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광화문, 추석 망친 수재민 억장 무너져
[두런두런경제] 박경철 제정임 이성철의 생생토크

박경철(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한 주간의 주요 뉴스를 통해 한국 경제를 진단해 보는 생생토크 시간입니다. 9월 마지막 주,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 한국일보 경제부 이성철 부장 두 분 모셨습니다. 수도권에 비가 엄청나게 와 침수피해가 많았는데요, 두 분은 별 일 없으셨습니까?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침수피해에 비할 것은 아닌데요, 저는 그날 오후 음식 장만해서 일찌감치 대전에 내려가야 했는데, 길이 침수되고 교통이 막혀서 그날 중으로 못가는 줄 알았어요. 밤늦게 도착해서 차례상 마무리 준비 하느라 새벽까지 일했습니다.

이성철(한국일보 경제부장): 저희 동네도 도로에 물이 고여서 차들이 중간 중간 정지되고 고장 나는 바람에 견인차들이 출동하고 혼란이 많았습니다. 저는 친척댁에 가려다 광화문이 물에 잠겼다는 기상천외한 뉴스를 듣고 차를 돌렸는데, 하늘에 구멍이 난 듯한 그런 광경은 처음 봤습니다.

: 저는 연휴 첫날 안동에 있었는데 그쪽에는 비가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뉴스 속보 보다가 광화문 물난리, 강서구 쪽 침수 소식 들으면서 ‘야, 이게 무슨 악몽이냐’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석 때 집이 물에 잠긴 분들, 거의 반지하 셋방 사는 분들이라는데, 피해는 꼭 이런 분들이 입죠. 피해를 당하고 나서 늘 하는 얘기지만 하수관 용량, 펌프시설 , 이 얘기 또 나왔어요.

30년 만에 오는 큰 비, 100년 만에 오는 큰 비까지 대비해야 

이: 사실 이번 호우가 있기 전만해도 서울의 강수처리 능력은 꽤 잘 돼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한강이 10여 년 전에 범람했는데 그 뒤로는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근데 이번 사태를 겪어보니까 ‘이것도 부족하구나’를 느낍니다. 서울의 하수관이 시간당 75밀리미터의 강수량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데, 10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폭우에 대비해서 만든 시설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시간당 100밀리가 왔는데, 서울시가 앞으로는 30년에 한번 오는 호우에 대비해서, 시간당 90밀리의 비가 오더라도 버틸 수 있게 하겠다는 중장기 수해대책을 내놓았더군요. 글쎄요, 안전시설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서 만들어야 현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이번에 광화문 잠긴 것을 보면서 다들 깜짝 놀랐죠. 어떻게 서울의 심장부가 물에 잠길 수 있는지. 이순신 장군 동상 있잖아요, 그 밑에 물이 차서 넘치니까 ‘광화문 대첩’이라고 이름붙인 사진이 외신에까지 났다고 해요. 어떤 전문가는 광화문, 청계천 등에 모두 콘크리트, 시멘트로 광장을 만들고 물길을 내서 배수 능력이 위축됐다고 지적하더군요. 또 ‘홍수 막는다고 4대강 사업 하는데, 그 예산의 1%만 배수 시설에 썼더라도 이런 일은 안 생겼을 거다’하고 비판하는 네티즌도 있고요. 이번에 서울시가 대책을 발표하면서 ‘30년 만에 오는 큰 비, 100년 만에 오는 큰 비까지 대비해서 배수용량을 키우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번 피해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던데, 이제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얘기하는 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이번 폭우처럼 예상치 못한 큰 재해가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재해방지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디자인 서울’보다 ‘안전한 서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 바로 또 슬로건 바뀔 것 같네요. 우리 날씨가 홍콩 날씨처럼 변덕이 심해졌는데요, 과거 30년 통계만 믿어선 안 되겠다는 말이 실감 나네요. 어쨌거나 서울시가 부랴부랴 수방대책 내놨는데 지난 5월에 내놨던 것을 새 것처럼 발표했다고 해서 또 논란이 있더군요.

제: 화곡동 등에서 침수 피해 입으신 분들 있잖아요, 반지하에 사는 분들, 힘겹게 돈 들여서 1층이나 지하에 인테리어 하고 가게 새로 낸, 그런 분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더라고요. 그런데 이 분들 얘기가 ‘배수펌프가 있는데 추석 연휴라 잠가놨던 것 같다’는 겁니다. 예년에는 큰 비가 와도 배수펌프 작동하면 물에 안 잠겼는데, 그게 가동이 안 돼 침수된 것 같다, 그러니 이건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다 하는 얘기더군요. 진상을 제대로 알아봐야겠지만, 재해가 닥쳤을 때 대응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잘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 하여튼 큰 재해는 우리가 방심하는 지점을 교묘하게 건드리죠. 우리가 쉬는 동안에도 세계 경제는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이 부장님, 이번 주에 어떤 뉴스 주목하셨습니까.

