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좌표'가 다른 한국과 유럽 젊은이들
[저널리즘스쿨 특강]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담겨있는 생각이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는 어떻게 결정되었고, 생각하지 못하는 바는 어떻게 결정됐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내 생각에 관해 묻는다’라는 강의 주제에 걸맞게 연신 ‘생각’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는 최근 <생각의 좌표>를 출간하며,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 질문했다. 내가 나에게 묻는 생각의 뿌리를 살피면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생각’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생각한다고 믿는 사람’과 ‘아예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합리적 동물이라면 우리 의식세계 안에 있는 생각, 주장, 견해를 때때로 고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묻지도 않은 채 고집부리고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삶의 나침반이 되는 우리 생각은, 한번 고정되면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 한번밖에 없는 내 삶을 규정하고, 이것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으로 굳어진다. 그는 ‘18-(16)-14-12-10-8’이라는 숫자가 주어졌을 때, 한국과 유럽의 젊은이들 반응이 다를 거라고 예상했다.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한 한국인의 절대 다수는 2씩 줄어드는 순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유럽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시간이 변화해온 과정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주5일, 8시간 근무’를 노동운동의 열매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한국 젊은이와 유럽 젊은이의 반응에는 사회의 차이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공화국의 핵심 가치는 공공성인데 ‘시장 우선’이라니

“대한민국 헌법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라고 돼있어요. 대한민국을 영어로 ‘The Republic of Korea’라고 합니다. ‘Republic’의 핵심적 가치는 공공성입니다. 즉,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용하는 것이죠. 대한민국이 공화국이며, 공공의 이익을 가치로 삼는다는 것을 우리 의식세계에서 공유한다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정책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친기업, 시장 우선’,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의 원칙을 내걸고 집권했다.

언론과 교육은 오히려 공공성의 토대를 더욱 훼손한다. 그는 ‘언론은 공기(公器)’라고 전제한 뒤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보수 언론이 과연 공적 그릇인가요? 철저한 공익을 담아야 하는 신문을 한 집단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요? 현실을 보면 신문이 특정 정치사회 환경을 마련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상황이지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은 역사적 안목도 점수화

“인문사회과학은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보다 사고, 인식, 논리, 감수성이 요구되는 학문입니다. 예컨대 좋은 사회, 사형제, 성소수자 문제는 내 나름의 사고, 어떻게 논리하고 인지할 것인가가 요구되죠. 그런데 우리 교육은 역사적 안목을 69점, 80점 등으로 당연한 듯이 점수화합니다.”

그는 프랑스 교육 제도를 예로 들었다.

“프랑스 중3학생에게 사회 시간에 ‘너는 사형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어떤 논리로 이렇게 생각하는지 글로 씁니다. 부모나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나눈 것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주장으로 드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보는 비판적 안목입니다.”

▲ 홍세화 기획위원은 자기를 부정해보는 것이 자아실현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렇게 생각에 대해 묻지 않는다. 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분의 생각을 피력할 것을 요구받은 적이 있었냐’고 되물었다. 점수로 서열화하면서 역사에서 요구되는 인식, 사회와 사람에 대한 인식은 없어졌다. 인문사회도 줄 세우기 편리하도록 암기과목으로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역사에 담겨있는 내용을 암기했느냐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을 던졌다.

“다음 중에서 사형제도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나라는 어디입니까, 보기를 줍니다.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대한민국. 답은 대한민국.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 이상 사형제도가 있었으나,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엠네스티에서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은 경우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로 정한다는 내용을 암기하면 끝나는 거죠.”

그는 이것이 바로 “사형제에 대한 내 생각을 풍요롭게 갖도록 요구받지 않고 사형제에 대해 얽혀 있는 객관적 사실을 암기하도록 요구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인문사회 공부 잘 했다는 의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게 아니라 그저 암기를 잘했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암기능력만 좋다면 수구보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는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때,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 자체는 결국 지배 세력이 요구하는 것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암기 능력이 좋은 것은 문제 제기가 아닌, 기존의 것을 잘 외웠다는 뜻이기에 필연적으로 수구, 보수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도 똑같이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인식 능력은 바닥에 머무르는 수준”이라고 했다. 결국, 한국 사회 구성원은 국가가 장악한 제도교육을 통해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내가 주체가 될 수 없고, 절대적인 객체로 활용되는 셈이다.
그는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책 읽기와 열린 자세로 토론하기, 직접 발로 뛰며 견문 넓히기 등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가 제안한 세 가지 실천방안의 주체는 물론 ‘나’다.

“내가 직접 겪고, 읽고, 토론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나의 의식 세계 안에서 버무리고, 다투고, 다시 재고하고, 분석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생각을 내가 갖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집을 부리다가도 때때로 회의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가 아니겠느냐는 얘기였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끊임없이 성숙하기 위해서 자기를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아실현의 길이지요.”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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