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FF 경쟁작] <어이그, 저 귓것> 리뷰

 
▲ 영화에서 용필이 뽕똘과 댄서 킴을 훈련시키는 장면. ⓒ<어이그, 저 귓것> 홈페이지

‘쓸모없는 것들’이 전하는 제주도 가락과 사연

깜박 속았다. 처음엔 이 영화가 상당히 쓸쓸하고 슬픈 영화일 거라 생각했다. 한 남자의 쓸쓸한 귀향, 이미 이장된 어머니 묘 앞에 주저앉아 소리를 지르는 모습, 그리고 이 때 깔리는 아련한 배경음악. 무슨 사연일까, 궁금하면서도 남자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순간 음악이 멈춘다. 어느새 남자의 옆에 온 한 사내가 말한다.

“너 여기서 뭐 햄시니? 너네 어멍 산은 저기 아니가게. 어멍 산도 몰람시냐! 어이그, 귓것!”(너 여기서 뭐하냐? 너희 어머니 묘는 저쪽 아니냐. 어머니 묘도 몰라! 어이그, 바보!)

관객들의 뒤통수를 보기 좋게 후려친 이 영화는 제주도가 배경이다. 영화제의 전진수 프로그래머가 영화를 소개하며 한 말이 있었다.

“한국 영화인데도 한글 자막이 필요한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눈은 자막을 따라가기 바쁘고, 그러거나 말거나 독특한 제주 방언은 영화 전체에 흐른다. 영화는 한 마디로 한심한 네 남자 이야기다. 비생산적, 비효율적인 인간들, 제목처럼 ‘귓것’들이다. ‘귓것’은 제주도 사투리로, ‘귀신이 잡아가버려야 할 쓸모없는 것’이란 뜻이다.

주인공 ‘용필’은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실패하고 낙향한다. 무슨 곡절인지 목에는 깁스를 하고 절름발이가 된 채 돌아왔다. 그런 용필에게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두 청년이 찾아온다. 아랫마을에서 온, 춤을 좋아하는 ‘댄서 킴’과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싶어 하는 ‘뽕똘’이다. 이 둘은 농사일도 팽개치고 놀러 다니기 바쁜 한량들이다. 여기에 동네 점빵(구멍가게)를 기웃거리며 술을 훔쳐 할망(할머니)에게 매일 구박을 받는, 흡사 거지 행색의 귓것 하르방(마을 삼촌)도 있다. 요즘 언어로 얘기하자면 그야말로 ‘루저’들이다. 영화는 이 루저들의 삶을 제주도 민요, 포크 음악으로 맛깔나게 담아낸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안타까움을 해학으로 승화

스토리 구조는 엉성한 면이 없지 않다. 용필이 노래하는 모습, 뽕똘이 집안일을 팽개치고 노는 모습, 귓것 하르방이 길거리에서 잠자는 모습들이 이야기 절반을 채운다. 캐릭터별 삶의 단면이 얼기설기 엮여, 다소 거칠다. 그 공백을 짜임새 있게 메워주는 것이 바로 ‘소리’다. 오멸 감독은 이에 대해, “시나리오에 의해 영화를 만들기보다 음악에 맞춰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상이 음악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단다. 덕분에 영화에 등장하는 용필의 포크송, 제주 노동요는 영화가 끝나도 여운이 남는다.

   
▲ 보리밭을 거니는 귓것 하르방. ⓒ<어이그, 저 귓것> 홈페이지

다소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은 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쓸쓸함’이다. 용필은 카지노 개발을 위해 어머니 묘를 이장하라는 정부의 통지서를 받는다. 점빵 할망이 세상을 뜬 후, 뽕똘은  유수암리 점빵 대신 대형 마트로 가서 장을 본다. 낮은 돌담과 보리밭은 여전하지만, 한발짝만 앞으로 나오면 이미 산업화와 개발 붐이 한창이다. 점빵 할망의 죽음 후 귓것 하르방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나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 옆을 거니는 모습은 이런 괴리를 부각시킨다. 빠르게 흐르는 사회와 느리게 걷는 ‘귓것’들, 그 사이에서 자라나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슬프다.

