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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타 호텔의 광주 출신 사장님
현지인처럼 살면서도 정체성을 지키는 이민자들
[헬로코리아] 수프와 샐러드처럼 어우러지는 세계
2010년 09월 03일 (금) 23:26:28 매트 위더스푼 mspoon@hotmail.com

   
▲ 매트 위더스푼 (세명대 원어민 교수)
I just returned from a long and interesting summer vacation in the USA and Canada. It had been three years since my last visit, which was the longest I’ve ever stayed away from home. Being out of one’s home country for years at a time can offer a new perspective on once familiar surroundings.

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꽤 길고 즐거운 여름 휴가를 보내고 막 돌아왔다. 이번 방문은 3년 만이었고, 집을 떠나 가장 오래 머물렀던 여행이었다. 한동안 모국을 떠나 있다가 다시 가보니, 한 때 익숙했던 풍경들이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One thing that struck me at first, and appeared throughout the visit, was the vast diversity of ethnic groups and immigrants that I encountered on a daily basis. When I was in social studies class in middle school, they taught us that America was a “melting pot”, where people all over the world came and blended together in a common culture, kind of like a soup made of many ingredients.

첫 순간부터, 그리고 여행 내내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매일 매일 만나게 되는 엄청나게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들이었다. 중학교 사회시간에 선생님들은 미국 사회가 하나의 ‘용광로(melting pot)’라고 가르쳤다. 갖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수프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섞이면서 하나의 공통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Another view is that America is a “salad bowl”, where the different groups are mixed together but retain their identity, similar to how you can see the different items in a salad and recognize the carrots and cucumbers. I saw examples of both, so depending on the situation, either metaphor fits.

또 하나의 시각은 미국 사회가 ‘샐러드 접시(salad bowl)’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야채들이 섞여 있지만 각각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샐러드 접시에 담긴 당근과 오이를 구분해서 볼 수 있으니까. 나는 현실에서 두 가지의 예를 다 봤고, 상황에 따라 각각 적절한 비유가 되었다. 
   
   
▲ 용광로(melting pot) ⓒ 위키피디아
  
 The encounters with cultural diversity began upon arrival at the airport, in Seattle. The first official we met directing us to the correct Immigration lines had a thick Russian accent and a long, Russian name on her badge that I couldn’t begin to pronounce. Obviously, she was not born there. The rest of the Immigration officials were a rainbow of humanity, with Asians, African-Americans, Hispanics, and Caucasians all checking passports.

문화적 다양성과의 마주침은 시애틀의 공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입국장을 안내해준 담당자는 강한 러시아계 말투였고, 발음하기 어려운 긴 러시아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분명해 보였다. 여권을 확인하는 다른 입국장 직원들도 아시아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코커서스계(백인) 등 무지개처럼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As we exited the airport, nearly every one of the taxi drivers waiting at the curb were Sikhs, wearing turbans and speaking Punjabi or some other Indian language amongst themselves.

공항을 빠져나와 보니, 도로변에서 기다리는 택시 기사들은 거의 다 터번을 쓰고 펀잡어나 다른 인도어를 쓰는 시크교도들이었다. 
 
The next day, I had a meeting with my financial planner, Khurshed, who came to the US, in 1995, from Kazakhstan. He told me he speaks Russian with his wife, at home.

다음 날, 나는 재무설계사인 쿠르세드(Khurshed)와 만났는데 그는 1995년 카자흐스탄에서 미국에 왔다. 그는 집에서 아내와는 러시아어로 말한다고 했다.

Then I went to my father’s apple orchard, which is managed by Santiago, from Mexico. He speaks Spanish with the Mexican farm workers, and English with me and my father.

그 다음 아버지의 사과 과수원에 갔는데, 그 곳은 멕시코에서 온 산티아고가 꾸려가고 있었다. 그는 멕시코인 농장 인부들과는 스페인어로 말하지만, 나나 내 아버지와 얘기할 때는 영어를 썼다.

A few days later I had dinner with my friend Richard, and his wife, Ji, from Thailand, where I got to say the only Thai words I know, “Sawadee” (hello), and “Kaphun krap” (thank you), and talk about my past visits to Thailand.

며칠 후, 친구인 리차드(Richard)와 그의 태국인 아내 지(Ji)와 저녁을 함께 했다. 나는 “사와디(안녕하세요)”와 “카푼 크랍(감사합니다)”등 내가 아는 몇 마디 태국어로 인사를 건넸고, 얼마 전에 갔던 태국 이야기를 나눴다.

