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홍구 서경식 교수와 함께 한 ‘저자와의 만남’

"장기하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게 있죠. '(넌) 깜짝 놀랄 거다. (난) 별일 없이 산다.' 후쿠시마 사건이 일어나고 심지어 생중계도 됐는데, 이런 문제에 별일 없이 산다는 게 가능한가요. 둔감한 것인지, 대단히 의연한 것인지."

지난 18일 저녁 서울 공평동 평화박물관 전시실. 100여명의 청중과 둘러앉은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교수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 '후쿠시마 이후의 삶' 저자 한홍구(좌), 서경식 교수(우). 두 교수는 입 모아 말한다. '원전과 더불어 사는 삶은 불가능하다.' ⓒ 강태영

2011년 3월 지진해일의 여파로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에서는 여전히 방사능 물질이 새어나와, 원전 반경 20킬로미터(km)는 사고수습을 위한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장정욱 마쓰야마대 교수 등 현지 활동가들이 전하고 있다. 원자로 내부탐사를 위해 투입한 로봇조차 방사능으로 작동을 멈추고, 녹아버린 연료봉을 식히는 데 쓴 물과 지하수가 섞여 방사능 오염 폐수가 하루 400톤(t)씩 배출되고 있다고 한다. 사고지역 주민 가운데 약 15만명은 아직도 인근 가설주택이나 임대주택에서 피난살이 중이다. 후쿠시마 어린이들의 갑상선암 발병사례와 발병확률이 증가했다는 소식, 암담한 현실에 좌절해 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도 이어졌다.

여전히 원전 신화에 빠져있는 한국과 일본

사고 직후 독일을 비롯한 몇몇 나라는 ‘탈핵’을 선언하고 원자력발전소의 점진적 폐쇄와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구조전환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작 사고가 일어난 일본이나 ‘원전대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국, 중국은 이런 현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안전하고 값싼 원전‘의 신화에 빠져있다.

한 교수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서경식(도쿄경제대 현대법학부),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와 함께 후쿠시마 2주기에 맞춰 출간한 <후쿠시마 이후의 삶>은 이런 심란한 현실에 대한 진단과 성찰을 담았다. 한국인, 재일한국인, 일본인이라는 다른 배경을 가진 세 교수는 2011년 6월 후쿠시마를 시작으로 한일 양국의 역사 현장을 누비며 대담을 이어갔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2·3세가 살고 있는 경남 합천, 4.3양민학살의 현장 제주, 미군기지 이전 논란이 뜨거운 ‘일본 안의 식민지’ 오키나와 등을 돌며 원자폭탄, 전쟁, 식민주의라는 재앙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를 진단했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하는 물음을 서로에게 던졌다. 그 결론 중 하나는 ‘원전과 더불어 사는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날 3시간여에 걸친 ‘저자와의 만남’에서 한 교수와 서 교수는 청중들의 뜨거운 질문 공세에 때론 심각한 표정으로, 때론 재치 있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한 참가자가 “북한이 핵 이야기만 하면 버럭 하면서 왜 우리는 핵발전소를 아무 일 없는 듯 가동하고 건설하느냐”고 묻자 한 교수는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 '후쿠시마 이후의 삶' 표지. ⓒ 반비

"그렇죠. 훌륭하십니다. 후쿠시마를 주제로 책을 낸 출판사의 걱정이 컸는데, 오늘 이렇게 많이 오신 분들이 한국사회의 예외적 소수가 아니라면 좋겠네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수자이길 바랍니다."

이날 대화의 주제는 ‘고통의 상상력’이었다. 사고 당사자는 일본이지만 우리가 일본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상상력이 없을 때 사고의 공범이 될 수도 있다고 한 교수는 말했다. 서경식 교수는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정부와 원전업계, 체제순응적 언론 등이 쉽게 ‘치유’를 입에 담도록 놔두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전의 피해자와 가해자, 에너지 소비와 생산이 철저히 분리돼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구조를 바꾸는 일이 먼저 이뤄지지 않는 한, 손쉬운 위로나 말 뿐인 치유를 거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 친구, 내 가족이 당한 일이라고 상상해보자

후쿠시마를 보고도 ‘별 일 없이 잘 사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공감’을 주문했다.

"내 친구가, 혹은 아랫집 아이가 다쳤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달라질 거예요."

후쿠시마 사람들에게 닥친 엄청난 고통을 자기 자신이나 가족, 친구의 고통으로 상상해 보는 것이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원전 재앙 구조를 변화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 교수는 ‘앗 뜨거워, 앗 따가워’하며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이들이 책임을 따지고 진상 규명을 위한 행동에 나설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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