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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그, 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전진수 프로그래머와 나눈 영화 이야기
2010년 08월 11일 (수) 11:42:31 구세라 기자 koopuha@danbinews.com
영화 <사상최대의 작전>의 원제목은 <The Longest Day>, 곧 <가장 긴 날>이었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기획한 최고사령부 참모들에게 가장 길고도 바쁜 날은 아마 ‘D-1일’이었을 것이다. 준비하는 사람들에겐 축제도 전쟁과 비슷하다. 제천 야외음악당에 자리 잡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무국은 개막을 코앞에 두고 온통 일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영화제 준비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전진수 프로그래머가 시간을 내준 날은 D-3일인 지난 9일. 편안한 티에 모자를 눌러 쓴 그와 복도 한 켠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분주한 분위기에서도 그는 차분하게 음악영화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짜릿한 결말은 없어도 여러 번 보고 싶은 영화

국제경쟁 부문인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8편은 ‘보고 듣는’ 음악영화의 묘미를 잘 살린 영화란다. 그 중에서도 여러 번 봐도 좋은 영화로 오멸 감독의 <어이그, 저 귓것>을 꼽았다. 한국 영화지만 제주도 방언이 많이 나와 자막이 없으면 보기 어렵다. 주연급은 세 명 정도고, 영화의 배경은 모두 제주도 한 동네다. 저예산으로 만들다보니 화려한 모습도 없다. 하지만 한 번 본 사람은 여운이 남아 여러 번 보고 싶어 하는 영화라고. 마을의 조그만 구멍가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영화는 서구화, 도시화, 산업화 되어가는 시대에 적응해가는 소시민들의 일상을 전한다. 짜릿한 결말은 없지만, 잔잔한 일상을 담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화란다.

   
▲ <어이그, 저 귓것>의 한 장면 ⓒJIMFF

음악다큐멘터리들로 엮은 ‘뮤직 인 사이트’ 섹션 가운데 요르크 분츄 감독의 <클라우스 부어만과 비틀즈>는 전진수씨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는 귓가와 입가를 맴도는 음악과 함께 한 시대를 살고 간 다양한 예술인을 떠올릴 때 행복하단다. 클라우스 부어만은 비틀즈의 음반 ‘리볼버 Revolver’의  앨범자켓 디자인을 했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음악가였다. 1960년, 당시 예술학교 학생이었던 클라우스 부어만이 함부르크에서 비틀즈와 만났고, 그 이후에는 존 레논 밴드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잘 알려진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면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뒷이야기와 인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다. 클라우스 부어만 외에도 폴 메카트니, 링코 스타, 컬리 사이먼, 랜드 뉴먼 등을 만날 수 있다.

   
▲ <클라우스 부어만과 비틀즈>. 음반 '리볼버 Revolver'의 앨범자켓 디자인도 눈에 띈다. ⓒ JIMFF

그는 70년대와 80년대의 록과 팝 음악 명반들의 탄생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주제와 변주’ 섹션도 추천했다. <U2 - 조슈아 트리> <퀸 - 어 나잇 앤 디 오페라> <도어즈 - 더 도어즈> <핑크 플로이드 -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엘튼 존 - 굿바이 옐로우 브릭 로드> <존 레논 - 플라스틱 오노 밴드> 6편이 담겼다. 개봉 시기는 오래 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다양한데 모두 워낙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이야기여서 흥미진진하다고. 그는 프로그래머로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 보람을 느낀 섹션이라고 말했다.

   
▲ 다큐멘터리 '주제와 변주' 6개 작품. ⓒ JIMFF

영화와 뗄 수 없는 충무로 태생

영화제 이야기를 듣다보니 전진수 프로그래머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그는 어떻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프로그래머가 되었을까? 87년 대학을 다니면서 연출부 생활을 시작했다. 학부 때 철학을 공부했던 그는 동국대 영상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90년대 초는 한국영화가 굉장히 힘든 시절이었다. 영화로만 먹고살기 힘들어 음악칼럼을 썼던 경험을 인정받아 삼성전자 영상사업단에 들어갔다. 음반 PD로 클래식 음악CD를 만들다가 선배와 영화잡지를 만들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공부를 더 하고 싶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2000년이었다. 당시에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단다. 좋은 기회에 전주영화제에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이리저리하다보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흘러들어왔다’며 수줍게 웃었다.

