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선샤인 제천’ 내걸고 시민들 ‘웃음치료’ 프로젝트 추진

표정 없는 사람들 때문인가? 싸늘한 봄비에 젖은 제천문화회관 일대는 계절이 무색하도록 스산해 보였다. 회관 앞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 처음 열리는 제천시 웃음치료 프로젝트 ‘선샤인 제천’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여성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오기도 했으나, 남성들은 대개 혼자였다.

회관은 ‘웃음’을 되찾기 위해 온 5백여 시민들로 붐볐다. 행사가 끝나고 나갈 때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진 듯했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기가 오래 갈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건 웃음 상실의 원인을 개인에게만 돌릴 수 없게 된 때문이 아닐까? 같이 가난할 때는 그래도 이웃과 웃음을 나눴지만 극심한 양극화가 이웃을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게 만든 건 아닐까? 우리의 사회상이 뭔가 화난 얼굴로 돌아보지 않으면 실없어 보일 정도로 참담한 지경에 빠져버린 건 아닐까? 웃음치료 현장에서 떠오른 우울한 생각들이었다.

▲ 제천시 웃음치료 프로젝트 ‘선샤인 제천’에 참여한 시민들이 행사장 앞에서 무료혈압검진을 받고 있다. ⓒ 박병일

자살률 전국 2위 제천시, 스트레스∙우울증 관리 나서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 1위는 충남 보령시, 그 다음이 충북 제천시였다. 3년 뒤인 2012년 역시 나아지지 않았다. 인구 10만명당 우리나라 자살률은 평균 33.5명이었지만 제천시는 47.6명이나 된다. 23일에도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남녀 3명의 동반 자살 사건이 보도됐다. 그 곳 역시 제천이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제천시가 나섰다. 23일 저녁 6시, 제천문화회관에서는 ‘선샤인 제천’ 선포식이 있었다. ‘선샤인 제천’은 제천시가 전국 최초로 시도하는 시민 대상 웃음치료 사업의 슬로건이다. 우울증과 자살률이 높은 계층인 청소년과 성인, 노인계층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 관리를 위한 전문웃음치료 강좌를 운영하는 것이다.

최명현 제천 시장은 “남녀노소에게 쉽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웃음” 이라며, “치료, 치유의 의미를 담은 ‘힐링’이 유행인 요즘, 제천시는 지속적인 대상자별 맞춤형 웃음치료로 시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행 없이 행사에 참여한 김모(67)씨는 “약이나 의료시술이 아니라, 단지 ‘웃음’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 신기하고 궁금해 방문하게 됐다”고 밝혔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왔다는 박모(55·여)씨는 “요새 우울한 일들이 많았는데, 배가 아프도록 실컷 웃고 털어버리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 행사 시작 전 들어와 자리에 앉는 시민들. 대부분 고령이었다. ⓒ 박병일

웃음치료사 “웃음은 내장운동, 혈액순환에도 좋아”

김충현 웃음치료사(펀에너지연구소 컨설팅 대표)는 유쾌했다. 시종일관 참가자들을 웃겨가면서 행사를 진행했다. 그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은 ‘being'을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well-being‘을 추구한다”면서,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웃을 것을 권유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입니다. 그런데 왜 조연들에게 휘둘리며 사세요? 주인공인 나를 따라가야지요. 부모, 자식, 조직, 사회, 국가, 모두 다 조연입니다. 조연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찾으세요.”

김 대표는 또한 웃음을 ‘햇빛’에 비유했다. 웃음과 햇빛은 둘 다 사람을 따뜻하고 건강하게 해주며,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일광욕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 밖으로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하듯, 웃음도 얼굴 근육을 움직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쓸데없이 웃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만 쓸데 있게 웃으면 좋은 약으로 기능한다”며 “집에 들어가자마자 억지로라도 박장대소할 것”을 권유했다. 힘들더라도 ‘가족을 위해서’라는 목적을 갖고 웃으면 스스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웃음을 내장운동이라고 했다. 내장을 흔드는 내면의 조깅인 셈이다. 몸에 변화가 생기며 혈액순환이 잘 돌아서 몸에도 좋다. 웃음으로 ‘몸짱’ ‘얼짱’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행사 참가자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행사 시작 전, 날씨처럼 어두웠던 참가자들의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안 쓰던 얼굴 근육이 어색하긴 해도 열심히 움직이며 크게 웃고 기뻐했다.

