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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지율’의 함정, 누가 빠지게 될까
[이봉수 칼럼]
2013년 09월 26일 (목) 23:16:04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갤럽 편집장인 프랭크 뉴포트는 ‘여론조사의 역사는 한편으로 여론조사 반대의 역사’라고 토로했다. 여론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저서(Polling Matters)에 나오는 얘기지만, 여론조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 또한 만만치 않음을 방증한다.

여론조사와 언론보도가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상반된 결과의 딜레마’이다. 2000년 3월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 ‘성적 관계’를 가져 탄핵 위기에 빠졌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는 63%였으나 클린턴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물었을 때는 35% 지지에 불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지율 60%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되고 있으나,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지지율이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로 보도되는 여론조사의 설문은 대개 ‘대통령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로 돼 있다. 이는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설문이기에 ‘대통령을 지지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설문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극단적 예를 들면 무자비한 독재자도 직무수행능력 면에서 지지율이 높을 수 있지만 독재자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면 조작된 것이다. 유신 때처럼 독재체제는 얼핏 효율적으로 보이는 데다 언론 장악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

클린턴과 달리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지지율에는 많은 거품이 끼어 있지만 우리 언론은 대개 이를 간과하고 높은 지지율만 반복해서 보도한다.

첫째, 대통령의 직무수행능력이 전임자와 비교되면서 생긴 거품이 있다. 전임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반사효과를 후임 대통령이 누리는 것이다. 4대강 비리 등 전 정권의 실정이 수사를 통해 부각되자 비정상적인 것을 바로잡는 박 대통령의 결단인 양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4대강 죽이기’는 당시 여당 대표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박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크다. 행정수도 사례도 있지만, 수십조원을 강물에 처넣기 전에 제어할 힘을 가진 이는 박근혜 대표밖에 없었다.

둘째,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지지율은 직전 시기와 비교되는 상대적 점수라는 사실이다. 집권 직후에 인사 무능 등으로 지지율이 40%대로 내려갔던 때와 비교해 그때보다는 잘한다는 평가가 지지율 반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등상보다는 노력상에 가깝다.

셋째, 집권 초기에는 재임기간이 많이 남았으니 앞으로 잘할 거라는 기대치가 지지율에 반영된다. 대통령제에서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되니 야성향 사람들도 한동안 집권 가능성이 없는 야당보다 대통령에게 일단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넷째, 야성을 상실한 야당이 박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생을 외면하는 장외투쟁이 국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박 대통령 말이 나오고 6일 만에 야당은 사실상 장외투쟁을 접고 말았다. 대통령 가능성이 있는 강력한 리더가 야당을 이끌어야 비교대상이 돼 대통령 지지율이 빠지게 된다.
 
다섯째, 지지율 상승의 일등공신은 언론이다. 안 그래도 기울어져 있던 언론 지형은 이명박 정권에서 보수일색의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하면서 완전히 기울어 박 대통령이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신화’로 남은 것은 언론에 재갈을 물린 측면이 컸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보수언론의 충성은 자발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뒤 보수세력의 응집력이 더욱 강해진 탓이기도 하다.

 

 

   
 

▲ 바람피운 클린턴의 ‘지지율’이 높았던 이유
 ‘지지율’에 근거한 박 대통령의 오만
 ‘이미지 정치’의 폐해 방치할 건가

 
일부 보수 신문과 방송은 박 대통령의 패션과 외국어 구사 등 지엽적인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10대의 팬덤 수준으로 정치를 희화화했다. ‘패션 외교’니 ‘투자 활성화복’이니 하는 신조어들이 쏟아지는데, 빨간옷을 입으면 투자가 활성화한다니 대통령이 영험있는 무당이라도 된단 말인가?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재래시장을 네 번이나 방문했는데, 빈대떡이나 사먹는 ‘민생쇼’가 민생에 기여하는 것은 빈대떡값 말고는 없다. 쇼를 벌이며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사이 현실에서는 정작 민생에 도움이 되는 복지공약들이 계속 후퇴하고 있다. 만들어진 지지율만 믿고 대통령이 오만에 빠지면 본인과 국민이 불행해진다.
 
한나 아렌트가 “정치의 절반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들이 그 이미지를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꼬았는데, 진보언론은 그런 ‘이미지 정치’의 폐해를 바라보기만 할 건가? 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 것이 외교와 대북관계라는데 그 성과가 얼마나 되는지 진보언론은 왜 제대로 짚어보지 않는 건가? 개성공단과 이산가족 상봉만 하더라도 남북한 당국이 서로 을러대다가 제자리로 돌아간 것밖에 없는데 어떤 업적을 새로 쌓았다는 건가? 어쩌면 남북한의 최고권력자가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내치의 경우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취임 반년 만에 거짓공약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원래 야당의 정책이었으니 선거 때 잠시 차용한 짝퉁공약이었나? 그런 점에서 경향신문이 23일 시작한 ‘퇴행하는 경제민주화,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의미있는 접근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압박은 감사원·국정원·경찰청·국세청에 이어 5대 권력기관장을 모두 ‘권력의 충복’으로 교체하려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최고권력에 맞서는 사람의 사생활을 들춰 밀어내는 것은 전래의 수법이다. 그러나 비열하게 정치하는 이들의 종말은 비슷하다. 클린턴 탄핵 국면에서 정치적으로 자멸한 사람은 성추문을 이용해 탄핵을 주도한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었다. 미국과 다른 것은 우리 언론이다.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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