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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 칼럼 > <제1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내가 던지는 첫 그물
[제1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수 이은규
2010년 09월 21일 (화) 14:29:10 이은규 lek8219@naver.com

처음이다. 초등부터 대학까지 무려 16년간 나를 규정지었던 ‘학생’이라는 이름표가 떨어지는 지금의 시간 말이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자 그제서야 몰랐던 걸 문득 깨달았다. 비교적 자유롭게, 많은 것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자랐다고 자부했던 그 시간들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그간 내가 했던 선택들, 작게는 학원 다니고, 과외 받고, 심지어 전공 선택하고, 강의시간표 짜는 것까지 이미 다 주어진 틀 안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가까이는 부모님, 친구들에 의해, 넓게는 사회에 의해 주어진 것들이었다. 가야 할 곳, 강제되는 것도 없이,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모든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지금, 밥 먹는 것부터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공부계획, 친구관계, 경제적 문제 등 변화하는 사안에 대해 늘 현명한 답을 주셨던 부모님 입에서 ‘답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처음이었다. 당신들의 젊은 날을 급변하는 60, 70년대에 보냈던 만큼, 변화와 적응, 현실 대처에 찬란한 이력이 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당신들 입에서 나오는 ‘답이 없다’라는 말 속에는 미안함과 의구심이 동시에 담겨있었다. 남들처럼 거나한 뒷바라지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 언제까지 뒷바라지 해줘야 자식 스스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당신들의 대학생 때 모습과는 다른 자식을 보며, 당신들 부모님 모습과는 또 다른 스스로를 보며, 그들도 처음 맞닥뜨린 이 상황에 답을 내리지 못한다.

나의 대부분을 규정지었던 학생 신분을 걷어버리자, 선택할 수 있는 보기가 사라졌다. 정해진 틀이 없어, 무엇이 문제이고, 답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문제도, 답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예전과 다르고 혹은 떠나간 듯한,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오롯이 내 것이 아니었던 모든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회가 놀랄 만한 자질과 ‘스펙’은 물론이고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 되기에도 모자라는 것이 많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너무나 평범하기만 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 아무것도 아닌 이 순간은 그저 ‘처음’의 상태이며, ‘시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명문대학에서도 ‘졸업’(Commencement)은 시작을 뜻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홀로 선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 태초의 ‘나’부터, 내 곁에 있어 당연하게 여겨왔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답이 없는 현실이라,  답을 가르쳐 줄 사람도 내 곁에 없다. 다만, 현실을 꿋꿋이 살며, 자신들의 답을 만들어온 부모님과 소주 한잔 기울이면 나의 정답은 아닐지라도 조언은 들을 수 있으리라. 책 또한 나의 말없는 조언자이기에 이 가을 많이 접해보고 싶다. 한 번 더 생각하고, 글 한 편 더 써보리라. 주어진 것이 아닌 나 자신만의 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맞닥뜨린 순간 속에서, 스스로 유일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허공에 던지는 그물처럼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을지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던진 그물이기에.


*게재순서: 상•하위 입상작 구분 없이 위쪽과 아래쪽에서 매일 한 편씩 번갈아 가며 싣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차등을 두기는 했으나, ‘1’을 주제로 하면서, 저마다 발상이 다른 글에 등수를 매긴다는 게 어쩐지 미안했다는 교수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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