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알권리'로 위험 줄이는 노력해야"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 초 실리콘밸리 지역의 예를 들며 화학물질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정부 뿐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씨가, 안철수씨가 대통령이 됐다면 ('지역사회 알 권리'로 화학물질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을까?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면 그들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시민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 권우성

"1980년대 초 실리콘밸리 공장에서 나온 물질들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기형아 출산·식수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냐'며 기자가 깜짝 놀라자, 김신범(44)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은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좀 더 설명해드릴게요. 주민들이 '발암물질은 지하수로 흘러가지 않게 하자'고 요구하면서 스스로 기준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물질이 있고, 무슨 제품에 이러한 물질들이 쓰이는지 표시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내용의 '주민발의법안 65호'까지 나왔어요. 그걸 주도한 두 명이 배우 제인 폰다 부부였습니다. 당시 제인 폰다가 직접 주민 서명을 받으러 다닌 사진도 있어요. 투표 결과 찬성이 약 70%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다 떠날 것이다', '모든 발암물질을 제품 라벨에 다 표시하면 번거로워진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법이 발효된 후 오히려 기업들이 화학물질 사용을 줄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비슷한 법이 워싱턴주, 메인주, 미네소타주에서 생겨났다. 캐나다 토론토시도 비슷한 내용의 조례를 2008년 제정해 시행중이다.

김 실장은 "이곳들은 지역사회에 알 권리를 제공하면서 기업을 견제하고 위험을 줄였다"며 "'삼성이 이렇게 많은 발암물질을 쓰고 있어?', '삼성 같은 1위 기업이 유해물질 관리를 다 하청업체에 맡긴다고?'라는 이야기를 해야 기업이 움츠러든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고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제도를 촘촘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기업이 악독해서 나쁜 화학물질을 찾는 게 아니다"라며 "비용을 줄이려다 안전이 뒤로 밀렸다, 곳곳에 구조적으로 자리잡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직접 생활협동조합을 꾸려 유통단계의 거품을 줄이고, 안전한 식품을 구입할 수 있듯, 화학물질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도 지역주민들이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정보'를 요구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처럼, 한국사회 구성원들도 '왜 그런 물질을 써야 하는데?'란 질문들이 던져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씨가, 안철수씨가 대통령이 됐다면 ('지역사회 알 권리'로 화학물질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을까요?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면 그들도 안 했을 겁니다."

김 실장은 대학원에서 산업보건을 공부한 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고엽제 등 유해물질을 연구했다. 그는 '환경미화원들의 씻을 권리' 캠페인 등을 추진했고,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도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14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정부가 모든 걸 할 수 없다, 지역주민들이 나설 때 위험 줄어"

- 최근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006년쯤 여수산업단지에서 몇 년간 발생한 사고를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는 산업단지처럼 공장이 밀집한 지역에서 사고가 난다고 봤지, 상주나 청주 같은 곳에서 사고 날 거라고는 상상 못했다. 어쩌면 당시에도 사고가 났지만 몰랐을 수 있다. 한국사회 산업구조가 위험을 아웃소싱하는 걸 막아내지 못하고 방치한 측면이 있다.

2004년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 8명이 노말헥산 중독증과 다발성 신경장애(앉은뱅이병)를 앓던 사고가 있었는데, 그들이 다루던 게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들이었다. 이번 삼성전자 불산사고도 정비 쪽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일어났다. 문제는 석유화학단지에선 정비의 아웃소싱화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끝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고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 직접 안전을 챙기는 게 아니라서 생산보다 안전이 뒤로 밀린다. 산업적으로나 기업 곳곳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은 일이다."

-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도 최근 '위험작업의 아웃소싱화가 작업안전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경영이 어렵다'며 하도급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비용을 줄이는 것이 선을 넘었다. 못 살겠다고 비명 지르는 중소기업들이 위험을 다 안고 가는데, 과연 사고가 줄어들까, 늘어날까. 한국사회 구조가 지나치게 이윤 중심이어서 지속가능성을 상실한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크다. (은수미 의원 지적처럼) 아웃소싱에 제동을 거는 장치들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소중하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어느 정도일까? 먼저 사회의 태도, 정부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

- 국무총리실에서 지난해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대책'을 내놓은 후에도 청주와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정부 대책은 어떻게 보는가.

"어떤 형태로든 보완은 이뤄지고 있다. 이런 큰일을 겪었는데 어떤 정부도 생색만 내려고는 하지 않으니까. 불신만 하면 못 산다(웃음). 그런데 그 변화들이 어느 정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국무총리실 대책은 그동안 잘 움직이지 않았거나 누구 책임인지 불분명했던 것들을 정리해줬다. 하지만 과연 이게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작동할까? 청주시청에서 화학물질 사고를 담당하는 분이 환경과 소속인데 혼자서 수질과 유독물 관리를 맡고 있더라. 중앙에서 대책을 세워도 지방정부까지 잘 내려가기 어렵다.

게다가 위험 자체를 감소시키는 정책은 여전히 없다. 워낙 해놓은 게 없다보니 '사고가 나면 어떻게 빨리 대응할까' 하는 지침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사고는 빵빵 터질 거다. 근본적으로 위험을 낮추는 고민을 해야 하는데, 그 시기가 아직 안오고 있다."