이: 아시다시피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일본, 환율을 둘러싼 전쟁이 점차 격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첫 번째 뉴스로 꼽았고요. 두 번째로, 어제 현대건설 매각 공고가 났습니다. 이제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각축전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 번째로 지금 아주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을 꼽았습니다.

: 제 교수님은 어떤 뉴스 꼽으셨습니까.

제: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했습니다만, 추석 대목을 기대했다가 수해 때문에 울상이 된 영세상인과 중소기업들 많다, 이 소식에 먼저 주목했습니다. 다음으로 전셋값이 8월 이후 계속 올라서 가을 이사고민이 커졌다는 소식, 그리고 미국 경제가 다시 불안해지면서 국제시장에서 금값이 사상 최고치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뉴스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 두 분 소식 합한 게 제거네요. 저는 서울 수해, 비자금 의혹 받고 있는 한화 김승연 회장이 드디어 귀국했다는 것, 그리고 중국과 일본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을 꼽았습니다. 제 교수님, 전셋값 상승 뉴스 있잖습니까. 한쪽에서는 ‘집값이 계속 하락 추세여서 사람들이 집을 안 사고 전세로 몰려 전셋값이 올라간다, 집값은 앞으로도 계속 내릴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반대쪽에서는 ‘전셋값이 올라가니까 사람들이 못 견디고 집을 살 거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집값이 오를 것이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각자 보고 싶은 쪽만 보는 것 같습니다. 8.29 부동산 대책 이후에 주택 매매 심리는 별로 안 살아나는데 엉뚱하게 전셋값만 오르고 있다,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제: 9월 중순 현재 가격을 봤더니 서울지역 주택의 평균 매매가는 글로벌 경제 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 대비 0.5% 올랐는데, 같은 기간 전셋값은 12.6%가 올랐더군요. KB금융의 자료입니다. 전셋값 상승률이 매매값 상승률의 25배나 되는 것이죠. 또 지난 8월 서울 지역의 아파트 매매값 대비 전셋값 비중이 42.6%인데, 2009년 1월에 38.2%를 기록한 이후 19개월 동안 연속 상승입니다. 구로동의 2차 우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가격 비율이 매매가의 60%까지 오르기도 했고요.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것 같으니까 집을 사려던 사람도 전세 재계약을 해서 눌러 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 부장님, 전세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한데, 이사를 가야하는 딱한 처지의 세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거 대책이 없겠습니까?

이: 글쎄요, 딱히 답이 없어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이사철이라는 게 딱 걸려 있고, 그리고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 심리 때문에 집을 매입하려던 분들이 그냥 전세로 남기 때문이죠. 수요는 몰리는 데 공급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서울 시내 아파트 공급 규모가 줄어들고 있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곳곳에 미분양 쌓여있고 지어도 안 팔리기 때문이죠.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집값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바닥이 확인되는 순간, 전셋값도 안정을 보이겠죠. 그러나 과연 집값이 바닥에 왔다는 판단이 언제쯤 가능할 것인지 알기 어렵죠. 일각에서는 추석연휴가 끝나고 8.29 대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는데 한 달 정도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합니다. 10월 한 달 정도 두고 봐서, 조금씩 가격이 바닥을 쳤다는 심리가 나타나면 매입 수요가 조금씩 살아나고 전세 수요가 분산되고, 이사철 피크도 지나게 되면 진정이 될 수 있겠죠. 그렇지 않고, 10월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면 전셋값과 매매값의 비정상적인 곡선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제: 집을 임대해서 사는 데 거액을 마련해야 되는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 같은데요, 전세가격이 불안정하지 않습니까. 한 2년 살았는데 갑자기 몇 천만 원 올려 달라고 한다든지, 이사를 나가라고 하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내 집은 꼭 있어야 되겠다’ 하는 생각들을 하는 것이죠. 이런 서민들 입장에서 해결책을 연구하시는 분들 얘기 들어 보니까 임대차 보호법을 개정해서 보호기간을 현재의 2년에서 3년, 4년으로 늘려준다든지, 보증금이나 임대료 인상의 상한선을 정해서 갑자기 한꺼번에 많이 올리지 못하도록 하자는 제안들을 하시더군요. 또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 많지 않습니까. 이걸 꼭 분양하려고만 하지 말고 임대로 전환하도록 촉진책을 주자는 얘기도 있고요. 근본적으로는 공공임대 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지적을 하시더군요. 보금자리 주택도 사실 임대 비율이 너무 낮은데, 사람들이 엄청난 목돈을 갖지 않고도 안정된 주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주택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임대주택 많이 짓는 게 중장기적으로 바람직

