뀌는 이 시대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이 됩니다.

: 사실 이렇게 패러다임 전환기에 대처하지 못해서 순식간에 퇴장 당한 기업들이 많지 않습니까. LG전자가 극복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하면 큰 위기에 빠진다는 것을 다른 기업들도 되새겨야겠죠?

변화하는 산업 흐름 읽고, 연구개발 통해 대응해야

제 : 네, 마이크로소프트가 언제까지나 1등일 것 같았는데 지금은 구글이 판세를 뒤집어 놓은 것을 봐도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얘기를 다시하게 됩니다. LG전자 어닝쇼크에 관련해서는 저도 두 분하고 같은 의견입니다. LG가 휴대폰 제조사로는 세계 3위였지만 스마트폰 부분에서는 10위권에 겨우 턱걸이밖에 못한 것, 차세대 경쟁에 뒤쳐졌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회사 전체로 1,800억 원 적자라고 하지만, 스마트모바일 부분에서는 적자가 3,000억 원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다른 곳에서 메워준 거죠. 산업의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는데 거기에 맞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 경영판단과 전략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겠죠. 그래서 최고경영자도 교체됐지만, 전임 최고 경영자가 브랜드 가치 제고라든지 마케팅 쪽에 너무 신경을 썼고, 연구개발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았죠. 지금 LG전자가 겪고 있는 위기가 어떤 기업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뒤져서 각성을 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또 어떤 부분에서 이런 위기를 겪을지 모르는 것이고, 현대자동차가 잘 팔린다고 하지만 어떤 도전을 받게 될지 모르는 것이죠. 변화하는 산업의 흐름을 치밀하게 읽고 연구개발을 통해서 적절히 대응하려는 노력,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 이번에는 슈퍼슈퍼마켓 규제 법안 얘기를 해보겠는데요. 제 교수님, 청취자 분들 중에는 이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순차 처리다, 일괄 처리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하는 소리도 나올 만 한데요, 법안 처리가 왜 지연되고 있습니까?

   
제 : 지금 SSM, 즉 기업형 슈퍼마켓에 관련된 법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유통법이라고 줄여서 얘기하는 유통산업발전법안이고요, 다른 하나는 줄여서 상생법이라고 부르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안, 이렇게 둘입니다. 유통법은 재래시장 반경 500미터 안에는 SSM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이고, 상생법은 SSM의 입점이 허용되는 곳에서 주변 중소상인들이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을 때 서로 협의해서 사업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히 직영점은 물론 가맹점이라고, 프랜차이즈 업체 있지 않습니까, 대기업이 51% 이상 출자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SSM에 대해서도 사업조정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게 상생법안의 핵심입니다. 지금 이 얘기가 왜 문제가 되냐면 직영점을 낸다고 해서 반발이 거세니까 대기업들이 중소업자들을 내세워 가맹형태로 점포를 늘리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 중 유통법에 대해서는 여야가 빨리 처리하자는 합의를 했는데, 상생법에 대해서는 대기업들, 특히 영국의 테스코와 삼성이 합작한 홈플러스에서 강력히 반발하니까 한나라당에서 이건 나중에 하자며 처리를 미뤘죠. 민주당은 둘을 한꺼번에 처리하자는 입장이었다가, 분리 처리하는 데 합의했다가, 다시 동시처리를 주장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결국 지난 26일 유통법 처리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법안처리가 지연되는 동안 SSM은 계속 입점을 하고 있어서 중소상인들은 애가 닳습니다. 지금 당장 생존권이 걸린 문젠데 빨리 법안을 처리해서 제동을 걸어주지 않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죠.

: 이부장님, 이 사태에 대해서 김종훈 통상교섭 본부장이 한마디를 하면서 민주당이 주춤하지 않았습니까. ‘한유럽 FTA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유럽의회에서는 자기네에게 경제적 피해가 있을 경우 긴급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죠. 유럽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우리는 영국 기업 테스코 눈치 보면서 이거 하나 마음대로 못하나 하는 감정적 판단이 생길수가 있겠죠.

유럽 국가 대부분,  중소상인 위한 유통업 규제 갖고 있어

이 : 사실 정부는 이들 법안이 중소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애초에 좀 소극적이었고, 정치권이나 청와대에서 이들 법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일단 한다고 했을 때 유통법과 상생법을 같이 안하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유통법만 한다면 재래시장 주변에 달랑 몇 군데만 금지구역같이 묶어놓는 그런 효과밖에 없지요. 그리고 이 법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지나치게 규제한다는 식의 본질적인 문제를 갖고 논쟁을 벌여서 찬반논쟁을 하면 모르겠는데, 무슨 통상 때문에 안 되느니, 뭐 절차가 어떠니 이런 거 가지고 지연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책이 그렇지 않습니까. 논쟁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면 결국은 선택을 하는 문제죠. 미국 어느 카운티는 월마트 입점을 규제하고 어떤 곳은 자유롭게 허용합니다. 결국은 지역주민들 내지는 유권자들의 의견에 따라서, 그리고 당국의 판단에 따라서 정책을 선택하는 문젠데, 정부도 정치권도 말로는 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은 별로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제 : 이들 법안에 통상마찰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민주당도 잠깐 흔들렸는데, 그 내용을 세세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상마찰의 소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유통 대기업의 진출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자유무역을 규정하는 국제규범에 반한다는 뜻인데요, 사실은 프랑스나 이태리, 독일 같은 유럽 주요국가들 대부분이 중소상인 보호를 위한 유통업 규제를 다 갖고 있습니다. 이태리 같은 경우는 제 기억에 단일 유통 대기업이 전체 시장 점유율의 2%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아주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고요, 프랑스나 독일 같은 경우는 기존 상인들에게 10% 이상의 매출하락 피해를 입히는 경우 입점을 허용하지 않는다던지, 일요일이나 평일 야간에는 영업을 못하게 한다든지, 특정 제품을 취급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등등 자기네 나라 문화나 유통구조에 따라서 다각적인 규제를 두고 있습니다. 이번 한-EU FTA 에서도 예를 들어 프랑스는 우리나라 백화점이 진출하기 어렵게 만드는 규제를 이미 넣었는데, 우리가 중소 유통업의 생존을 위해 대책을 세우려고 하는 것을 우리 통상교섭 본부장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네요.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국내외 기업을 차별하는 규제가 아닌 한, 합리적이고 공평한 규제는 만들 수 있다는 게 기본 정신입니다. 통상마찰 때문에 이런 규제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그냥 인정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따져보고 논리적인 허구성을 제대로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 EU에서도 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한 수정안을 만들고 있다는데 우리는 영세상인들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보호법도 못 만드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거지요.

이 : 통상도 중요합니다만 다른 경제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을 도와주고 보조해주는 역할이 되어야지, 통상마찰 최소화가 정책의 목표가 될 순 없겠죠.

: 오늘도 이렇게 말씀을 나누다 보니까 끝날 시간이 됐군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 한국일보 경제부 이성철 부장, 두 분 말씀 고맙습니다.


*이 기사는 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분량상 일부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박경철의 경제포커스>10월 30일자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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