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에 도전한 다큐 <브라보! 재즈라이프> 관람기

▲ 영화 속에서 후배들 헌정 음반 녹음을 하는 '한국재즈1세대밴드'. 왼쪽부터 이동기(클라리넷), 신관웅(피아노), 최선배(트럼펫), 김수열(색소폰). ⓒ JIMFF

드라마틱한 1세대 재즈인생이 곧 영화

희끗희끗한 머리, 빠져버린 치아, 주름이 깊게 팬 얼굴. 재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모습을 하고 무대에 서는 이들이 바로 ‘한국재즈1세대밴드’이다.

1세대 연주자들은 1950년 한국전쟁 뒤 주한미군 부대에서 활동하며 재즈를 배웠다. 대부분 독학으로 재즈음악을 터득했지만 연주할 곳조차 없었다. 재즈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추기 위한 음악, 이른바 ‘백뮤직’에 불과했다. 어쩌다 클럽에서 연주할 수 있게 돼도, 손님들 취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잘리기 일쑤였다. 그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고 ‘야누스’라는 이름으로 한국 땅에 재즈음악을 널리 전파한 사람들이 바로 1세대다. 원년 멤버 몇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 멤버와 후배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이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져 10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재즈 평론가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남무성 감독이 연출했다. 남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1세대 연주자들의 음악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감독은 멤버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다루기보다 이들의 재즈가 가진 음악적 매력을 전달하는 데 치중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장면마다 깔리는 재즈 선율, 후반부 콘서트에 나오는 이들의 음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영화에 주축으로 나오는 1세대 멤버는 대략 9명. 대부분 육칠십대다. 나이가 들다보니 연주가 사실상 어렵다. 영화도 트럼펫 연주자 강대관(76)씨가 은퇴공연을 하고 낙향한 데서 시작한다. 노환으로 치아가 거의 빠져버려 제대로 트럼펫을 불기도 힘들었다. 경북 봉화 어느 곳에 자리 잡은 그를 찾아간 동료와 얘기를 나누다 그가 슬그머니 악기를 꺼낸다. 그의 트럼펫 연주를 듣던 동료들이 하나둘 자기 악기를 꺼내 소리를 더한다. 영락없는 재즈맨들이다. 

▲ 동료들이 강대환씨 집에 모여 연주를 하고 있다. ⓒ JIMFF

한번 빠지면 아편처럼 헤어질 수 없는 재즈

한국에서 재즈 이론을 정립한 이판근(68) 선생도 등장한다.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재즈를 가르친 덕분에 그를 거친 걸출한 제자들이 많다. 그런 그의 작업실이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처해있다. 사뭇 유령 도시처럼 보이는 썰렁한 거리, 그 곳 한 건물에서 이판근 선생은 여전히 재즈를 연구 중이다. 한국에 재즈를 알리기 위해 가사 한글화 작업에 나섰던 그. 지금 그가 사용했던 연습실은 상당한 양의 재즈 자료와 야누스 활동 당시 팜플렛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재즈 팬들로부터 ‘이판근 재즈 박물관’으로 이곳을 남겨두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현실은 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아편쟁이’라고 불렀다.

“재즈는 아편처럼 꾐에 넘어가 빠질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한번 빠지면 아편처럼 헤어 나올 수 없어.”

영화에서 감초처럼 등장해 재즈 예찬론을 펼치는 류복성(69)씨는 “요즘 음악하는 젊은 애들에게는 인생이 없다”고 말했다. “우린 재즈, 그 자체가 인생이지.”

영화 속에서 그는 재즈 동아리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과 포장마차 술집에 둘러앉아 자신의 삶과 음악을 논한다. 백발의 노인이 굵직한 목소리로 재즈를 논하는 모습에 연출은 없다. 실제로 카메라를 앞에 설치한 채 세 시간쯤 술을 마셨고, 술값만 50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거장’이라고 부르는 학생에게 ‘거장이 아니라 거지’라고 응수하는 노인의 재치가 빛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의 열정적인 봉고 연주를 보면 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힘이 있다. 미군 부대에서 재즈를 배우던 시절,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며 자료를 모아 동료들에게 조달했던 이가 바로 류복성씨. 그 시절에 비해 오늘날은 재즈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한국에 재즈 사운드 엔지니어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영화 말미, 그는 영화 스태프들에게 말한다.
“한국에서 재즈영화, 누가 보겠어?”

