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 <더 콘서트> 리뷰

 
   
▲ 개막작 '더 콘서트'에서 주인공 안드레이 필리포프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루고 있다. ⓒ 이태희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실패한 작품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잇단 거절로 초연까지 2년이 걸렸고, 초연 뒤에도 비평가들의 혹평이 쏟아졌다. 4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되는 이 곡. 결국 연주를 포기하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의 열정과 갈망이 성공을 일구어냈다.

여기 그와 꼭 닮은 열정을 지닌 남자가 있다. 그 곡으로 모든 것을 뺏겼음에도 차이코프스키만 바라보고 산 지 30년째. 영화 <더 콘서트>의 주인공 안드레이 필리포프다. 그는 유명한 지휘자였으나 구소련 브레즈네프 시절,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있던 유태인 연주자들을 내쫓으라는 당의 지시를 어겼다. 결국 자신이 아끼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아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던 중, 당 간부에 의해 지휘봉이 꺾이는 수모를 당한다. 알콜중독 증세를 보이며 볼쇼이 극장 청소부로 전락한 그. 30년 뒤 실패한 그의 모습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왔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보내온 볼쇼이 오케스트라 초청장을 빼돌린 그는 옛 유태인 동료들을 모아 파리로 갈 계획을 세운다. 흩어진 단원들을 모으는 모습은 다소 코미디다. 집시에다 장사꾼, 에로영화 배경음악 연주자도 있다. 심지어 매니저는 자신의 지휘봉을 꺾었던 공산주의자 이반이다. 이런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는 이미 식상한 소재가 됐지만, 묘하게도 입맛을 당기는 데가 있다. 구두와 연주복, 악기조차 없어도 웃으며 공항까지 7Km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그들이 너무도 ‘쿨’했기 때문일까.

영화 속 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꾼다. 협주곡을 향한 안드레이의 갈망, 한몫 챙기고자 장사를 하러 다니는 유대인 부자, 공산당 부활을 도모하는 몰락한 공산주의자 이반 등등.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된 큰 꿈이 있다. 바로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고자 하는 꿈이다.

‘레아를 위한 공연’. 리허설도 오지 않는 단원들을 모이게 한 단 1줄의 문자였다. 수용소에서 죽기 직전까지 연주를 하던 레아를 위해 그들은 모였고, 다양한 삶들은 아름다운 하모니가 되었다. 안드레이는 물론 단원 전체가 연주를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음악을 되찾는다.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까?

   
▲ 파리의 샤틀레 극장 공연 장면. ⓒ JIMFF

감독의 역량이 빛나는 부분은 단연코 샤틀레 극장의 공연 장면이다. 안드레이의 독백과 과거 회상 씬들이 협주곡의 흐름에 살짝 얹혀 등장하더니, 음악의 클라이맥스에서 비밀이 짠하고 밝혀진다. 레아 부부는 KGB에 끌려가기 전 안드레이에게 자신들의 딸을 맡겼다. 악기 통 속에 숨겨져 프랑스로 보내진 그 아이, 그 딸이 바로 안느 마리 자케였다. 흑백 화면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는 레아와 30년 후 같은 곡을 연주하는 안느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음악 또한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음악과 비밀이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 관객들의 가슴도 함께 뛸 수밖에 없다.

사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안느와 리허설 한 번 않고 협연한다는 설정부터가 다소 드라마틱하다. 게다가 협연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개고리는 출생의 비밀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유치하지 않다. 음악을 향한 열정이 아름다운 선율과 만나 내는 시너지가 스토리를 낯설게 한다. 레아의 악보를 연주하는 안느와 그 옆에서 30년 전의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하는 안드레이 사이에 오가는 음악적 교감은 보는 사람의 가슴도 공명하게 한다.

배우들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출연했던 멜라니 로랑은 실제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주자에게 3개월간 바이올린을 배웠다. 약 70편의 작품에 출연한 러시아 국민배우 구스코프의 열연 역시 현실과 영화를 헷갈리게 만들 정도다. 

루마니아 출신인 라두 미하일레아누 감독은 실제로 자신이 어린 시절 차우세스쿠 독재정권의 억압을 겪었다. 구소련의 정치적 탄압과 이념적 갈등이 영화 배경에 등장하는 이유다. 감독은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졸업 후 <더 콘서트>를 포함해 지금껏 4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전작들은 대부분 정치적 억압과 유태인이 등장하며, ‘망명’과 ‘정체성’의 주제를 갖는다.

이번 작품 <더 콘서트>는 프랑스에서 2010 세자르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4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도 감독은 제천음악영화제를 위한 영상인터뷰에서 겸손인지 자부심인지 모를 아리송한 말을 했다. “너무 너무 부끄러운 영화(very very bad movie)를 상영해줘서 영광입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결국 사람들에게 통했듯 안드레이의 오케스트라 연주도 영화 끄트머리에서 빛을 발한다. 각기 다른 사람과 악기가 모여 이루는 작은 세계 속에서 마침내 전해지는 그 감동의 순간. 무엇이든 끝을 보기 전엔 무슨 말을 하지 마시라.

   ▲ <더 콘서트> 주요장면. ⓒ JIMFF

영화정보

ㆍ감독 - 라두 미하일레아누
ㆍ출연 - 알렉세이 구스코프, 멜라니 로랑
ㆍ국가 - 프랑스, 이탈리아, 루마니아, 벨기에
ㆍ감독 수상경력
    - 제55회(2005) 베를린국제영화제 라벨유럽영화상 <리브 앤 비컴>
    - 제55회(2005) 베를린국제영화제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파노라마 <리브 앤 비컴>
    - 제15회(1999)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생명의 기차>

ㆍ재상영
     TTC 복합상영관 2관 8월 14일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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