I also went to lunch with an old high school friend, who was in town visiting his parents, much like me. He now lives in France, with his Italian wife, Paola, and their daughter, Luna, who was adopted from China. They speak French, Italian, and English at home. All this diversity was found in a very small town of 35,000 people, far from any major city.

나처럼 부모님을 보러 온 고등학교 동창도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 현재 그는 파올라(Paola)라는 이탈리아인 아내, 그리고 중국에서 입양한 딸 루나(Luna)와 함께 프랑스에서 산다. 그들 가족은 집에서 불어, 이탈리아어, 영어로 말한다. 이러한 다양성이 모두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고작 인구 35,000의 작은 도시에서 목격되었던 것이다.

As we traveled, more examples of the wide variety of people now living in the US were presented daily. While looking for a place to camp in Glacier National Park, Montana, the ranger who helped us find a site turned out to be from the Philippines. After setting up the tent, I bought coffee from a Jamaican lady at the campground store, deep in the wilderness of the Rocky Mountains.

우리는 여행하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사례를 계속 발견했다.  몬태나의 글래이셔(Glacier) 국립공원에서 캠프장을 찾을 때 우리를 도와준 순찰대는 필리핀에서 온 사람이었다. 텐트를 설치한 후, 나는 캠프장 가게에서 자마이카인 여성으로부터 커피를 샀다. 깊은 록키산맥의 황야에서 말이다. 

It was a similar story when we crossed into Canada, a few days later. At a viewpoint in Waterton Lakes Park, a dark-skinned family next to us was speaking some African-sounding language. The father then asked us, in accented English, if we would like him to take our photo, which we did. I then had a chance to return the favor, and ask where they were from. Kenya, was the reply, but they have lived in Canada for nearly 10 years.

며칠 후에 캐나다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워터톤 호수 공원의 전망대에서 만난 검은 피부의 가족들은 아프리카어로 들리는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독특한 억양의 영어로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어 그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케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가족은 이미 10년 가까이 캐나다에서 살고 있었다. 
 
That night we drove into the village of Didsbury, Alberta, in a thunderstorm, looking for a hotel. The first one we found was owned by Koreans, originally from Kwangju. They were very pleased to be able to speak Korean with my wife and catch up news from their homeland.

그날 밤 폭우 속에 알버타주의 디즈베리로 운전해 가면서 호텔을 찾았다.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광주에서 온 한국인들이 소유한 곳이었다. 그들은 한국인인 내 아내와 한국말로 얘기하면서, 고국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뻐했다.
 
We then drove north, to Saskatchewan, listening to French, Ukrainian, and English on the radio, to visit a Canadian friend, his Korean wife, and their 11-year-old son, who is a perfect mix of both parents. One minute he is speaking English with his father and the next minute he’s speaking Korean with his mother. He’ll eat a hamburger for lunch and kimchijjigae for dinner. Their son is a good example of the melting pot theory.

그 후 우리는 불어, 우크라이나어, 영어로 라디오를 들으면서 북쪽 사스카치완(Saskatchewan)을 향해 운전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캐나다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국인 아내와 11살 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데, 그 아들은 부모를 완벽하게 잘 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그 아이는 아빠와는 영어로, 엄마와는 한국어로 대화했다. 아마 점심으로는 햄버거를 먹고, 저녁은 김치찌개를 먹을 것이다. 그 부부의 아들은 용광로 이론의 좋은 예이다.

The stories go on and on. Every day I heard a foreign language and saw someone from a different culture. I think back to high school, where I had classmates from a dozen foreign countries. We all spoke English together in class, ate the same food at the cafeteria, and played the same games in gym class. After school, they’d go home, speak their native language with their parents, and eat something from the homeland.

이런 이야기들은 계속된다. 날마다 나는 외국어를 들었고, 다른 문화권에서 온 누군가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한 반에서 십 여 명 정도가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함께 영어로 말했고, 식당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체육관에서 같은 운동을 했다. 하지만 방과 후에 그들은 집에 가서 부모와 모국어로 대화하고, 고국의 전통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It felt like a melting pot then, and in school, at work, and other places where everyone is together doing the same thing it probably still is. But it’s also nice to see so much diversity and that the immigrants still keep their culture alive. Maybe that’s why soup and salad go so well together.

당시에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 다른 장소에서 모든 사람이 모여서 똑같은 것을 함께 할 때는 ‘용광로’를 느꼈고, 그것은 여전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다양성과,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생생하게 지켜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멋진 일이다. 그래서 수프와 샐러드가 그렇게 잘 어울리는 것인가 보다.

(원제: Soup and Salad by Matt Witherspoon)

 번역/방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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