▲ 8월 13일 저녁, 제천음악영화제에서 영화가 끝난 뒤, 출연자들이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사회를 본 전진수 프로그래머, 남무성 감독, 신관웅(피아노), 김준(보컬), 이판근(재즈이론가), 류복성(드럼). ⓒ 김화영

“후배들이여, 외로움만 빼고 다 가져가라”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열정’과 ‘외로움’이다. 당시 재즈 음악은 가난을 동반했고, 유신시대는 이들을 외면했다. 그럼에도 무대에 선 그들의 얼굴에서는 그간의 쓸쓸한 족적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 기획자들과 후배들이 주축이 되어 1세대 기념 공연을 준비한 ‘재즈파크’에서, 노인들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신나게 재즈를 연주한다.

한국 재즈의 유일한 남자 보컬리스트 김준(71)씨가 부르는 ‘마이웨이(My way)'는 ’빅밴드‘ 형식으로 편곡돼 장엄하게 들린다. 그는 1년 6개월 전 위암 수술을 했고 11㎏이 빠졌다. 그럼에도 지금 목소리는 예년과 다르지 않다. 대기실에 앉아 트럼펫 주자 최선배(68)씨가 묻는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늙었죠?” 클라리넷을 부는 이동기(72)씨가 해맑은 소년의 미소로 답한다. 

“늙었다니요, 우린 아직 이렇게 젊은데요.”  

그밖에도 색소폰의 김수열(69), 보컬의 박성연, 드럼의 임헌수, 피아노의 신관웅이 1세대 밴드를 유지해가고 있다. 신관웅씨는 사실 가끔 등골이 오싹할 때가 있다. 이미 최세진(드럼), 홍덕표(트럼본)씨가 세상을 떠나고 강대환씨가 은퇴한 상태다. 공연을 할 때면 실수도 잦고 소리도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영화가 좀 더 일찍 만들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는 안타까움을 전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에도 여기 서 있는 것 자체가 멋있지 않냐’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 그냥 그 모습대로 오래 무대에 서는 것, 그리고 후배들이 한국 재즈를 잘 이어가는 것. 그것이 1세대 밴드의 꿈이다.

그들이 무대에 서는 순간 역사가 된다

 ▲ '한국재즈 1세대 밴드'의 퍼커셔니스트 류복성 씨. ⓒ 김화영

“연주의 정점은 음과 음 사이 짧은 정적에 있다.” 재즈음악가 텔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말이다. 영화 속 백미는 이 정적 부분이다. 공연 직전, 대기실에서 일제히 일어나 무대로 향하는 1세대 연주자들. 그들이 무대로 향하기까지 화면은 흑백으로 바뀌고 정적이 흐른다. 시종일관 배경음악으로 깔리던 음악은 들리지 않고, 공연에 임하는 그들만큼 관객도 숨을 죽이게 된다. 그 짧은 정적은 1세대 재즈 인생의 외로운 삶과, 그럼에도 열정 하나로 걸어가야 했던 그들의 숙명을 어렴풋이 설명해주는 듯하다. 

“Jazz is not special."

김준씨는 재즈를 이렇게 정의했다. 특별하진 않은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 표현의 다양성과 애드리브가 좋은 음악, 그것이 재즈라고 했다. 류복성씨는 한국에서 재즈를 하는 것은 전투음악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애초 재즈의 불모지였던 한국. 땅은 여전히 척박하다. “난 아직도 전쟁 중이야.”

1세대 연주자들은 지금도 매주 목요일, 홍대 앞 클럽 ‘Moon glow’에서 공연한다. 누군가 이들을 가리켜 ‘한국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고 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의 나이 든 재즈음악가들이 만든 밴드로 멤버의 나이가 지금 팔구십 대이다. 재즈는 원래 백인음악과 접촉하면서 생겨난 흑인음악이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동양의 어르신들’이라고 즐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옷차림부터 단지 ‘보여주려고’ 나온 연주자가 아니었다. 청바지와 백바지, 해병대정글복에, 제천장을 보러온 듯한 촌로의 복장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재즈를 즐기려고 나온 관객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재즈를 즐기며 대중과 함께 한 반세기, 지금도 달리고 있는 그들, ‘한국 재즈 1세대.’ 이 한 문장이 오롯이 그들을 표현한다.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는 이렇게 외치자.

“브라보! 재즈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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