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사고 2주기 맞아 추모와 다짐의 탈핵축제
[단비현장] 한수원은 ‘더 안전한 원전 관리에 최선’ 강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기를 맞아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시민이 연대해 핵에너지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의 탈핵축제가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환경운동연합과 한살림연합 등 7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오후 2시 합천평화씨알합창단 공연으로 시작, 탈핵 퍼레이드를 끝으로 6시까지 이어졌다. 시청광장 주변에 가설된 31개의 천막에서는 친환경 로컬푸드 나누기, 재생에너지 만들기 등 ‘지속가능한 경제’를 강조하는 전시와 체험행사도 함께 열렸다.

 

▲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탈핵축제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 이성제

1500여 명의 행사 참가자들은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을 강타한 대지진과 지진해일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 지역이 황폐화하고 방사능 오염이 확산되며 주민 8만여 명이 아직 전국을 떠돌고 있는 사태가 한국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함께 했다. 수명을 다한 노후 원전을 포함, 이미 21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는 현실에서 2030년까지 19기의 원전을 더 짓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이 땅에서 ‘제2 후쿠시마’가 발발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신규원전 건설부지로 지정된 강원도 삼척의 주민들은 이날 행사장에서 원전 반대 서명을 받았다. ‘원전 증설 정책 중단’ ‘노후 발전소 폐쇄’가 적힌 팻말들이 천막 앞에 설치돼 눈길을 모았다.

먹을거리의 안전을 위해서도 탈핵이 필요 
 
“왜 나서느냐고요? 세상에 어떤 정부가 이렇게 시민 건강과 먹을거리 안전을 방치할 수 있는지 오히려 묻고 싶네요.”

녹색당 활동가 신지형(40·여·서울 용산구)씨는 후쿠시마현에서 수출된 수산물이 유아, 초중고 등 각종 집단급식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행사장에서 그는 급식 대상 식품의 안전성 검사 강화를 촉구하는 서명을 받느라 분주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막대한 양의 바닷물이 투입됐고 고농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바닷물이 태평양으로 흘러가 가츠오부시, 가다랑어 등 어류를 오염시켰는데도 우리 당국은 수입 중단 등의 조처에 소홀하다고 신씨는 비판했다. 

원전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면 시민들의 생활자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살림 실무자 좌수일(40)씨는 “에너지가 많이 투입되는 농업 방식을 버리고 (수입 농수산물 대신) 가까운 지역에서 식품을 얻는 식생활이 필요하다”며 “가까운 곳에서 먹을거리를 얻는 것이 곧 탈핵”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한살림, 아이쿱 서울소비자 생활협동조합 등은 에너지절약형 개량화덕으로 고구마와 감자를 굽고 수프와 죽을 끓여 시민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에서는 적정기술을 이용한 화덕으로 고구마를 구워 판매했다. ⓒ 이성제

 

▲ 자전거 발전기 등 적정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부스가 행사장 곳곳에 마련됐다. ⓒ 강태영

행사장 한편에서는 ‘자전거 발전기’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모았다. 김영기(7·서울 은평구)군이 힘껏 페달을 밟자 계측바늘이 목표치인 220V(볼트) 근처로 차츰 올라왔다. 220V면 스마트폰 충전이나 전구 12개를 밝히는 데 충분한 전력이다. 주변에서 페달을 더 밟아 보라는 응원과 함께 “사람이 에너지를 만드는 거였어?” “신기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태양열을 이용한 장난감 자동차 경주와 핸드폰 충전 등 재생에너지를 소개하는 천막도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녹색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김세영(35)씨는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는) 적정기술, 적정 에너지를 잘 이해하고 안전한 친환경 먹을거리에 대한 소중함도 알게 되면 (값싼 에너지를 대량공급하기 위해 활용되는) 핵 발전의 위험에도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나눔문화 '나누는 학교' 활동가와 어린이들이 에너지 전환 소망을 담은 현수막을 만들고 있다. ⓒ 강태영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후손도 참가

이날 행사에는 일제시대에 강제징용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조선인의 유족도 일부 참가해 원자력의 위험을 증언했다. 당시 조선인 원폭 피해자는 어림잡아 7만 명. 고국에 살아 돌아온 4만여 명 중 전국에 2673명이 생존해 있으나 ‘피폭 화상’을 입은 그들은 번들거리는 살갗 때문에 전염병 환자 취급을 받았고, 정부로부터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원인 모를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며 매달 정부의 진료보조비 10만원에 의지해 살고 있다. 원폭 피해는 대물림이 된다는 데 더 큰 비극이 있다.

한국원폭피해2세환우회 한정순(55·여·경남 합천)회장은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원인 모를 희귀병 등으로 고통 받는 2세, 3세들은 국가로부터 피해자 인정조차 받지 못한다”며 “19대 국회에서는 특별법이 꼭 제정되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한편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원자력발전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사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수원의 박범수 기업홍보부장은 “지난해 12월 고리원전 1,2호기의 해안방벽 높이를 현재의 7.5미터에서 10미터로 증축하고 해안방벽으로 막을 수 없는 발전소의 주요 출입구간에는 차수문을 설치해 지진해일에 의한 침수를 방지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사고가 났을 때 원전에 비상전력을 공급하는 디젤발전기 등 주요 기기가 침수되지 않도록 2014년 말까지 방수문, 방수형 배수펌프 등을 모든 원전에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전연료가 손상돼 수소가 대량으로 발생하더라도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기가 필요 없는 최신형 수소 제거설비도 모든 원전에 설치 중이며, 큰 지진이 발생하면 원자로가 자동 정지되도록 하는 시스템도 모든 원전에 갖출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의 안전성을 한층 강화하는 계획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울진원자력발전소 홍보관에 설치된 한국 표준형 원전 축소판. ⓒ 김태준

한수원은 또 일부 직원들이 정전사고 은폐, 납품비리, 마약투약 혐의 등 각종 비리와 범죄에 연루됐던 문제와 관련해서도 강도 높은 내부혁신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한수원의 하변길 소셜미디어팀장은 “예비전력이 10%도 안 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구조상 전력 생산의 31%이상을 차지하는 저렴한 원전을 포기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한수원도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노력하면서 신재생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bridge) 에너지’로서 원전을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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