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아빠는 정씨, 나는 김씨

2005년 호주제 폐지, 다들 기억하시나요? 재혼 가정의 자녀들이 새아버지 성(姓)을 따를 수 있어 엄청난 환영을 받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성을 바꿔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스트레스를 받는 누군가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걸 모두가 좋아한 건 아니란 거죠. 바로 이분의 이야기입니다. 호주제 폐지 이후 ‘성씨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 고민을 함께 공유해보시죠.

 
일곱살 가을, 오랜 투병생활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암이었다. 엄마는 혼자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고, 어린 나는 손을 타지 못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익숙한 일이었지만 엄마가 없다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비 오는 날이면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든 친구 엄마를 보며 ‘나도 엄마가 데리러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때 내 소원은 엄마의 남편이 생기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남편이 생긴다면 내 곁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어느 날 학교 마치고 집에 가니 현관문에 남자 구두가 놓여 있었다. 그게 새아버지와의 첫 만남이었다. 엄마의 남자는 좋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못되게 말하는데도 ‘허허’ 하고 소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는 내게 친절하게 대할뿐더러 엄마에게도 다정했다. 사랑받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그 남자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가 물었다. “아빠가 갖고 싶지 않니?” “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아.” 엄마는 아빠가 생겨도 되겠냐고 재차 되물었다. 엄마는 어린 딸이 새아버지가 생김으로써 받을 상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랬을 거다. 나는 아빠란 존재보다는 엄마에게 남편이 생긴다는 사실에 기뻤다.

다만 거슬리는 일이 하나 생겼다. 아빠는 정씨이고, 나는 김씨다. 학교에서 호구조사를 할 때마다 남들의 시선이 싫었다. 새아빠란 사실이 부끄러워서다. 친구들이 “왜 너네 아빠는 정씨고, 너는 김씨야?” 물어볼 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혹시라도 학교에서 주민등록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오라고 하면 돌돌 말아서 들고 가곤 했다.

우리집은 화목하다. 아빠는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 되어 우리 곁을 지킨다. 부정의 부재라는 지난 몇 년간 나의 어두운 과거는 아빠의 사랑으로 말끔히 지워졌다. 아직도 사람들은 나의 밝은 성격 탓에 친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면 놀라곤 한다. 아빠는 나를 ‘공주님’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한다. 가족, 친척,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은 “정말 좋은 아빠를 뒀다”며 부러워했다.

엄마에게 남자가 생겨 좋았다
그 남자를 우리 아빠로 맞았다
처음에는 성이 달라 거슬렸다
쥐구멍 숨고 싶을 때가 많았다

외할머니·외할아버지까지 나서
내 성을 바꿔라 공세 퍼부었다
성씨 집착하는 그분들 맘 안다
그것도 하나의 편견에 불과할 뿐

첫번째 위기가 닥쳤다. 2005년 무렵일 게다. 호주제 폐지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호주제 폐지는 우리 가족에게 중대한 일이었다. 내가 새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는 작명소에서 내 이름을 만들어봤다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도희’, ‘윤지’, ‘경현’…. 이게 뭔가. 내가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오다니! 엄마는 지금의 내 이름이 ‘정씨’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웬 점쟁이의 말을 듣고 새 이름을 만들어 왔다. 부계 사상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 풍토를 바꾸기 위해 나온 호주제 폐지가 되레 가부장적인 생각을 내게 강요한 셈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나서 공세를 퍼부었다. “너는 아빠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아빠 성을 따르기가 싫으냐”, “나중에 결혼해서 사람들이 아빠랑 성이 다르게 적힌 네 청첩장을 보면 뭐라고 하겠느냐” 등등 온갖 얘기를 쏟아냈다. 그 근거들은 이후로도 내 성을 갈기 위한 작전(?)에 동원됐다. 나는 “갑자기 성까지 통째로 이름이 바뀌어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놀릴 것”이라며 “나중에 대학 가면 바꾸겠다”는 거짓말로 이름을 지켰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를 가게 될 때마다 내 성을 갈기 위한 가족들의 노력은 끈질겼다. 가족들의 노력은 고래 힘줄 같은 내 고집을 끊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직까지 내 성과 이름에는 변화가 없으니 말이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든다. 우리집의 가족계획은 아빠가 “열 아들보다 우리 딸 하나가 최고”라는 선언을 한 후로 끝났다. 결국 아빠는 자신의 성을 가진 친자식을 가지지 못했다.

그만큼 아빠가 날 아끼는데 성씨를 바꾸지 않겠다는 건 당신에게 온전한 자식이 되기 싫다는 의사로 비칠까 두려웠다. 여태까지 아빠는 단 한번도 “성을 바꿀 생각이 없냐”는 의미를 담은 말을 한 적이 없다. 나에게 부담이 될까 말은 안 하셔도 내심 서운하셨을 게다. 참 고맙게도 아빠는 본인을 위해 성씨를 바꾸지도 않는 딸을 사랑으로 안아주셨다. 성을 바꿨더라면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아빠가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대학시절 양성이 한창 유행일 때 엄마, 아빠 성을 따서 지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도 왜 안 바꿨냐고? 말 그대로 성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성씨에 집착하는 어른들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성씨가 부녀간의 애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건 여전히 내겐 이상한 얘기다. 계모, 계부라면 아이에게 못되게 군다는 편견과 뭐가 다른가. 이제 나는 남들이 우리 아빠가 새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내가 친자식이 아니란 걸 사람들이 안다 해도 상관없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아빠는 돌아가신 지 18년이 지난 나의 친아버지 제사를 본인이 직접 챙기신다. 나는 제기를 닦는 것 외에는 도와드린 게 거의 없다. 명절이면 “이제 그만하고 절에 모시자”고 큰소리 치지만 아빠는 제사를 더 지내 드리고 싶단다. 당신에게 좋은 아내와 딸을 줬기 때문이란다. 내 생각만 했던 이기적인 딸이었던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성씨가 우리 부녀 관계에서 그렇게 중요한 건지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성씨가 같은 부녀 사이보다도 우리는 완벽하다는 것. 나는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도 나를 사랑한다.

성씨가 달라도 아빠를 너무 사랑하는 딸


* 이 글은 <한겨레> 토요판 2014.5.24 가족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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