오멸 감독은 촬영 뒤 다시 유수암리를 찾았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만큼이나 빠른 변화를 실감했다는 그. 영화 속 점빵 뒷집은 그새 리모델링이 되었고, 네 남자가 주로 모이는 장면의 배경이었던 팽나무는 사라지고 없었다. 팽나무는 예부터 제주도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다. 이 수호신도 결국 ‘발전’이란 이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 감독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제주도 고유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게 아쉽습니다. 돌담 풍경 하나도 제대로 찍기 힘들어요.”

800만원이 조금 안 되는 저예산 영화를 찍기란 쉽지 않을 터. 우여곡절도 많았다. 영화 후반부, 댄서 킴이 가출해 서울로 가는 장면의 뒷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뮤지컬 일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겠다는 배우가 있어, 촬영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결국 가출씬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에도 춤추는 장면 찍은 저예산 영화

밭에서 사람들이 노래 부르며 춤추는 장면을 찍을 때는 다소 죄책감을 안고 찍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그 날 촬영이 있었다. 한 편에서는 슬픔과 추모 열기가 가득한데, 한 편에서 춤을 추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갖가지 사연에도 영화는 해학이 넘친다. 네 ‘귓것’들이 댄서 킴의 친척 잔치에 공짜 술을 얻어먹기 위해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나서는 장면의 슬로우 모션은 여느 코미디영화 못지않다. 캐릭터마다 특징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영화의 리얼리티가 산다. 배우들의 실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제천음악영화제 행사 중 <무비톡, 뮤직톡> 시간. 왼쪽부터 오멸 감독, 용필 역 양정원, 전진수 프로그래머. ⓒ김지영

배우들 모두 제주도에서 소리와 예술의 외길 인생을 산 사람들이다. 점빵 할망을 연기한 오영순씨는 ‘문화단체 소리왓’ 대표를 지내고 여러 소리판굿 공연에 출연한 전문 소리꾼이다. 실제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라, 영화 속에서 미리 ‘죽음을 맛본’ 뒤 녹음을 하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뽕똘 역의 이경준씨는 현재 거리 퍼포먼스를 하고 있으며, 감독은 미혼인 그를 위해 특별히 영화 속에서 결혼을 시켜주었다. 귓것 하르방을 연기한 문석범씨 역시 전문 소리꾼이며, 양정원씨는 제주도에서 3집까지 낸 가수다.
 
영화 속에서 양씨는 다소 우울한 멜로디와 가사로 인생의 씁쓸함을 노래한다. 실제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타 피크를 지금도 애용한다. 그는 ‘기타와 노래가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런 그를 보며 감독이 쑥쓰러운 듯 얘기했다.

“여기 양정원 씨는 제주도의 유명한 가수신데, 개런티로 보약 한 상자 해드렸습니다.”

‘어이그, 저 귓것’에서는,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관광의 섬 제주도, 그 이면에 서린 고독과 소멸을 해학으로 풀어내는 감독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하찮아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하찮은 것’은 아니라는 무언의 항변을 엿들을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경쟁지상주의로 내몰리는 한국인들이 꼭 봐야 할, 아니 꼭 가져야 할 ‘휴식’ 같은 영화다. 잊혀져가는 모든 것들을 위해 이 영화를 추천한다. 구성진 노랫가락과 유수암리의 일렁이는 보리밭은 귀와 눈을 위한 추가 서비스다.

오멸(오경헌) 감독

1971년 제주 출생. 단편 <머리에 꽃을>(2003), <립스틱 짙게 바르고>(2004) 등을 연출했다. 첫 장편 <어이그, 저 귓것>으로 2009 후치초후루유 한일해협권영화제에서 그랑프리와 우수영상상을 수상했다. 연극연출, 퍼포먼스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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