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짓밟는 체벌 대신 마음 움직이는 훈육을

  ▲ 이재덕 기자

4년 전 한 코미디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영화 홍보사가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 “학교 마다 꼭 있는 선생님 별명은?” 모두 2263명이 응답한 가운데 37%가 꼽은 ‘미친개’가 1순위에 올랐다. 아마 당시 조사 결과를 본 많은 사람들이 ‘맞아,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거친 말투, 매서운 눈매에 굵은 막대를 휘두르며 학생들을 ‘잡던’ 무서운 교사가 학교 마다 한두 명쯤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학교는 크게 변하지 않는가 보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오장풍’ 교사 폭행사건은 우리의 교육 현장이 어떤 곳인지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한번 때리면 아이들이 날아간다’는 뜻에서 ‘장풍’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그 교사가 벌벌 떠는 6학년짜리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모습은 동영상을 보는 이들의 심장까지 벌렁거리게 만들었다.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고교시절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갖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실 앞에 불려나가 하키스틱으로 수십 대를 맞았던 일이다. 기분이 나쁜 상태로 수업에 들어오면 누구든, 무슨 트집이든 잡아서 매를 휘둘렀던 그 선생님은 그날도 지쳐서 힘이 달릴 때까지 내 허벅지를 내리쳤다.

며칠간 의자에 앉기 조차 힘들었던 다리의 고통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체벌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 복수심이 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런 감정은 졸업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사실은 지금도 용서할 수 없는 심정이다. 존경하고 감사해야 할 선생님을 분노, 복수심과 함께 떠올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런데 내 주변의 적지 않은 친구들도 학창시절을 돌아볼 때면 ‘피바다’, ‘조폭’, ‘작살’ 같은 무시무시한 별명의 선생님들을 떠올리곤 한다.

매를 휘두르는 교사들은 아이들이 흔히 ‘꼰대’라고 부르는, 말이 안통하고 고리타분한 어른인 경우가 많다. 요즘 아이들은 ‘꼰대’와 얘기하느니 차라리 학원 강사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아이들이 영악해서 말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많은데, 사실은 참을성 있게 이해하고 설득하는 대신 손쉽게 체벌로 해결하려는 무성의함의 다른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체벌은 ‘신체에 대한 폭력’일 뿐만 아니라 ‘개성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다. ‘맞아야 정신 차린다’며 매를 들었을 때, 아이들은 창의적인 사고를 꽃 피우기보다 획일적인 규율과 지시에 순응하게 된다. 그 지시가 납득되어서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서. 두발 단속, 획일적인 복장, 야간 자율학습 등을 체벌과 함께 강요할 때 대화와 설득, 진정한 훈육이 설 자리는 없다. 

군대에서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체벌이 학교에서 용납되는 이면에는 ‘성적 제일주의’ ‘학벌 지상주의’가 있다. 교사는 성적 향상과 명문대 입학이라는 ‘지상 과제’를 향해 학생들을 몰아간다. 일부 학부모들은 ‘때려서라도 공부만 시켜준다면.......’하는 생각으로 폭력에 눈을 감는다.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며 살인적인 스케줄과 심한 체벌을 이용하는 교육법이 인기를 끄는 것도 성적만 올리면 된다는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성적에 온 신경을 쏟다보니 학생이라는 인격체에 가해지는 강압과 폭력이 부당하다는 인식도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배워야 할 학생들이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하며 자라고 있다. 
 
경기와 서울 교육청이 늦게나마 ‘학생 인권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일부 학교에서는 체벌 대신 다양한 다른 규율을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규칙을 어긴 학생들에게 벌점제나 봉사명령 등을 적용하는 것이다. 무자비한 체벌보다는 낫지만, 여기서도 전제되어야 할 과정이 있다. 대화를 통해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를 쌓는 일이다. 학생이 무엇을 잘못했고, 그것이 왜 나쁜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교사의 훈계나 벌점 같은 제재는 학생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쌓은 신뢰는 폭력으로 만들어 낸 복종보다 강하다. 힘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대해 주신 선생님들을 우리는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랐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무자비한 매질과 폭언, 조폭 세계에나 어울리는 별명들이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미친 개’가 아니라 ‘스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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