        
▲ 영화 <바보들의 행진>과 <화녀> 포스터 ⓒDAUM

그는 초등학교 때 벌써 삼사백 편의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TV로 틀어주는 영화가 거의 전부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엄청난 수다. 뭔지도 모르고 본 영화도 많았지만 그때부터 영화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영화와 가까워진 계기는 또 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감독이 친척이었고, 앞집에는 영화 <화녀>의 김기영 감독이 살았다. 게다가 그는 충무로에서 태어나 자란 충무로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가 영화를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영화하면 ‘딴따라’라는 인식이 많았다. 그래도 그는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가 좋았고, 지금 원하는 대로 영화인의 삶을 살고 있다.

프로그래머는 직접 영화를 보고, 영화제 프로그램으로 기획할 작품을 고른다. 당연히 해외출장을 자주 간다. 전진수 프로그래머는 올해 칸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 다녀왔다. 큰 영화제에는 프로그래머들이 모이는 ‘필름 마켓’이 있는데, 그야말로 영화를 보는 게 일이다. 하루에 영화를 6편씩 볼 때도 있어 여러 영화의 내용이 ‘짬뽕’이 되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한다. 딱히 해외 영화제라고 해도 즐기지 못하는 셈이다.

“혼자 보는 영화가 더 재미있어”

그래도 영화는 재미있단다. 특히 혼자 보는 영화. 대부분 영화인들은 영화를 둘이서 보지 않는다고. ‘텍스트로서 영화’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둘이 보면 재미없는 거라고 믿는단다. 그는 영화제 중에서도 11월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음악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추천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품이 많지 않고, 마켓이 따로 없어 즐기면서 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제라는 점에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비슷하다.

프로그래머지만 그도 자신의 영화 한 편 정도는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창작욕’이란다. 프로그래머 일을 하면서 시나리오에 집중하기는 힘들겠지만, 나중에 꼭 한 번 만들고 싶은 것이 ‘음악 다큐멘터리’다. 그의 음악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을 날을 기대해 본다.
 
* 26개국 84편의 영화와 30여 회의 음악공연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아시아 최초, 국내 유일의 음악영화제는 8월 12일부터 17일까지 충북 제천시 일원에서 열린다. 

전진수 프로그래머가 <단비뉴스>에 추천하는 영화 5편

1) 브랜 뉴 데이 Bran Nue Dae
Australia, 2009, 88min, 35mm, color, Drama
Director 레이첼 퍼킨스 Rachel Perkins

   
▲ <브랜 뉴 데이 Bran Nue Dae>의 한 장면 ⓒJIMFF

호주 서해안을 배경으로 한 성장영화다. 집을 찾는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 형식의 코미디 뮤지컬을 영화화했다. 1969년 여름, 호주의 오래된 항구 마을 브룸에 주인공 윌리가 살고 있다. 윌리의 엄마는 아들을 미션스쿨로 보내지만, 윌리는 치기어린 반항을 하다 벌을 받고 학교에서 도망친다. 실망할 엄마를 떠올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전진수의 한마디 : 꽃처럼 만발하는 음악, 스펙타클한 볼거리, 빠져드는 이야기의 조화

2) 엘렉트로 게토, 부시도 이야기 Electro Ghetto
Germany, 2010, 94min, 35mm, color, Drama
Director 울리 에델 Uli Edel

   
▲ <엘렉트로 게토, 부시도 이야기 Electro Ghetto>의 한 장면 ⓒJIMFF

독일의 최고 래퍼 부시도는 순회공연 중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베를린의 게토에서 자란 어린 시절 학교에 가는 대신 마약을 팔던 일과 청소년기의 범죄 때문에 감옥생활을 전전한 오랜 기억들이 떠오른다. 특히 부시도는 아버지가 자신 앞에서 어머니를 구타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독일의 최고 래퍼가 되는 데 성공한다.

