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쾌적한 도심 가을 음악축제로 자리 잡아

언제부터였을까. 락 페스티벌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든 것은. 이 땅에서도 지산밸리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등이 무아지경의 연주, 관객들의 헤드뱅잉(머리흔들기), 밤샘 캠프 등 ‘뜨거운 여름 풍경’을 만들어 낸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리고 늦가을, 이번엔 도심에서 열리는 그랜드민트 페스티벌(GMF)이 음악 팬들의 열정을 끌어안았다. 지난 23일과 24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GMF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만큼 쾌적하고 편안한 도심 음악 축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23일에 열린 그랜드민트페스티벌 공연장면. ⓒ 민트페이퍼

한여름에 경기도 이천과 인천 송도 등에서 열린 지산밸리, 펜타포트 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이 장맛비, 폭염, 모기 등 ‘야생’에 적응해야 했던 것과 달리 GMF의 참가자들은 행사의 슬로건처럼 ‘도시적 세련됨과 청량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올림픽 공원의 깔끔한 화장실, 편의점, 주차장, 현금지급기 등을 이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미술관, 산책로 등 열기를 식히고 한 숨 돌릴 공간까지 구비됐다.  

GMF가 열린 이틀간 올림픽 공원에서는 락 페스티벌 관객과 마실 나온 지역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졌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무대는 ‘카페 블로썸 하우스’다. 노천카페에서 소박한 길거리 연주가 벌어졌다. 티켓 없이 감상할 수 있어서 조깅을 하던 지역주민들도 잠시 멈춰 신인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의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입상을 하지 못했던 ‘일단은, 준석이들’도 이 무대에서 못다 한 열정을 불살랐다.

중앙 무대인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는 잔디마당에 펼쳐졌다. 무대의 전면에는 서서 음악을 즐기는 스탠딩 관객석이 있고, 조금 떨어진 잔디밭에는 피크닉 구역이 몇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공간이 넓고, 무엇보다 잔잔하고 현대적인 음악이 주를 이룬 까닭에 유모차를 끌고 온 관객과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관객도 부담 없이 어우러졌다. ‘페퍼톤즈’ ‘노리플라이’ 이소라 등 인기 아티스트가 나올 때마다 스탠딩 존으로 달려 나가 열광하는 이도 있고, 피크닉존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즐기며 가만히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 피크닉존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민트페이퍼

현란한 특수효과와 풍부한 음향을 선보여

체조경기장에 마련된 ‘클럽 미드나잇 선셋’ 무대는 실내 공연장의 특성을 살려 현란한 특수효과와 풍부한 음향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화려한 조명과 풍부한 사운드를 활용한 ‘언니네 이발관’과 이승환의 라이브에 공연장이 떠나가라 환호를 보냈다. 88연못 옆에 설치된 ‘러빙 포레스트 가든’에서는 물가의 잔잔한 바람이 전자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어쿠스틱 연주와 멋지게 어우러졌다. 특히 정재형의 피아노곡과 ‘뜨거운 감자’ 김C의 목소리는 무대와 낭만적인 조화를 이루어냈다.

총 네 개의 무대에서 각기 개성이 다른 아티스트가 동시에 공연을 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종종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이 겹치면 하나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둘째 날 마지막 공연은 중앙무대에서 이소라, 세컨드 무대에서 김윤아, 수변 무대에서 ‘뜨거운 감자’가 같은 시간에 배정돼 많은 관객들이 속병을 앓았다. 대학생 성경은(24)씨는 “이틀 동안 나름대로 좋아하는 공연을 잘 찾아다녔지만 마지막 공연만큼은 어느 하나 포기하기 힘들어서 끝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뜨거운 감자’의 김C도 공연 도중 “주최 측의 교묘한 술수로 쟁쟁한 뮤지션과 같은 시간에 공연하게 됐다”고 우스개 섞인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소라, 심성락 등 차별화된 출연진으로 개성 드러내

GMF는 계절과 장소 외에 차별화된 출연진으로도 개성을 드러냈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활성화된 여타 락 페스티벌은 색깔이 비슷비슷한 출연진으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GMF는 다른 무대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아티스트들을 많이 등장시켰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대형 공연을 펼쳐 온 재일교포 뮤지션 양방언과 올해 77세의 아코디언 장인 심성락의 출연은 GMF만이 할 수 있는 실험이었다. 이들의 무대를 본 관객들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년에도 모셔 달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어떤 매체나 공연에서도 만나기 어려웠던 ‘에피톤 프로젝트’도 GMF에 모습을 드러내 관객들을 열광하게 했다. 가을 분위기와 특히 어울리는 가수 이소라는 이번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즉 대미를 장식하는 주요공연자로  맹활약했다. 음악방송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오래 맡아온 진행자답게 멋진 노래와 말솜씨로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대학생 김용근(27)씨는 “오랫동안 봐 온 뮤지션인데 음색이 더 풍성해져 있었다”며 “아름답고 대단한 무대였다”고 감탄했다.

 

▲ '뜨거운 감자' 공연모습. ⓒ 민트페이퍼

GMF는 도심의 음악축제답게 환경과 안전을 위한 배려도 치밀했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음료수 병이나 캔 등의 반입을 철저히 규제했고 음식물도 재활용기와 밀폐용기 등에 담은 도시락만 허용했다. 곳곳에 배치한 쓰레기통은 종이, 플라스틱 등을 철저하게 분리수거하도록 했다. ‘노리플라이’의 기타리스트 정욱재는 환경 캠페인에 나서 쓰레기 줄이기, 분리수거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행사장 치고는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떡볶이(2천원), 타코야끼(5천원), 샌드위치(4천원) 등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대부분 도시락, 과일, 과자 등을 직접 싸들고 와 소풍처럼 음악축제를 즐겼다.

이처럼 야외 페스티벌의 불편함과 위험 요소가 없는 도심 축제여선지 GMF에는 특히 여성 관객이 많았다. GMF 관계자는 “관객의 70% 이상이 여성”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관객도 많았다. 주최측은 피크닉 구역 끝에 ‘오마이베이비(oh my baby)' 부스를 만들어 부모들이 어린 아이를 맡기고 편하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이 곳에는 아이들이 놀거나 잠잘 수 있는 푹신한 매트와 미니 놀이터, 트램펄린(퐁퐁) 등이 마련돼 있었다.

가족, 장애인도 참여할 수 있는 GMF 락 페스티벌

GMF가 락 페스티벌의 ‘야성’을 잃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불편한 교통시설과 숙식 문제, 폭우가 쏟아지면 발목까지 차는 진흙 뻘은 교외 페스티벌의 도전이지만 또 하나의 재미이고 낭만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락 페스티벌의 정신이 ‘살아있는 락 음악’이며 ‘혁명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이라고 본다면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GMF는 락 페스티벌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여름 벌판의 땡볕과 폭우가 부담스런 가족단위 관객과 장애인 노약자도 참여할 수 있는 편안한 가을 소풍 같은 축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4년째인 GMF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매진, 올해 유료 관객 3만 명의 기록을 달성한 것은 락 페스티벌이 파고들 수 있는 ‘틈새’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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