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있는 서재]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글쓰기가 언론인의 영역이라면 글짓기는 소설가의 영토입니다. 있는 사실을 쓰는 것이 글쓰기라면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게 글짓기입니다. 그러나 언론인도 소설가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단비뉴스>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서재’ 개관을 기념해 이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소설을 읽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이봉수 교수 첨삭을 거쳐 이곳에 실립니다. 우선, 방학 동안 학생들이 소설을 읽고 써낸 에세이 중 몇 편을 골라 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

외할머니의 아버지가 제주43 때 돌아가셨다는 것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제주대신문> 기자 때, 4ㆍ3 유족들을 만나고 위령제도 몇 번 쫓아다녔지만 정작 내 가족사는 알지 못했다. 가족들이 4ㆍ3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ㆍ3은 침묵의 역사였으니. 외할머니집에 갔을 때 우연히 제주4ㆍ3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할머니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아버지가 4ㆍ3 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외할머니의 아버지는 한 극단의 단장이었다. 당시에는 꽤나 의식 있는 축에 속했을 테다. 4ㆍ3이 발발하자 군경은 마구잡이로 제주사람들을 잡아들였고, 지식인들은 우선 체포대상자였다.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제주4ㆍ3 때 숨진 사람이 3만 명에 이르니 우리 가족사는 비단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지슬>의 오멸 감독도 4ㆍ3의 아픈 가족사가 있다. 한 인터뷰에서 오 감독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큰고모가 4ㆍ3 때 도망 다니다 희생당했음을 영화 ‘지슬’을 찍고 나서야 비로소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오 감독은 제사 형식을 빌려 극을 전개한다. ‘신위(神位)’, ‘신묘(神廟)’, ‘음복(飮福)’, ‘소지(燒紙)’로 나뉜 네 개 장을 통해 희생된 영령을 모시고, 굿을 하고, 제사 음식을 나눠 먹고, 지방을 태운다. “4ㆍ3사건 당시 돌아가신 분들의 제사를 지낸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는 그의 의도가 섬세하게 영화에 스며들어 있다.

▲ 영화 <지슬> 포스터. ⓒ 지슬 심는 사람들

죽음에 대한 기록은 곧 ‘애도’를 뜻한다. <지슬>은 ‘시대적 측면’에서 애도다. 이념 갈등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이 애도의 대상이 된다. 이 영화에서는 제주4ㆍ3을 ‘항쟁의 역사’로도, ‘폭동의 역사’로도 그리지 않는다. 그저 제주4ㆍ3의 슬픔을 ‘흑백’이라는 절제된 영상으로 표현한다. 오 감독은 애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밝혔다. 영화에서는 군대에 끌려 온 군인도, 한라산에 숨은 산사람과 양민들의 모습도 그리며 이들 모두를 위로하고 애도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한 것도 시대가 주는 비극의 참담함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지슬>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데에는 ‘죄의식’도 밑바닥에 깔려있다. 애도의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 또는 ‘살아 있는 자’가 느끼는 미안함이 촘촘하게 엮여있다. 영화 안에서는 양민을 학살한 군인의 죄의식, 만삭 아내를 동굴 안에 남길 수밖에 없는 남편의 죄의식, 어머니를 집에 두고 산으로 간 아들의 죄의식이 그려진다. 아들이 마을로 돌아갔을 때 불에 탄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고, 어머니가 품고 있던 ‘지슬’(감자의 제주어)을 들고 오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애처롭다.

▲ 소설책 <엄마를 부탁해> 표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제주4ㆍ3 때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잃고도 쉬쉬하며 살았던 제주인은 물론이고 그들의 말 못할 역사를 외면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뭍사람들도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미국인 또한 영화를 본다면 미군정의 개입으로 발발한 제주4ㆍ3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국을 돌아보며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지슬>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하고,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에 오른 것은 그런 죄의식이 가슴을 쳤기 때문이 아닐까?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2011년 미국에서 출간돼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독자들 마음을 울린 까닭은 ‘저항할 수 없는 죄의식’이 소설 밑에 깔려 있기 때문일 터이다. 가족 안에서 희생된 어머니에 대한 애도와 이에 따르는 죄의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쥐어짜게 했을 것이다. <지슬>이 미국 최대 독립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죄의식이 단단하게 뭉쳐져 있는데다, 표현 방식은 해학적이면서 은유적이다. <지슬>이 우리나라와 미국뿐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가능성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슬>은 3월 1일 제주에서 먼저 개봉된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상영은 3월 21일부터다. 오멸 감독은 “제주사람들에게 먼저 보여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제주4ㆍ3의 원혼을 먼저 위로하고, 제주사람들과 함께 애도하겠다는 속뜻이 담겨있다. 나는 운 좋게 영화를 미리 봤지만, 이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어진다. 가슴 깊은 곳에 할아버지에 대한 ‘애도’와 ‘죄의식’이 여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개봉일, 할머니와 함께 다시 영화관에 갈 생각이다.

▲ 오멸 감독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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