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존폐론’에서 ‘감동’으로 전환

 
 
▲ '영화, 음악, 자연의 만남',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12일 막을 올렸다. ⓒ이태희

‘물 만난 축제’에 어김없이 내린 비...관객들 끝까지 자리 지켜

‘정상’에서 조우하는 사람 중에는 국가원수도 있고 적도 있다. 정상회담이 갈등 해소와 우호적 분위기 조성의 수단이라면 고지탈환전에서는 적을 섬멸해야 자기가 산다. 그동안 ‘존폐위기설’ 등으로 말도 많았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그러나 12일 개막식은 영화제와 관련한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대단히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개막작부터 관객들에게 ‘절정의 감동’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영화도 바이올리니스트의 출생의 비밀을 드러냄으로써 음악과 영화는 정상에서 조우한다.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려진 영화 속 관객과 영화제의 관객은 하나의 관객집단으로 결합했다. 연주가 끝나고 영화 속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자, 영화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관객까지 몇 명 눈에 띄었다.

관객들은 부슬비 속에서도 우비를 입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부부나 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최측에서 나눠준 우비를 입고 우산 하나로 함께 하반신을 가린 모습들은 비가 연출한 정겨운 장면이었다. 제천음악영화제는 해마다 비를 몰고 온다는데 올해도 비켜가지 않았다. ‘물 만난 영화, 바람난 음악’이라는 구호를 내건 이번 영화제가 물은 이미 만났으니 절반은 성공한 셈인가? 아니, 고유영역에서 외출한 음악도 있으니 성공은 담보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윤도현, 다큐멘터리 출연에 개막식 사회까지

개막식 전 백제가야금연주단은 경쾌한 음악 ‘맘마미아’를 가야금에 맞게 편곡해 분위기를 띄웠다. 조직위원장 최명현 제천시장의 개막선언에 이어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7회 대회를 더 성대하게 열자고 말해 존폐위기설을 불식했다. 조희문 영진위원장, 곽재용, 허진호, 이장우, 정지영, 장철수 감독 등 국내외 영화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고, YB(윤도현 밴드), 소이, 오광록, 안석환, 임하룡, 지성원 등 스타들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올해부터 제천시로부터 영화촬영 지원을 받게 된 ‘아시아·태평양 프로듀서 네트워크(APN)’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 개막식 사회을 맡은 윤도현과 김정은. ⓒ 선희연 

개막식 진행은 음악영화제답게 가수 윤도현과 배우 김정은이 맡았다. 윤도현은 자신이 속한 YB가 미국 7개 도시를 투어 공연한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 ‘플라잉 버터플라이(Flying Butterfly)’도 이 영화제에서 상영된다고 슬쩍 광고했다. 김정은이 “워낙 연기를 잘하시니까...”라고 띄우자, 윤도현이 “다큐멘터린데 연기하면 큰일 나죠”라고 되받아 웃음을 자아냈다.

홍보대사인 배우 백도빈과 정시아 부부는 “제천은 외할머니와 엄마의 고향이라 저에겐 제2의 고향”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가진 도시에서 열리는 음악영화제에서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국 영화음악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에게 수여하는 ‘제천영화음악상’은 김수철 음악감독에게 시상됐다. 가수로도 유명한 김 감독은 1983년부터 영화음악 활동을 시작해 <고래사냥> <서편제>, 최근작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활약했다. 영상인터뷰에서 <고래사냥>의 배창호 감독은 “김수철씨를 보는 순간 이 영화(고래사냥)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젊은 나이에도 한국적 가락과 정서를 잘 이해했다”고 평했다. <칠수와 만수>의 박광수 감독은 “얼굴 보면 (김철수 음악감독이) 아직도 어린애처럼 보일텐데...”라고 말했고, 그 순간 김 감독의 폭소가 터졌다.

한국재즈 1세대 밴드 관록 과시

이번 국제음악영화제 경쟁작인 <브라보! 재즈 라이프: Bravo! Jazz Life>에서 열연한 ‘한국재즈 1세대 밴드’도 50년 넘는 관록의 무대를 펼쳤다. “우린 만났지~ 제천영화제에서~ 처음 본 순간~ 우린 뿅갔다~.” 1990년 나온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모베터 블루스: Mo' Better Blues>의 선율에 맞춰 세계적인 타악기연주자인 류복성씨의 중저음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St. Thomas' 를 연주할 때는 팔꿈치로 봉고를 두드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브라보! 재즈 라이프>에서 노환으로 치아가 거의 없어 낙향한 트럼펫 연주자로 나오는 강대관씨도 솔로 연주 솜씨를 보여주었다. 재즈피아니스트 신관웅씨는 “우리는 레드카펫도 밟지 않고 (이 나이에) 옷도 제멋대로 입고 왔는데, 이게 바로 재즈맨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 '한국재즈1세대밴드'의 멋진 재즈무대. 이들은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 라이프'의 주인공이다. 고령인데도 20분간 정열적으로 연주해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냈다. ⓒ 선희연 

 “국제음악영화제이니 지역색 걷어냈으면...”

음악과 영화를 함께 즐기려는 제천음악영화제 매니아도 점차 늘고 있다. 정기복(경기 수원시, 57)씨 부부는 여름휴가를 해마다 제천으로 온다. 그는 “영화제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것 같다”며 “다만 정치인들이 너무 여러 명 인사말을 하는 등 지역색을 드러내는 것은 국내외에서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국제음악영화제로서는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제 자원봉사단으로 활동 중인 김현용(대구 계명대 미디어 영상학과 4학년, 25)씨와 같은 학교 후배인 권현종(24)씨는 “여기 시민들이나 관객들이 너무나 친절해서 우리한테 뭐 바라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오해했다”고 말했다. 개막식은 국제적인 음악영화제이면서도 지역에 뿌리내린 축제로 자리 잡아갈 가능성과 일부 개선점들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