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 모집중’ 숙명여대를 가다

▲ 구보 전 준비운동을 하는 ‘여군준비동아리’ 회원들. ⓒ 주상돈
여군준비동아리’ 활기…‘내면적 강인함’ 강조

“팔벌려뛰기 30회를 실시하겠습니다. 4의 배수는 번호를 외치치 않습니다.” “하나, 둘, 셋 네에엣…….”

‘아차’하는 순간 “넷” 구령이 새나오고 말았다. 결국 팔벌려뛰기 30회를 한 번 더 하고서야 준비운동이 끝났다. 그러나 실수의 대가로 살벌한 풍경을 예상했다면 틀렸다. 대신 "숙명 파이팅"이란 구호로 서로 격려한다. 이들은 ‘여군준비동아리’로 지난 여름방학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여군을 희망하는 이들이 모여 동아리를 만들었다. 부족한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매일 아침 구보와 팔굽혀펴기를 한다.

아침운동 지휘는 체육교육학 2학년인 우찬송씨가 맡았다. 남색 모자를 눌러쓴 우씨는 빨간 팔각모를 쓴 유격조교를 연상시킨다. 혹시 병영체험이라도 다녀왔냐는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학교에서 군인을 초청해 기본적인 제식을 함께 배웠어요. 아직은 엉성하지만 몸도 말도 익숙해져야죠.”

체력 단련 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은 역시 앳된 여대생. 일반적으로 ‘군인답다’와 ‘남자답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서 여군에게도 남성적 강인함이 강요되어왔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홍보광고학과 2학년 윤해인씨는 내면적 강인함을 강조했다.

“군인은 다 남성적이어야 하나요? 여군까지 외적으로 강함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전공을 살려 군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 준비운동을 마친 뒤 교정을 뛰고 있다. ⓒ 주상돈
여대생들 ‘여군비율 확대’ 압도적 지지 

여군 지원자들의 당찬 포부에 반해 군 내부 여군의 영역은 아직 상당히 제한적이다. 2009년 1월 1일 기준으로 복무중인 여군은 군 간부 정원의 2.28% 수준이다. 2008년 한국리서치는 전국 4년제 대학에 재학중인 여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군 비율에 대한 인식을 묻자 ‘여군 비율이 낮으므로 늘려야 한다’가 78.4%로 우세했다. 학군단 여성 개방을 묻는 질문엔 94%가 찬성했다. 비율 확대 범위에 대해선 ‘9~10%로 확대’가 30.4%로 가장 많았다. 여성 스스로 ‘국방참여기회’ 확대를 원하고 있다.

지난 8월 여군창설 60주년을 맞이해 이명박 대통령은 “여군들이 특유의 강점을 살려 선진 국방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고, 국방개혁 2020의 여군활용 확대 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여군 비율을 5.6%로 늘릴 예정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여성 ROTC제도의 시범 운영이다.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ROTC의 카랑카랑한 “충성”소리가 내년부터 여자대학에서도 들릴 전망이다. 국방부는 지난달 15일 숙명여대를 '여성 ROTC 시범대학‘으로 선정했다. 숙명여대에서 30명, 고려대․명지대․충남대․전남대․영남대․강원대에서 각 5명씩 30명을 선발해 2013년에 60명의 첫 여성 학군장교가 탄생한다. 학교측은 곳곳에 ‘여성 ROTC 시범대학’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이를 본 숙대생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아침 수업을 마치고 나온 경영학과 1학년 오수지씨는 “플래카드를 보고 우리학교가 여성 ROTC 시범학교에 선정된 걸 알았다”며 “군 입대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숙대는 교내 순헌관 앞에 홍보부스를 설치했다. 인근 학교 학군단 후보생을 지원받아 운영한다. 후보생들은 팸플릿을 나눠주고 관심 있는 여학생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데 하루에 30명쯤 다녀간다고 했다.

▲ 팔굽혀펴기를 하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도와주는 모습 ⓒ 주상돈
인터넷 찬반논란 뜨거워

홍보부스 앞에서 만난 자연과학부 1학년 이화용씨는 “여성 최초여서 자랑스럽다”고 기대를 나타내면서도 “인터넷 토론방에서 ‘개 숙명’이라는 댓글을 봤는데 왜 욕부터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ROTC시범대학 선정이 알려지자 인터넷 토론방에서는 여성 ROTC 찬반 논란도 뜨거워졌다.

<다음> 아고라에서 아이디 ‘strike1945’는 "여자는 부사관도 있고 장교도 있는데 사병은 왜 없는 걸까요"라며 여성 ROTC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아이디 ‘구염둥이’는 "사병이 장교보다 힘들기 때문에 여자 사병을 뽑지 않는 것이 아니고 현재 시스템이 여자사병을 뽑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찬성의견을 폈다.

아이디 ‘다솜사랑’은 "여군 장교? 부대 흐름이나 병사의 고충도 모르는 신세대가 계급장만 달고서 군 생활이 가능하리라고 보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찬반논란이 일부 비방으로 번지면서 숙대 ‘여군준비동아리’에도 화살이 꽂혔다. 아침운동을 막 마친 시각영상디자인과 2학년 최혜미씨는 악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지켜봐줄 것을 당부했다.

“속상하죠. 수많은 악플을 봤어요. 저희 모습이 아직 군인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아직 군인이 아닙니다. 후보생 기간에 훈련을 받으면 충분한 체력을 갖추리라 생각해요. 지금은 응원해주시면 좋겠어요.”

숙명여대 학군단은 10월 22일까지 원서를 접수한 뒤 필기시험과 체력테스트를 통해 11월 30일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 합격자들은 내년 1월 3주간의 기초군사 입영훈련을 받은 뒤 후보생 과정을 거쳐  2013년에는 첫 여성 ROTC로 소위 계급장을 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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