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발언대] 김태준 기자

▲ 김태준 기자

우리가 흔히 ‘1차 북핵위기’로 기억하는 한반도의 긴장은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플루토늄 대량추출을 의심하며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을 결의한 게 발단이었다. 당시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인 ‘팀스피릿’을 트집 잡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등 원색적 위협을 퍼부었다. 한국과 미국의 보수언론들은 ‘서울 불바다’ 발언 등을 문제 삼아 연일 강경대응을 주문했고, 실제로 미 정부 수뇌부는 94년 ‘영변 핵시설 정밀타격’등 공격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은 클린턴 정부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보내 ‘핵무기와 무관한 경수로발전을 지원한다’는 등의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진정됐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정부는 대북강경대응을 주장하는 지지층의 요구에 휘둘리다 북미협상과정에서 소외됐고, 나중에 경수로 지원금 등 비용만 떠안았다. 대화와 협상을 위한 창구도, 지렛대도 확보하지 못하다 보니 우리의 운명을 남의 손, 즉 미국의 처분에 맡겼야만 했던 것이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국제연합(UN)의 대북제재조치 이후 한반도는 또 다시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긴장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 선언과 미사일발사 위협, 개성공단 통행 제한과 우리 정부의 잔류인원 전원 철수조치까지 남북은 ‘누가 더 강심장인가’를 겨루는 듯 ‘치킨게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 북한 정권은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 몰아세운 부시 행정부에 맞서, 또 중동에 신경을 쏟느라 좀처럼 자신들에게 집중하지 않는 오바마 행정부를 겨냥해 크고 작은 도발을 감행했다. 상당수 북한전문가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행동 배경에 미국으로부터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와 경제지원을 끌어내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정부와 미국은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밥을 주는 대신 매를 휘두르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 15년간 두 가지의 상반된 대북정책을 경험했다. ‘햇볕정책’ 혹은 ‘포용정책’으로 불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화해정책과 ‘엄격한 상호주의’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이 그것이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쌀과 돈을 퍼주어 북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공격한다. 상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항복만 기다리다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망가뜨렸다’고 힐난한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이렇다.우선 김대중·노무현 때나 이명박 때나 북한은 핵개발을 계속했다. 북한 핵은 처음부터 남한이 아닌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고, 남북관계가 좋을 때도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북한의 위기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설한다. 그런데 두 시기의 결정적 차이는 천안함, 연평도 등 심각한 안보불안이 이어졌던 이명박 때와 달리 김대중·노무현 때는 연간 수십만 명이 금강산과 개성을 오가는 등 국민이 전쟁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남쪽 자본과 북쪽 노동력 등 양측의 장점을 살린 경제협력을 통해 서로 이익을 얻고, 장차 평화적 통일도 이룰 수 있겠다는 희망이 커졌다. 이 모두가 이명박 정부 때 거의 물거품이 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이명박 정부 시절의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며 집권했다. 그러나 막상 ‘실제 상황’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실질적인 대화 노력 대신 개성공단 잔류인원 철수에 이어 단전, 단수까지 거론하는 강경한 대응은 94년 북핵위기 당시의 김영삼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남북평화협력의 마지막보루였던 개성공단마저 문을 닫는다면 ‘거대한 파국’을 막을 돌파구는 이제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최근 외신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국무부에 방북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구금된 한국계 미국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명분이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물꼬를 트기 위해 초청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에도 우리는 전직 미국 대통령의 활약에 우리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미국의 이해가 우리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데도 말이다. 123개 우리 중소기업이 피눈물을 흘리며 지키려는 개성공단, 그 소중한 남북화해의 지렛대를 이렇게 던져버려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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