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은 깃발이다. 골퍼들이 홀을 표시하는 깃발을 향해 골프공을 치듯이, 1은 2와 3의 목표이고 선망의 대상이다. 1은 수많은 2, 3을 노력하게 만든다. 1이 2, 3과 다른 점은, 2, 3이 흉내라도 내 1을 따라잡으려 하면, 1은 더 멀리 치고 나가야 한다는 데 있다. 격차를 유지하지 못하면 1이 이미 1이 아니다. 1이 서있는 자리는 그만큼 외롭고 고독하다.

그러나 1이 훌륭할수록 2, 3도 같이 훌륭해진다. 선구자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우수한 1이 고르게 분포돼 있을수록 좋다. 깃발이 고를수록, 1이 많을수록 그와 유사한 2와 3도 1의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류를 꿈꾸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다양한 1을 만들어 더 많은 2, 3을 만들면 전반적인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다.

1을 1끼리 모아 놓으면 안 된다. 1을 1끼리 모아 놓으면 1이 스스로 ‘1’인 점을 자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1이 스스로 1임을 인식하고, 깃발을 든 기수가 되어야 함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1을 1끼리 모아 놓다 보니 1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서로가 ‘1’을 떠넘기게 된다. 아니면 비교하나마나 한 ‘1’을 놓고 1을 차지하지 못한 박탈감이 생겨 자기 피해의식이 늘어나게 된다.

1은 1로 아무리 나눠도 1일 뿐이다. (1÷1÷1÷1÷1÷1...÷1=1). 똑똑한 사람들만 모인 의사 집단의 자존감이 낮은 이유도 그것이고, 가장 잘 사는 강남구 주민의 자기만족도가 낮은 이유도 그것이다. 1이 1이라는 자의식을 갖지 못하고 1로 가야 한다는 열패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다. 1등도 2등, 10등인 것처럼 느끼는 곳이 우리 사회다. 1이 깃발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2로서 1만 바라보게 만들어버린다.

더 큰 문제는 ‘1’이 점점 없어지는 쪽으로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겨냥점’이 되는 ‘1’을 줄이고, 1끼리 모아 오히려 1을 없애고, 1의 2, 3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가고 있다. 몇 년 안에 급증할 자율형 사립고가 한 예다. 어릴 때부터 1만 모여있는 곳에서 자란 1들은 1이라는 자긍심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집단이 나중에 출세의 배경이 되긴 하겠지만, 내부 경쟁을 할 때는 많은 1을 보면서도 자신이 목표로 삼을 만한 깃발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폐쇄적인 조직 안에 머물러 있기에 다른 이들에게 질시의 대상이 될지언정 깃발이 될 수 없다.

 


 * 게재순서: 상•하위 입상작 구분 없이 위쪽과 아래쪽에서 매일 한 편씩 번갈아 가며 싣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차등을 두기는 했으나, ‘1’을 주제로 하면서, 저마다 발상이 다른 글에 등수를 매긴다는 게 어쩐지 미안했다는 교수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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