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miss A, 젊은층에 낯선 선율과 리듬에 반하다


가인이 ‘돌이킨’ 탱고, 연인을 잡지는 못했지만...

이글거리는 사막.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곳에 한 여인이 있다. 짙은 눈화장이 눈물로 얼룩져 있다. 음악이 흐르자 튕기듯 몸짓이 시작된다. 남자 댄서의 몸에 닿을 듯 닿지 않는, 그의 춤은 어딘가 슬퍼 보인다.

뜨거운 사막 위에서 정열적인 탱고를 추는 그녀는 바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가인. 그의 솔로곡 ‘돌이킬 수 없는’은 정통 탱고 세션에 전기음을 얹어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사랑하는 연인을 보낼 수 없다는 애절한 가사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게 하는 데 관능적인 탱고의 선율이 큰 몫을 했다.

▲ 뮤직비디오 ‘돌이킬 수 없는’의 한 장면. 탱고를 추는 가인도 사막이 타오르듯 열정적이다. ⓒ 곰tv

냉정과 열정, 긴장과 불안 속에 절도 있게 이어지는 멜로디. 이러한 탱고 음악이 탄생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19세기 말, 유럽 이민자들은 꿈을 찾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흘러들어왔지만 철저한 소외와 좌절,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여기에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몰려든 가우초(gaucho: 삶에 실패한 스페인 사람이 남미 원주민들과 혼혈을 이루며 탄생한 계층)들의 정서가 곁들여져, 삶에 대한 열정과 체념이 공존하는 탱고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원주민들만의 음색과 라틴계 사람들의 격정적 기질이 한데 섞인 것이다.

이러한 탱고는 1차세계대전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파리 등 대도시에서 우아하고 친밀한 탱고로 발전했다. <달 그늘에 피는 난초꽃>, <헤르난도스 하이도어웨이> 등은 탱고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노래들이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아 <제라시> <꿈의 탱고> <푸른 하늘> <장미의 탱고> 등의 가요가 탄생했다.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좌절,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에 대한 권태와 고독은 떠나는 연인을 잡지 못하는 여인의 심경과 비슷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탱고가 아이돌의 음악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miss A가 ‘숨 쉬게 한’ 레게... 연인 앞에선 심장이 뛴다. 

신선한 리듬은 가인을 넘어 다른 아이돌의 음악에도 흐른다. 독특한 안무와 중독성 강한 멜로디로 주목받고 있는 miss A의 ‘breathe’에서다. 사랑하는 연인을 보면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진다는 내용이 그 가사다. 여린내기(박자가 약한 부분, 4분의 4박자인 레게 음은 ‘궁궁쿵궁’ 식으로 3번째 박자가 강조된다)를 사용해 사랑에 빠진 여인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이 노래는 레게 스타일의 박자를 활용했다.

흥을 돋우고 감정을 몰입시키는 데 적절한 레게 리듬은 본래 자메이카에서 생겨났다. ‘breathe’에서 들을 수 있는 템포는 1940년대 후반 자메이카에서 기계처럼 규칙적인 리듬을 가진  멘토(Mento: 식민지 시절 플랜테이션 농장의 흑인 노예들이 즐기던 축제음악)의 요소다. 무대 후반부에서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는 독특한 동작이 음악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까닭도 그 기원에서 찾을 수 있다. 콜럼버스가 자메이카를 방어하려고 데려온 아프리카 흑인노예들이 산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독특한 종교의식을 치르며 결속을 다진 것이다. 기예를 선보이는 듯한 miss A의 안무는 마치 집단가무의 일부를 보는 듯하다.

▲ miss A의 ‘breathe’ 뮤직비디오 후반부. ⓒ 곰tv

레게 리듬이 가진 독특한 요소는 서구의 팝음악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북치기 수법, DJ 토스팅(Toasting :DJ가 음악을 틀면서 임의로 랩을 구사하는 행위) 등은 팝 뮤직계에서 널리 활용되기도 했다. ‘밥 말리’는 레게 음악을 현대적 감각으로 개선해 세계적 인기를 누리게 한 선구자다. 밀리스몰의 <My boy Lollipop>부터 자니 내쉬의 <I Can see clearly now>, 에릭 클립튼의 <Swing low sweet chariot>은 1960년대 이후 세계 대중음악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레게음악이다. 자메이카인들의 삶 자체이자 위안이었던 레게 음악이 ‘돈 버는’ 소스가 된 것이다.

열강과 권력의 횡포에 치어 설움 많은 생을 살았던 사람들. 탱고, 레게 음악의 저변에 깔려 있는 한과 한풀이는 그들의 몫일 테다. 그들의 음악이 시대를 넘어 오늘날의 대중가요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핍박받는 자들의 ‘울컥’했던 심경을 아이돌 음악에서 고스란히 느끼긴 어렵겠다. 그럼에도 음악은 앞으로도 동서와 고금, 중심과 주변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 같다.


이 코너는 음악에 관심이 많은 민보영, 이선필 기자의 음악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대중가요, 인디 등 분야를 불문하고 음악에 담긴 농밀한 사회문화적 담화들을 풀어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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