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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안전보다 집값 하락 걱정?
경찰의 비밀주의, 시민 안전과 알권리 침해
[탐사기획] 당신의 동네는 안전합니까 <중>
2013년 12월 04일 (수) 19:28:06 유선희 기자 tjsgml881101@naver.com
성범죄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지만 경찰은 발생 장소나 시간 등 최소한의 기본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정보 폐쇄성은 시민들의 자력화(empowerment)와 투명한 치안대책 수립을 가로막고 있다. <단비뉴스>는 성폭력 추방주간(11월 25일~12월 1일)을 맞이해 서울지역 31개 경찰서를 상대로 성범죄 관련 정보 공개를 청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경찰의 정보공개 실태와 개선방안 등을 모색하는 ‘탐사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상: (단독)‘성범죄 지도’ 그려보니 우범지역 나왔다
    -동일 지번에서 2년 새 성범죄 12건 발생

중: 시민 안전보다 집값 하락 걱정?
    -경찰의 비밀주의, 시민 안전과 알권리 침해

하: 선진국은 범죄정보공개로 투명성, 경각심 높여
    -‘LA타임스’는 성범죄 등 발생정보 상설 서비스

“지역별 성폭력범죄(강간,강제추행) 통계 정보가 공개될 경우 집값 하락 등으로 국민의 재산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비공개함.”

“해당정보는, 공개될 경우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 등으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

<단비뉴스>가 청구한 성범죄 관련 정보공개요청에 대해 서울의 일부 경찰서가 보내 온 비공개 사유들이다. 성범죄 발생 위치 정보가 공개되면 주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집값까지 걱정해주는 우리 경찰의 배려가 눈물겹다. 부동산 의존도가 워낙 높은 나라이니 일견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 등의 사유로 성범죄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정보 부존재’를 사유로 성범죄 관련 정보공개 청구를 비공개 처리한 경우다. 경찰서에 성범죄 관련 정보가 존재하지 않아서 공개할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 서울지역 31개 경찰서 중 답변을 받은 23개 경찰서에서 공개한 성범죄 발생건수. ⓒ 유선희

<단비>가 서울지역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장소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10월 24일부터 31개 경찰서 전체를 대상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대부분 이처럼 여러 이유를 들어 비공개 결정을 알려왔다. 서울 서초경찰서만 유일하게 발생장소 지번이 포함된 정보를 공개했다.

종암과 성동경찰서는 건별로 지번이 아닌 발생 장소명이 포함된 자료를 공개했다. 그 외 경찰서들은 대부분 아파트, 노상, 지하철 등 장소별로 성범죄가 몇 건 발생했는지 집계한 단순 통계자료를 공개했다. 이 중 강동, 강서, 양천 등 3개 경찰서는 통계 자료를 공개하면서도 성범죄 발생 주소지 정보는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강남경찰서에서 받은 자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 강남경찰서

관악, 광진, 중랑 등 3개 경찰서는 사생활 침해 등을 내세워 통계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았고, 이후 <단비>의 이의신청마저 기각했다. 강북, 서부, 용산, 은평, 종로 등 5개 경찰서는 ‘정보 부존재’를 이유로 아예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이 범죄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답변은 우리 경찰의 정보 공개 수준을 실감하게 했다.

단순 통계자료도 공개하지 않은 8개 경찰서를 제외한 23개 경찰서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는 강남경찰서 관내에서 성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2년(2011년~2012년) 동안 754건이 발생했다. 이어 구로경찰서가 645건, 영등포경찰서가 580건순이었다.

집값 떨어져서 비공개? 성범죄 발생장소 비공개 이유 제각각

서초경찰서를 제외한 30개 경찰서가 성범죄 발생 장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비공개 사유로 언급됐다.

구체적으로는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한 비공개 결정이 가장 많았다. 물론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1항 제6호는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비공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도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 누설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개인의 신원은 제외한, 단순한 성범죄 발생장소 정보가 이 조항과 관련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자료에 범죄자나 피해자가 노출되는 개인정보가 들어있지 않다면 비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단비>는 피해자 주거지와 관련 없는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지번까지 포함한 주소지를 공개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특히 발생장소가 피해자 거주지일 경우 해당 주소를 삭제하고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는데도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은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단순히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성범죄 발생지 정보를 비공개 하면서 각 경찰서들이 근거로 든 내용을 정리한 도표. ⓒ 유선희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집값 하락’이나 ‘부동산 투기’를 걱정해 범죄 정보를 비공개하는 경우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은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 등으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비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강남, 강동, 광진, 도봉 경찰서 등은 이 조항을 근거로 성범죄 관련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범죄 관련 정보 공개가 실제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가는 의문이다. 경찰대 행정학과 노성훈 교수에 따르면 범죄통계자료 공개가 부동산값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실증 연구는 아직 국내외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고 한다. 특히 그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해당 법률 조항의 입법 취지로 볼 때, 이 조항을 근거로 범죄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무리’이자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것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간사는 “어느 지역에서 빈번하게 성범죄가 발생하는지 명확하게 공개해 문제 해결에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비밀주의는 성범죄 해결 도와주지 못해

노성훈 교수도 “범죄통계자료 공개는 시민들로 하여금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줄어들게 하고 정보력도 갖추게 돼 범죄를 줄이는 데 효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구체적으로 ▲범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해소 ▲경찰에 대한 일반시민의 신뢰도 향상 ▲시민의 자력화(empowerment) 지원 ▲21세기형 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 ▲관련 학문의 발전과 형사사법 운영의 선진화 등 5가지 효과를 제시했다.

   
▲ 지난 11월 29일 국회에서 범죄통계개선을 위한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 경찰관 제공

이에 대해 경찰청 수사제도담당 나영민 경정은 <단비>와의 인터뷰에서 “범죄통계의 분석활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정책방향에 대해 공감한다”면서 “다만, 성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발생장소가 공개될 경우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섬세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범죄통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 등 부작용이 없는 방향에서 공개방식과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정비해나가는 단계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경찰의 범죄 관련 정보 공개는 아직 매우 폐쇄적이다. 학계와 경찰 내부에서 범죄 통계 공개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미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정부가 자발적으로 성범죄 등 강력범죄 발생장소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범죄지도 회사 스팟크라임(SpotCrime)은 정부가 공개하는 범죄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의 범죄사건 기록 800만 건 가량을 수집해 범죄지도 서비스 등을 인터넷상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매달 350만 명의 회원들에게는 회원이 등록한 주소지 주변의 범죄 발생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주고 있다. 서울경찰청 산하 31개 경찰서 중 성범죄 발생 장소 정보를 공개한 곳이 1군데에 불과한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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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기자]
단비뉴스 전 취재부장, 환경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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