이: 사실 정답은 임대주택입니다. 임대주택을 많이 짓는 게 중장기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한데, 한편으로 이런 문제도 있습니다. 집을 살 수 있는데도 전세로 사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학군이 좋거나 교통이 좋은, 즉 요지에 살고 싶은 경우거든요. 그런데 그런 동네에 과연 공공임대 아파트를 지을만한 여력과 땅과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서울 강남 등에 임대아파트를 현실적으로 지을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끔 하는 농담입니다만, 집값 문제나 전세 문제 해결하면 다음 대통령 당선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는데, 아무튼 어려운 숙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 거주권은 생존권인데요, 대규모 공공개발을 할 때 일정 부분 의무적으로 임대주택을 짓게 한다든지, 보금자리주택을 영구임대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들, 가볍게 볼 얘기들이 아닌 것 같아요.

제: 지금까지의 주택정책들이 집값 오름세를 부추기는 것이었지, 임대 공급을 충분히 늘려서 실수요자들의 주거를 안정시키는 방향이 아니었다는 비판, 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 우리가 엄청난 돈 들여서 하는 다른 공사들도 많지 않습니까. 우선순위를 잘 따져봐야 될 텐데, 이 문제 해결하면 대통령 되신다니까요, 뜻있는 분들 분발해 주시면 좋겠네요. 자 이번에는 현대건설 인수전, 야, 이거 진짜 드라마죠. 5년, 10년 후에 기업드라마 한 편 나와도 될 것 같고, 저도 마음 같아선 대하소설 한 편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 이거 분명히 소설도 나오고 드라마도 나올 겁니다.

: 채권단 관리 받아온 현대 건설, 9년 만에 주인을 찾게 됐는데, 9월 24일 지분 매각 공고가 나왔어요. 어떤 내용입니까, 이 부장님.

이: 네, 매각 공고가 났고요, 11월 초에 본 입찰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12월 말까지 우선 협상 대상자를 고르고 또 본계약까지 체결이 되고요, 아마 내년 초에는 현대건설이 새로운 주인을 맞게 될 겁니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모태 기업인데, 그 유명한 ‘왕자의 난’을 거쳐 현대그룹 자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워크아웃 들어가고 공중분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2001년 8월 채권단 관리로 넘어갔죠. 국내 최대의 건설사고, 수많은 국내외 대역사를 건설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CEO로 재직했던 곳이기도 해서 관심을 끄는데, 과연 누가 인수전에 참여할지를 놓고 관심을 쏠리고 있습니다.

: 제 교수님, 현대그룹에 있어서 현대건설이 갖는 의미 좀 정리해 주시죠.

제: 우리가 2000년대 초반까지 알고 있던 현대그룹이 지금은 크게 세 개로 나뉘었죠. 하나는 현대상선과 금융회사들을 갖고 있는, 말 그대로의 현대그룹, 옛날보다 규모가 상당히 축소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자동차를 주력으로 하는 현대기아차그룹이 있고, 조선업을 주력으로 하는 현대중공업그룹, 이렇게 셋입니다. 고 정주영 회장 아들들 간의 다툼으로 우리가 이른 바 ‘왕자의 난’이라고 했던 분쟁의 결과죠. 과거 현대그룹의 뿌리, 모기업이 바로 현대건설인데, 현정은 회장이 갖고 있는 현재의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물려받았다가 경영난 때문에 손을 떼야 했습니다. 현대건설이 그룹의 뿌리인데다가 현정은 회장의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이 고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현대건설을 포함한 현대그룹의 이른바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잃었던 현대건설을 꼭 찾아와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반면에 현대기아차그룹이나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범현대가에서는 ‘현대건설이 정씨 집안의 뿌리인데 현씨 집안에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범현대가의 적통 승계자, 이런 상징성 때문에 현대건설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이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중요한 것은 그룹 지배구조의 문젭니다. 현대그룹의 핵심기업이 현대상선인데 현대건설이 바로 현대상선 지분의 8.3%를 갖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별거 아니네,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현대상선의 삼 십 몇 % 되는 지분을 이미 현대중공업과 KCC그룹이라는 범현대가에서 갖고 있기 때문에 건설이 갖고 있는 지분까지 그 쪽으로 넘어가면 현정은 회장이 갖고 있는 현대그룹 자체의 지배 구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그룹으로서는 현대건설을 되찾는 일이 아주 절박한 것이죠.