▲ 김충현 강사의 설명에 따라 웃는 법을 배우고 있는 시민들. ⓒ 박병일

“거울도 내가 웃어야 웃잖아요”

“‘난 오늘 기분이 좋다! 난 오늘 건강하다! 난 오늘 멋있다! 멋있어도 너~무 멋있다!’ 밖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보고 이렇게 되뇌면 하루가 달라집니다. 거울은 내가 웃지 않으면 절대 웃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거울입니다. 내가 웃어야 거울도 웃을 수 있습니다.”

김충현 강사는 가족 구성원들을 기계에 비유했다. 밥하는 기계가 어머니라면, 돈 버는 기계는 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온, 돈 쓰는 기계가 자식들이라는 비유이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이젠 사람도 기계가 되었으며, 그 안에서 구성원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산다고 말했다. 당연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생활 속에 웃음이 가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우울증과 그에 따른 자살충동을 견딘 사람입니다. 가난하게 자랐으며 대학입시도 실패했고 가정환경도 화목하지 않았습니다. 우울증이 왔고, 버티지 못해 수면제 알약도 먹어봤어요. 근데, 알약을 많이 먹으니 배가 불러와서 결국 실패했습니다. 옥상에도 올라가봤어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죠. 또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감사하며 삽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니, 매일매일이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개그맨 황현희의 우울증 극복법

삐에로의 분장처럼 즐거운 입 꼬리를 만들고 웃지만 속으로는 애태우고 눈물 흘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개그맨이다. 개그맨 황현희 역시 그랬다. 키가 작은 황현희는 자신의 콤플렉스인 ‘작은 키’를 시청자들과 나누며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 키’라는 단점을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깔깔웃음’으로 나누면서 고민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는 강연 중에 최근 생명의 다리로 탈바꿈한 ‘마포대교 동영상’을 찾아서 보여주거나 비밀 공유 어플리케이션인 ‘포스트 시크릿’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비밀을 속으로 숨기지 말고 늘 남들과 나눌 것을 강조했다.

“콤플렉스에는, 같은 대상에 대해 다른 종류의 경험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저의 ‘작은 키’는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놀림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를 통해 개그 소재로 ‘작은 키’를 드러냈고, 그것이 희화화하면서 웃음의 대상이 됐죠. 그 순간 저는 제 아픔과 상처를 시청자들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콤플렉스에 대한 전혀 다른 경험이었죠. 그러자 비로소 제 키를 향하던 원망이 멈춰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속으로 숨기지 마시고 드러내고 공유하세요.”

▲ 자신의 콤플렉스 극복 방법을 이야기하는 개그맨 황현희. ⓒ 박병일

인기 있는 연예인이지만, 그 역시 모든 것을 잃었던 때가 있었다. 2011년 음주운전 사건이었다. 그는 3번 공무원시험에 낙방했지만 개그맨 시험에는 단번에 합격했다. 그가 만든 멘트는 늘 유행어가 됐다. 하지만 그는 2011년 음주운전 혐의로 모든 프로에서 하차하게 된다. 이는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밤 혹시 그가 나쁜 생각을 할까 봐 전화를 걸어주었던 부모님,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늘 걱정해주던 동료들 덕분에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슬픔과 괴로움을 타인들과 공유할 것을 강조했다.

‘자연치유도시’ 제천, 힐링도 공공화

자연치유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제천시가 시도하는 이번 ‘선샤인 제천’ 프로젝트는 웃음치료사업을 통해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앞서나가고자 하는 제천시의 힐링 공공화 프로젝트이다. ‘선샤인 제천’은 일회성 행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상자의 특성을 고려해 일반 시민 대상 프로그램과 우울증환자와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프로그램으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다.

힐링 담론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 치료방법은 대개 개인수양으로 해결하는 것에 그쳤던 게 현실이었다. 제천시가 처음 시작하는 웃음치유 프로젝트는 힐링을 정부정책으로 공공화한 첫 사례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제천시의 높은 자살률에 진짜 끌어내리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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