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문사철특강] 도종환 시인
주제① 질주하는 사회, 성찰하는 삶

▲ 강연하는 도종환 시인. ⓒ 이슬기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 가지세요”

인간이 존재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을 한 편 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리니 상당한 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문사철 특강’에 첫 강사로 초빙된 도종환 시인은 “아주 잠깐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작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빔프로젝터로 스크린에 띄운 뒤 그 시를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친구들과 길을 가다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들꽃을 발견하고 잠깐 멈춰 서서 그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앞서 가던 친구들이 ‘뭣 하냐’고 소리쳐 부를 때까지 꽃을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잠깐 생각해보았던 거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질주하는 사회, 성찰하는 삶>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도 시인은 언론인의 삶도 성찰하는 태도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물이 급하게 흘러도 달은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리 몸이 바빠도 영혼은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급히 가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서서 뒤를 바라본다고 했다, 자신의 영혼이 쫓아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본질을 놓치지 않는 삶’은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지망생들이 기억해야 할 삶의 태도로 느껴진다.

“잠깐이면 돼요. 현대인들이 얼마나 바쁜가요? 특히 정해진 시간 내에 뭔가를 해내야 하는 기자나 피디들의 삶은 더 하죠. 매일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되죠? 정신이 없는 삶이죠. 영혼이 없는 거예요. 자신을 정돈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흙탕물도 내버려두면 맑아지죠. 순간순간 고요해지는 시간을 가지세요. 나를 위한 시간을 비워두세요.”

매보다 약한 오리는 어떻게 도태하지 않았는가?

도 시인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무한경쟁 사회의 논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람들은 대개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 논리’에 동의하며 당연히 남보다 강한 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물학 법칙이 사회로 확장돼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나왔다. 현대인들은 이제 온 몸으로 적자생존의 법칙을 내면화한 채 숨가쁘게 살아간다.

과연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일까? 매와 오리를 비교해보자.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진 매는 오리보다 강한 종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오리는 진작 도태되었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개체수로는 오리가 매보다 훨씬 많다. 서로가 조화를 이루며 돕기 때문이다. 크로포토킨은 이를 ‘상호부조성’으로 표현했다.

“동물의 세계가 냉혹하고 약육강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죠. 약육강식만이 생존원리가 아닙니다. 상호협력과 부조 역시 생존원리인 거죠.”  

 

▲ 도종환 시인은 자작시들을 낭송하며 강의를 진행해 감동을 안겨주었다. ⓒ 이슬기

세상은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이다. 선과 악이 딱 부러지게 구분되지도 않는다. 이런 세상을 바로잡는 일은 굉장히 힘들다. ‘공공선’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양한 의도와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이기에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시인은 이렇게 경쟁과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언론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쟁 없는 사회가 어디 있는가라고 말하지만 서로 협력하는 사회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과도한 경쟁은 분열을 일으키고 분열은 곧 사회를 파괴하는 전쟁이 되기 쉽죠. 이젠 경제전쟁의 시대입니다. 이라크 전쟁도 명분은 대량 살상 무기였지만, 결국 석유를 둘러싼 일종의 경제전쟁이었다고 볼 수 있죠. 언론인이라면 이런 이면을 파헤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세상은 행복해져야 한다

‘다양한 욕구가 존재하는 사회. 성공의 서사와 실패의 오디세이가 뒤섞여 있는 세상.’ 시인은 현대사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TV를 보면 이 사회에서 잘나간다는 이들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인기연예인, 재벌총수, 권력자를 선망하면서 한편으로 ‘나는 실패자’라며 짐짓 절망한다. 사람들은 평등지향의 욕구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인은 오늘날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급증하는 원인을 그렇게 진단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정말 행복한 사회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욕망이 현실보다 항상 조금 위에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고 청년들은 좋은 직장에 가길 원하며 직장인들은 좋은 집을 사기를 원한다. 시인은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나열하며 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진단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보다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원하기에 끝없이 지금은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도 시인은 플라톤의 말을 빌려 해법을 제시했다.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라 했다. 먼저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외모’-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스치면 아름다움을 모른다. 한 사람을 오래 두고 봐야 아름다움 알 수 있다. 다음은 ‘자신의 기대의 절반만큼 알아주는 명예’- 대통령도 투표자 중 절반의 표만 얻어도 당선된다. 곧 절반의 지지라도 상당한 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이 말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음을 인정하라는 의미다.

도종환 시인은 강연 말미에 ‘그럼에도 정신’을 강조했다. 켄트 케이스의 <어쨌든; Anyway>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말로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상대를 비난하고 질투하고 속일지라도, ‘그럼에도’ 용서하고 친절하고 정직하라는 것이다. 그의 시를 소개한 뒤 그것을 기자 혹은 피디 정신으로 삼아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보통 사람들은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사람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언론인은 이런 사람을 수없이 상대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그럼에도 정신’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남들이 아니라고 할 때, 별 볼일 없는 것이라 치부할 때, ‘그럼에도’ 끝까지 다가가고 파헤치는 존재가 바로 기자와 피디가 아니냐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목표가 있고 언젠가는 목표를 달성하는 이가 많다. 도 시인은 가는 길 자체를 즐기면서 가라고 말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을 즐기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며, 벅찬 감동을 느끼면서 가라는 것이다. 그 목표도 많은 봉우리 중 하나다. 높이 오를수록 외로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올라감이 있다면 내려감이 있음을 기억하고, 내려와서는 그 과정이 하찮지 않았음을 알라. 시인은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하면서 <산을 오르며>라는 시를 소개했다.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문사철특강>은 도종환, 김진석, 한홍구, 이권우, 이주헌, 장승구 선생님이 맡는데, 강의일정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공지사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개를 원하지 않는 분을 빼고는 강의내용 일부를 <단비뉴스>가 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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