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대북지원, 언제까지 ‘군량미’ 핑계만 댈 텐가
[단비발언대]

▲ 임현정 기자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농촌은 철없이 뛰놀던 할아버지 집처럼 평화롭고 한가로운 풍경 일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농사지으신 쌀을 먹고 자랐지만 특별히 그 수고나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농촌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대학생이 되어 학생회가 이끄는 농활, 즉 농촌봉사활동에 갔을 때였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어두워질 때까지 종일 일만 했던 그 일주일 동안 유일한 낙은 중간 중간에 나오는 새참뿐이었다. 정말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다. 그 때야 비로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쌀이 눈물겨운 노동의 결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벼를 키우는 일은 정성 그 자체였다. 볍씨를 고르고, 못자리를 만들고, 모를 내고, 피를 뽑고, 김을 매고, 벼를 베고, 이를 다시 훑고, 방아를 찧고 마침내 쌀밥이 되어 입에 들어갈 때까지 여든여덟 번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쌀 미(米)자 속에는 팔(八)십(十)팔(八)이 들어 있다고 누군가 설명해 주었다. 

농민들이 그렇게 피땀 흘려 지은 쌀의 일부가 요즘 창고에 쌓여서 썩어가고 있다고 한다. 식습관이 바뀌면서 쌀 소비는 줄어드는데, 생산량은 여전하고, 여분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던 길이 2008년 이후 막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년이 와도 농민들의 얼굴엔 근심이 지워지지 않는다. 쌀은 아무리 잘 보관해도 2년이 지나면 밥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데, 2005년산 쌀도 아직 창고에 남아 있어 한 때 사료용 처분 얘기까지 나왔다. 재고 쌀을 보관하는 비용만 해도 연간 수천억 원이 든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렇게 남아도는 쌀을 바로 휴전선 너머에서 굶어 죽어가는 이들에게 보낸다면 우리 농민도 살리고 북한 동포도 살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고질적인 작황 부진에 물난리까지 겹친 북한에서는 몇 천 명이 굶어 죽었느니, 몇 십 만 명이 기아선상에 있니 하는 얘기들이 국제기구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가 북한에 쌀을 지원했을 때, 그 쌀이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배급되지 않고 군량미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적십자사나 민간을 통해 소량의 쌀을 보내는 것은 몰라도 과거 정부에서처럼 해마다 수십만 톤을 보내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반대한다. 북한이 군량미 1백만 톤을 쌓아두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지척에서 동포가 굶주리고 있고, 견디다 못해 목숨을 걸고 중국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참 냉정한 사람들이다. 물론 북한에 대량으로 쌀을 보냈을 때, 군대로 갈 가능성 역시 열려 있는 게 사실이다. 벼를 키우기 위해 물을 대다보면 잡초에게도 갈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북한 정권이 남한에서 온 쌀을 모두 군대에만 쌓아 놓고 주민들이 굶어 죽도록 놔두겠는가? 국제사회의 시선이 엄연한 데 그 쌀을 내다 팔아 무기를 사겠는가? 쌀 분배가 보다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는 장치를 요구해야지, 이를 핑계로 지원을 안 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천안함 사태를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선결 조건으로 하는 등 쌀 지원을 정치적 의제와 연결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북한 정권에게 가장 민감한 현안인 천안함이나 핵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거는 것은 쌀 지원을 안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적 과제들은 정부가 나름의 원칙을 갖고 협상을 해나가되 굶주림을 해결하는 일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조건 없이 도와야 한다. 이런 지원이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고, 화해의 시대를 여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철마다 농활을 갔다. 말이 봉사활동이지 사실은 가서 배우고 오는 것이 더 많았다. 우리가 갈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노인들의 주름지고 거친 손에서 따뜻한 정이 가슴까지 전해졌다. 고된 일을 마친 후 열린 마을잔치에서 그분들의 진짜 웃음과 눈물을 보았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 되면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 되면 먹을 것을 잔뜩 싸들고 돌아왔다. 그렇게 내가 도와서 농사지은 쌀도 지금 어느 창고에선가 썩어가고 있지 않을까 초조하다. 북녘의 아이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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