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가려운 곳 못 긁는 정부 저출산대책… 한숨만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우리 집 아이 둘은 일곱 살 터울이다. 원래는 2~3년 차이로 낳아 친구처럼 자라게 하고 싶었는데 첫 아이를 낳고 보니 '깨몽', 꿈에서 확 깰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직장생활에 맞춰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입주도우미와 파출부, 어린이집 등을 상황에 따라 총동원했지만 늘 전전긍긍이었다. 어르신들은 항상 건강하기가 어려웠고, 아이를 꾸준히 돌봐줄 아주머니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우리의 출퇴근에 비해 너무 한정된 시간만 아이를 맡아주었고, 시설이나 교육면에서 마음 놓이지 않는 곳도 많았다. 열나고 찡찡대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출근하는 날이면 '과연 일을 계속해야 할까'를 고민하기 일쑤였다. 아이 때문에 직장 그만 두는 이들의 심정을 백번 공감하고도 남았다. 그러니 아이를 하나 더 낳는 일이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미루고 미룰 수밖에 없는 힘든 결정이 됐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경제가 성장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고,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가 보완된 지금도 젊은 주부들이 여전히 10~20년 전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출산을 앞둔 후배에게 '아이를 어떻게 키울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한숨부터 푹 내쉬었다. 시가와 친정 모두 돌봐줄 형편이 못되고, 집 근처에 믿을 만한 공립어린이집이 있어 가봤더니 대기자가 이미 150명이나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정규직이며 중산층인 이 친구는 부담이 되더라도 괜찮은 어린이집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대다수 맞벌이 서민층의 고민은 훨씬 심각하다. 그 중에서도 최저임금 언저리의 박봉에, 몇 시간씩 걸려 출퇴근을 하고, 야근도 군말 없이 해야 하는 생계형 비정규직 엄마들의 처지는 처절할 지경이다. 더 오랜 시간, 더 싼값에 아이를 맡아주는 곳을 찾다보니, 시설의 안전성이나 교육 내용은 못 따진다. 때때로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가 아이를 피멍들게 때렸다' '상한 음식을 먹였다' '낡은 놀이시설에 아이들이 다쳤다' 등등의 뉴스라도 볼라치면 심장이 내려앉는다. 또 전업주부라고 해서 애 키우기가 만만한 것도 아니다. 어린이집, 유치원부터 시작된 사교육비 부담이 초,중,고로 올라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 이처럼 여전한 반면, 한 가지 확실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대처방식이다. 예전엔 아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면, 지금은 아예 낳지 않는 결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가 된 배경일 것이다. 최근 정부가 저출산대책을 마련한 것도 상황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 처방이 남의 다리 긁듯 핵심을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젊은 부부들은 무엇보다 '합리적 비용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집 가까이' 있길 바란다. 출산율 높이기에 성공한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보육시설의 80~90%를 국공립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정부가 나서서 양질의 보육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아이 키우는 문제를 풀어보자는 얘기다. 우리는 국공립 보육시설이 5% 미만인데, 이번 대책에서도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안 보인다. 대신 보육비를 지원한다는데, 이마저 없는 것보단 낫지만 안심하고 맡길 시설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근본 대책은 못 된다.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고 수당을 늘리는 것 역시 방향은 옳지만, 이런 제도를 쓸 수 없는 비정규직에겐 '그림의 떡'이다. 여성근로자의 70%가 사실상 비정규직이고, 집값은 너무 비싸 방 한 칸 늘리기 어렵고, 사교육 때문에 적자 가계부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서 '돈 좀 줄 테니 아이 낳아라'하는 처방이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까.

지난 추석 연휴에도 젊은 부부들은 스트레스 꽤나 받았을 것이다. '이젠 애를 낳아야지' '둘째를 봐야지'하는 어른들 때문에. 관심과 걱정 때문이란 걸 알지만, 아주 힘겨웠던 젊은이도 많았을 것이다. "아이 낳으면, 키워주실래요?"하는 반문을 목젖에서 꾹꾹 누르느라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이 칼럼은 9월 27일자 국제신문 <시론>으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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