: 이 부장님, 현대건설 인수전, 어떤 구도로 가게 될까요?

이: 현재까지 나온 것으로 보면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과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의 이파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 3의 인수 희망자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시아주버니와 제수씨의 싸움이 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제 2 왕자의 난’에 가깝다고도 하겠죠. 우리 생각에는 돈 많은 분들이 그냥 좀 사이좋게 나눠 갖든가 하지, 집안끼리 왜 저럴까 싶은데, 정몽구 회장 측에서는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지금의 현대그룹은 더 이상 우리 가문이 아니다, 정씨가 만든 회사를 현씨한테 어떻게 줄 수 있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정씨 현씨의 문제도 있지만,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가져오면 현대차에 있는 엠코라는 건설회사랑 합병을 해서 대주주의 지분을 늘린 다음, ‘3세 승계’의 발판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더군요. 그러니까 현대건설이 갖는 상징성 외에 후계구도를 위한 현실적 이해타산이 또 있다는 얘기가 되겠죠.

: 그런데요 이 부장님, 통상적으로 어떤 그룹이 위기에 빠져 채권단에 기업을 넘겼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대개 우선권을 원래 빼앗겼던 그룹에 돌려주는 게 관행 아니었습니까?

이: 벽산그룹이 그런 경우였고 최근에 팬택 계열이 그랬죠. 하지만 채권단 입장에서는 채권회수가 가장 큰 목적이다 보니, 흥행을 붙이고 싶고, 자금면에서 유리한 현대차그룹과 경쟁을 붙여서 값을 좀 튀기고 싶은 생각도 있겠죠. 여기서 우리가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이 들어올 때 단독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현대중공업이나 KCC 같은 이른바 범현대가문이 연합해서 들어올 것이냐 입니다. 함께 들어오면 의미가 좀 달라집니다. 그래서 지금은 단독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한데 일단 그 부분을 한번 봐야할 것 같고요. 두 번째, 냉정하게 놓고 봤을 때 1대 1로 붙게 되면 자금력 있는 현대차가 유리하기 때문에 어떤 절충점이 모색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되 현대그룹에게 건설이 갖고 있는 상선 지분을 넘겨서 지배구조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 방식이 있죠. 그런데 지금 현대 일가 안에 그런 것을 중재할 만한 어른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런 극적인 타협책 없이 현대건설이 현대차로 넘어가면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재계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현대그룹, 채권은행 상대로 소송 이겨

: 제 교수님, 그 와중에 오해를 살만한 일도 있었죠?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대해서 ‘신규여신 중단한다, 구조조정 협약 체결해라’ 하고 코너로 몰지 않았습니까? 돈을 빌려야 인수를 할 수 있는데 통로를 막아 버렸던 것이죠. 그러자 현대그룹이 우리나라 기업사상 처음으로 채권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이겨버렸어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제: 채권단 입장에서는 현대건설을 매각할 때 자금력이 있는 기업이 들어오게 만들어 흥행이 되게 하고, 유리한 가격에 팔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현대그룹에 대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강요하고, 말을 안 들으니까 신규여신 중단뿐 아니라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회수하는 강한 조치까지 내려서 ‘뭔가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호사가들의 관측이 나오기도 했죠. 그 배경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거지만. 어쨌거나 이런 채권단의 결정에 대해서 현대 그룹의 10개 계열사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신규여신 중단 등의 제재를 중지하게 해달라고. 그러자 법원이 이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어요. 은행이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채권은행 공동으로 신규여신 중단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독과점 금지규정에 위배되는 담합이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현대그룹이 일단 채권단 제재 부담을 벗어나 인수전에 뛰어들 수는 있게 됐는데, 아직도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금력입니다. 적어도 3, 4조원은 든다는데 현대그룹이 그동안 열심히 쌓아둔 자금은 1조 5천억 원 정도라고 해요. 외부차입이 불가피한데, 은행들이 도와주진 않을 것 같고, 외부의 누구와 손을 잡고 인수전을 치를 것인가가 현대그룹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 그렇다고 사채 빌릴 수도 없고요.

이: 또 무리하게 차입했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 지는 대우건설 인수했던 금호그룹 사례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어쨌든 이번에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서 일단은 현대그룹이 조금은 자유로워졌고, 정당성도 가질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자금력이 열세라는 건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 원래는 오늘 다뤄봐야 할 뉴스 중에 한화그룹 얘기도 있었는데요, 한화그룹은 진행형의 뉴스라 다음 주에 다뤄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시간을 할애해서 얘기해야 하는 것은 털고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오늘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리/송지혜 기자


* 이 기사는 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부 내용은 분량상 생략됐습니다. 방송 내용은 9월25일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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