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얼굴ㆍ몸뚱이에 안테나 삐죽 세운 저것은....

“와, 외계인이다~.”

 충북 제천시 세명대 캠퍼스. ‘외계인’이 숨어든 걸까? 잔디밭 큰 나무들 사이에 납작 엎드려 있는 푸른 얼굴, 푸른 몸뚱이의 낯선 생명체. 겁먹은 듯한 큰 눈에 머리 위로 삐죽 솟은 안테나가 영락없이 ‘숨어있다 들킨 외계인’이다. 자세히 보니 수상한 생명체가 한 둘이 아니다. 대학본부 가는 길에도, 공학관 앞에도, 도서관 앞에도.......곳곳에 비슷한 것들이 숨죽이고 앉아있다.  

“눈ㆍ코ㆍ입과 더듬이를 갖춘 모습을 보면서 외계로부터 수신중이라고, 곧 변신할 거라고 친구들과 얘기 많이 해요.”
 
세명대 방송연예학과 김은정(23)씨는 이 ‘외계인들’이 학생들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라고 말했다. 학교에 처음 온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외계인들’이 언젠가 우주로부터 ‘미션’을 받아 움직일 거라는 둥 재미있는 상상들을 많이 한다. 

사실 김씨가 말하는 ‘외계인’은 독특한 모습으로 다듬어진 나무다. 잎이 무성하게 자란 향나무를 모양을 내서 다듬은 것이다. 삐죽이 나온 가지들을 다 정리하지 않고 일부러 안테나처럼 ‘더듬이’를 남겨 둔 것이 ‘외계인’ 파동의 출발이 됐다.

▲ 전산정보관 삼거리에 있는 '외계인' 나무.  ⓒ 전은선

그런데 서울 여의도보다 조금 작은 세명대의 드넓은 캠퍼스엔 ‘외계인’ 말고도 갖가지 모양의 나무가 학생과 교직원들의 시선을 뺏는다. 곰 같기도 하고 토끼 같기도 한 나무, 바닥에 누운 거북이 모양, 공룡 모양 나무도 있다. 결혼식 피로연에나 냄직한 층층 케이크 모양도 있고, 꽈배기 모양 나무도 있다. 그 뿐인가. 우산, 포크, 수저 등을 찾도록 만든 ‘숨은그림찾기’ 나무도 있다. 도대체 누가 나무를 갖고 이런 ‘장난’을 친 것일까? 

▲ 공학관 앞에는 오리와 토끼 모양을 한 나무(위)와 바닥에 누운 거북이 (아래 왼쪽)가,  전산정보학관 앞에 병아리 모양 나무가 있다.  ⓒ 전은선
 
"틀에 박힌 조경을 떠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거죠. 힘껏 창의력을 발휘해서 변화를 주는데, 나무를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 세명대 사무처 이병한 조경팀장 ⓒ 전은선
세명대 나무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이병한(59)조경팀장은 평범한 나무를 개성 있게 변신시켜 사람들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야기 거리를 주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5명의 조경 기술자들에게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주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뭐든지 시도해 보라’고 격려한다. 더러 실패도 하지만, 실패를 거치면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단다.

“우리 조경팀 중 한 분이 학생회관 앞에 있는 나무를 사람 얼굴 모양으로 다듬었는데, 학생회관에서 일하는 미용사분이 ‘예술’이라고 칭찬합디다. 그럼 신이 나는 거죠.”

이 팀장과 함께 일하는 기술자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등에서 조경을 했던 인력이라 말 한마디면 척척 알아듣는다고 한다. 그런 팀워크로 한 해 두 번, 3월과 9월 개강 철에 집중적으로 나무를 손질한다. 그러면 봄 학기에 꽈배기였던 나무가 가을 학기엔 단아한 탑으로 변신하고 덥수룩한 덤불이 4단 케이크로 바뀐다. 학생들은 ‘이번엔 또 무슨 모양이 등장할까’ 호기심을 갖고 기다린다.  

세명대 나무들의 개성 있는 변신은 5년 전 이 팀장이 제천 ES 리조트에서 자리를 옮겨 오면서 시작됐다. 이 팀장의 ‘창의적’ 조경은 ES 리조트에서 14년간 일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사장이 외국의 리조트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개성 있는 조경’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양한 시도를 해 본 것이 큰 자산이 됐다고 한다.  

▲ 문화관 앞에 꽈배기 모양을 한 나무와 정삼각형 모양의 나무가 있다. ⓒ 전은선

조금씩 단풍이 들기 시작한 세명대 캠퍼스. 이 잎들이 지고, 해가 바뀌고, 나무들이 봄옷으로 갈아입으면 이곳엔 또 어떤 ‘별난 생명체’들이 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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