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홍윤정

‘결혼식’은 어머니들의 촛불 점화로 시작된다. 하지만 둘만의 진정한 ‘결혼의식’은 촛불을 끈 뒤에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혼례 뒤 친인척과 동네사람들이 문종이에 뚫은 구멍으로 신방 촛불이 꺼지는 순간까지 방 안을 엿보았다. 신부가 소박맞지 않아야 불을 끄고 자리에 들었다. 그 때가 정식 부부가 되는 순간이었다. 소박은 이제 없지만 정식 부부가 되는지를 알려면 예식장 밖에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떤 부부는 결혼식을 잘 치르고도 결혼생활 초기에, 심지어 신혼여행지에서 갑자기 갈라서기도 한다. ‘불이 켜진’ 예식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불이 꺼진 뒤’ 결혼생활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갈등을 겪기 때문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천주교 미사의 시작과 끝에는 촛불이 있다. 촛불이 꺼지기 전 사제가 하는 마지막 말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하시오’다. 신자들이 일주일에 한번 미사에 참례한다면, 촛불을 켠 채로 있는 시간은 한 시간밖에 안 된다. 즉, 성당 밖에 나가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살라는 당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 성당에 가기만 하면 신앙인이 된다고 믿는다. 미사에 아무리 열심히 참례하더라도 나머지 시간에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 한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촛불이 꺼진 이후’에 더 경건하고 바르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절과 교회에 출석도장만 찍는 사람보다 타인을 배려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우리는 ‘신앙인답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우리는 불을 밝히는 데 관심을 쏟다가 불을 끈 다음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촛불 앞에서 ‘좋은 배우자가 되겠다’,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살아야지’라고 마음먹지만 그때뿐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종교가 없더라도 중고등학생 시절 수련회 마지막 날 밤에 했던 ‘촛불의식’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평소 부모생각을 별로 하지 않던 아이들도 그때만큼은 ‘말 잘 듣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다짐한다. 그 결심 그대로 살았다면 세상 청소년 모두가 효자 효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촛불이 켜졌을 때 감정은 꺼지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사실 불을 끄고 난 다음이 더 중요한데도 사람들은 이를 자주 망각한다.

▲ 홍윤정 기자
얼마 후면 한국은 ‘불’을 켠다. G20 서울 정상회의 준비위원회가 청사초롱을 공식 로고로 선정했다. 한국이 청사초롱처럼 세계 정상들을 환히 비추고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틀이면 끝나는 회의처럼, 한국이 등불 역할을 계속하기란 어렵다. 불이 꺼졌을 때 어떤 존재로 남느냐가 더 중요하다. 환율 문제를 놓고도 의장국의 체면을 손상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G20 의장국’에는 큰 의미가 있지만, 회의 자체는 국제공조 강화를 위한 하나의 ‘의식’이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혼식보다 결혼생활을 더 꼼꼼하게 계획해야 현명한 부부다. 한국도 등불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G20 이후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어떻게 더 낼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 칼럼은 '불'을 제시어로 쓴 글을 교수님이 첨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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