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친절한 여성성’ 활용 콜센터상담원 “휴일 감정노동 더 힘들어요”

띠~. 벨이 한 번 울리면 즉각 전화를 받아야 한다.  
“정성을 다하는 대한항공 정지숙입니다.”
“지금 홈페이지에서 티켓 끊으려고 하는데 계속 안돼요.”
“고객님 혹시 보안프로그램 설치하셨습니까? 그럼, 팝업 차단은 해지하셨는지요? 인터넷 익스플로어 버전이 8또는 9버전인가요?”

짜증내면 큰일 나는 짜증스런 일

▲ 편안한 복장으로 근무하지만 온라인 상담과 콜 전화로 주중보다 더 바쁜 주말 콜센터. ⓒ 진희정

대개는 주말 꽃놀이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7시,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대한항공 전산센터 건물 2층은 연이어 들어오는 콜 전화로 쉴 틈이 없다. 국내선 예약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정지숙(28•화곡동)씨는 온라인 예약에 애먹고 있는 고객이 걸어온 전화를 15분째 상대하고 있다. 인터넷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전담부서가 따로 있지만 주말 근무를 하지 않아, 예약 콜센터로 넘어온 것이다.

“보통 업무가 분담돼 있어 담당 일만 처리하는데, 이런 경우는 제 소관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도와드려야 해요. 담당자가 출근하는 주중에 문의하라고 했다가, 그 사이 고객이 원하던 예약이 동나버리면 결국 저희 부서로 컴플레인이 들어오거든요.” 

일을 다 마무리하기도 전에 예약 관련 문자 상담이 또  들어온다. 왼쪽 어깨와 뺨 사이에 상담중이던 수화기를 걸쳐두고 응대하면서, 동시에 남는 손과 눈은 방금 들어온 문자들을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바삐 움직인다. 상담업무 특성상 응답이 늦거나 일이 꼬여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인사고과에 반영되니 잠시 지체할 수도 없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 120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한 여직원들이다. 항공사 콜센터 업무는 24시간 연중 내내 운영돼 직원들은 주중, 주말에 상관없이 2교대로 근무한다. 오후 1시에 출근한 정씨와 나머지 60여명 직원들이 밤 10시에 퇴근하고 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밤새 근무하는 일명 ‘나이트’ 직원들이 출근한다.         

“낮 근무도 마찬가지지만, 나이트 근무는 전 세계에서 걸려오는 콜을 다 받는 거예요. 시차나 국가를 떠나 다급한 콜부터 이미 잔뜩 짜증이 난 고객 전화까지, 정말 가지각색의 상담업무를 일일이 다 친절하게 대처해야 해요.”

‘친절하고 상냥한’ 여성성을 이용한 콜센터 상담업무는 노동시장 진입장벽이 높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환영받는 몇 안 되는 직종 가운데 하나지만, 실제 근로자들은 고통스런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벚꽃놀이도 어두운 밤에만 할 수 있어요”

상담업무가 연중무휴라고 해서 이들도 일 년 내내 일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직장인의 한 달 휴일과 같은 날짜만큼 쉬지만, 고객 상담이 들어오는 양을 뜻하는 ‘콜 인입량’을 고려해 매달 근무 날짜를 조정하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날 휴일을 보내게 된다.

▲ 콜센터에는 상담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상황판이 사방에 배치돼 있다. 평상시 인원의 절반 정도만 근무하는 주말에는 모든 상담 문의에 응답하기 빠듯하다. ⓒ 진희정

국제선 예약부서에서 일하는 3년차 배지현(29•목동)씨는 입사 이후 한 번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쉬어본 적이 없다. 다음 달 근무 일정을 조정하기 전 회사에서 직원들로부터 각자 원하는 휴무 일자를 접수받지만, 연말이나 명절 연휴에 쉬고 싶은 마음은 다 같으니 매번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기 일쑤다. 

“설이나 추석처럼 연휴가 끼어 있는 달은 직원들 휴무요청이 거의 다 비슷한 날에 몰리기 때문에, 조정이 잘 안돼 결국 제비뽑기를 하거나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정해요. 운 좋게 쉬더라도 나 대신 다른 직원이 고생스럽게 일하는 거니까 맘이 안 편하죠. 그리고 그게 결국 다음 달 내 모습일 수도 있고...”

토•일 휴일이 여덟 번인 4월에 배씨는 주중에 여덟 번 쉬는 대신 주말에 모두 근무하는 것으로 배정받아, 한창 만개한 여의도 벚꽃놀이도 지난 수요일 다녀왔다. 그녀는 “한산한 주중에 꽃놀이해서 좋았다”면서도 “회사원인 남자친구 퇴근시간에 맞추다 보니 어두워서 벛꽃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배씨 커플은 함께 여의도 꽃길을 거닐었지만,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