전진수의 한마디 : 울리 감독이 담아낸 래퍼 음악으로 꾸며지는 영화, 그야말로 때깔 난다.

3) 피아노매니아 Pianomania
Germany, 2009, 93min, 35mm, color, Documentary
Directors 릴리안 프랑크 Lilian Franck, 로베르트 시비스 Robert Cibis

   
▲ <피아노매니아 Pianomania>의 한 장면 ⓒJIMFF

소리의 신비한 세계를 향한 재기 넘치는 피아노 조율사 이야기다. 거장이 기호에 부합하는 적절한 품질을 지닌 좋은 악기를 찾고, 피아니스트와 조율을 위해 정열을 쏟는 피아노매니아를 만나 보자. 세계적 피아노제작사 스타인웨이 앤 선즈의 수석 테크니션인 슈테판 크뉘퍼가 랑랑, 알프레드 브렌델, 루돌프 부흐빈더 등 세계적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하는 독특한 작업과정을 엿볼 수 있다.

전진수의 한마디 : 까칠한 피아니스트를 다루는 조율사의 실력을 평가해보라.

4) 부활! 팻 마티노 Martino Unstrung
UK, 2008, 82min, Digi-beta, color, Documentary
Director 이안 녹스 Ian Knox

   
▲ <부활! 팻 마티노 Martino Unstrung>의 한 장면 ⓒ JIMFF

전설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팻 마티노는 사고로 뇌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 수술로 생명은 구할 수 있었지만, 모든 기억과 감정, 그리고 연주 능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오랜 방황 끝에 놀라운 힘과 예술성으로 무장하고 컴백한다. 지금껏 알려져 왔던 모든 의학적 지식들을 의심하게 만들어 더 빠져들게 만드는 이야기. 신경심리학자 폴 브록스는 인간 조건 근저에 자리한 기억, 자아, 창의성의 신비를 탐구한다. 마티노가 직접 영화의 멋진 사운드트랙을 제공했다.

전진수의 한마디 : 기타코드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아티스트의 감동적인 극복 스토리!

5) 뿌리를 찾은 연주 Play for the Past
Netherlands, 2010, 55min, Digi-beta, color, Documentary
Director 폴 리그터 Paul Rigter

   
▲ < 뿌리를 찾은 연주 Play for the Past>의 한 장면 ⓒJIMFF

27세인 라비니아 마이어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하프연주가다. 어릴 때 한국에서 입양돼 네덜란드에서 성장했다. 모국에서 열리는 신년콘서트에 초대되어 연주를 하게 된 그녀는 한국 체류기간에 숨겨진 과거와 가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이 왜 서울에 와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는데.

전진수의 한마디 : 하프 연주자 마이어가 한국에 와서 아버지를 만난다. 음악가의 삶과 입양 이야기가 잘 버무려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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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파스 (121.XXX.XXX.155)
2010-08-13 17:10:34
영화제에 꼭 가보고 싶게 만드는 기사네요. 주말에 시간내서 꼭 가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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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우왕 (220.XXX.XXX.23)
2010-08-13 23:59:49
감독이 추천하는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영화일까요ㅎㅎㅎ
꼭 한 번 보고싶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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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꿈과희망 (210.XXX.XXX.66)
2010-08-12 00:26:11
음악과 영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프로그래머가 추천하는 영화라면 정말 한번쯤 볼만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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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와우 (220.XXX.XXX.250)
2010-08-11 13:52:13
브랜뉴데이 사진이 엑박입니다; 아무튼 프로그래머가 직접 추천하는 영화라 그런지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기대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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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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