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언론인이자 신문 발행가였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퓰리처상이 제정됨

헝가리에서 태어나 1864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남북전쟁에도 출전하였으며 1867년에는 미국에 귀화한다. 1868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독일어 신문 <베스틀리헤 포스트>의 기자가 되었고 1869년 미주리 주의회 의원으로서 정계에 진출하였다. 그는 1890년경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시력을 잃었고, 1906년에는 '자유호'라는 배를 타고 유랑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1903년 6월 컬럼비아 대학에 2만 2,000달러를 기부하여 신문학과를 창설하였다. 그가 죽은 후 유언에 따라 1917년 '퓰리처상'이 제정되었다.

1999년 코소보 사태, 워싱턴 포스트의 사진기자 세 명은 난민 캠프에서 석 달을 보냈다. 캐롤 구지는 알바니아 쿠케스의 임시 캠프로 향하는 난민들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소지품을 압수당한 채 입국을 기다리던 샬라 가족이 캠프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상봉했다. 철조망 밖 조부모에게로 두 살 난 아킴 샬라가 건너갔다. “어떤 사진도 눈물과 고통, 그들이 헤치고 지나온 지옥을 설명할 수 없었다.” 구지는 이 사진을 포함해 네 번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성 사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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