- 현재 정책으로 화학물질 사고 등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보완해야 할까.

"정부가 모든 걸 알아서 할 수 없다. 정부가 한계를 인정하고 시민들에게 (안전한 사회를) 함께 만들자며 역할을 나누는 게 위험을 관리하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그게 바로 '지역사회의 알 권리' 문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1980년대 초 실리콘밸리 공장에서 나온 물질들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기형아 출산, 식수 문제가 불거졌다. 주민들이 '발암물질은 지하수로 흘러가지 않게 하자'고 요구했다. 무척 상식적인 일 아닌가?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레 '발암물질을 쓰는 곳은 그 사실을 공개하게 하자', '무엇이 발암물질인지, 공개해야 할 기준은 무엇인지' 등으로 질문이 이어졌고, 1986년 주민발의법안 65(Proposition 65)가 발의됐다. 그걸 주도한 두 명이 배우 제인 폰다 부부였는데, 당시 제인 폰다가 직접 주민 서명을 받으러 다닌 사진도 있다. 투표 결과 찬성이 약 70%로 압도적이었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민 여러분, 이러면 실리콘밸리가 이사가야 한다', '모든 제품에 발암 표시를 하면 라벨이 무거워져 선반대가 내려앉을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1~2년 후에 오히려 기업들이 유해물질 사용을 줄였다. 주민발의법안 65호는 주민들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도록 해서 기업들이 소송 걱정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제품 경쟁력 문제가 부각됐다. 발암물질 등이 들어간 제품을 만들면 '더 좋은 제품을 못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된 거다. 그래서 이 법은 '부끄러움에 의한 규제'라고도 표현한다."

▲ ⓒ 권우성

"삼성이 발암물질을 이렇게 많이 써?... 주민들이 이런 이야기 자꾸 얘기해야"

- 한국에서도 공단 오염 문제 등을 지적하면 '땅값 떨어진다, 공장들이 안 들어오면 어떡하냐' 식의 반대론이 나오는데 미국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럼 국내에서도 이 같은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불가능한 제도는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25개 물질을 정해서 생산·보관은 물론 폐기하는 곳까지 보고하고, 그 내용을 주민들이 언제든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지역주민들이 알게 되면 (기업과) 갈등이 생긴다. 그럼? 줄이는 게 답이다. 기업이 위험한 물질을 쓴다면 주민들이 걱정한다. 그 필요성을 충분히 설득 못한다면 줄이라는 것이다.

삼성을 봐라. 이번 불산 사고 때 경찰이 현장에 들어가는 걸 막았다더라. 그들에게 정부는 갑이 아니다. 소비자다. 그럼 삼성이란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삼성이 이렇게 많은 발암물질을 쓰고 있어?', '삼성 같은 1위 기업이 유해물질 관리를 다 하청업체에 맡긴다고?'라는 이야기를 해야 기업이 움츠러든다."

- '지역사회의 알 권리'란 관점에서 화학물질 안전 문제를 다루는 또 다른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캐나다 토론토시는 2008년 '우선순위 유해물질 25종을 다루는 업체들은 매년 시에 보고하는 한편 사용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례를 정했다. '켐트랙(ChemTRAC)'이라고 불리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시민 누구나 웹사이트에서 보고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해당업체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도 있다.

토론토시는 켐트랙이 '기업과 지역주민의 관계를 향상시킨다'고 소개한다. 화학물질 사용량을 줄이는 노력 등을 시민들에게 하면 지역사회가 기업의 친환경적 경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앞서 '화학물질 관련 정보 공개로 갈등이 생기면, 줄이는 게 답'이라고 한 것과 맥락이 같다."

-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텐데, 한국 사회에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기업이 악독해서 나쁜 화학물질을 쓰는 걸까? 아니다. 그렇다면 함께 답을 찾아야 하는 동반자일 수 있다. 그들이 왜 사고를 내는 구조에 놓여 있을까? 하청업체의 경우 낮은 납품단가에 맞추다보면 안전관리를 허술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 구조를 국민들이 나서서 바꿔주지 않으면, 기업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값을 제대로 지불했을 때 정상적인 안전조치들이 취해지는지 아닌지 보고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생활협동조합의 경우 거기에서 파는 농산물이 훨씬 싸다. 왜 그럴까? 중간 마진을 걷어내면서 가격이 정직해졌다.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게 대안 같다. 그러려면 많은 질서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화학물질 문제는 몇 기압에, 섭씨 몇 도에 버틸 수 있는 반응기를 만드는 그런 조치로 풀 수 없다. '왜 이게 여기 있어야 하는데? 왜 불산을 써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면 양을 줄일 순 없을까?' 이처럼 상식적이면서도 단순한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일, 상식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이 해결책이다.

현재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책은 사고대응 매뉴얼이다. 그럼 국민들이 '사고 대응이 아니라 예방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한다. 아직 그 목소리까지 나오지 못했기에 한국 사회는 문제가 줄지 않고 오히려 커지리라 본다."

"기업이 악독해서 나쁜 화학물질 쓰는 걸까? 아니다"

-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부터 위험을 '지역사회의 알 권리'로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 정부의 역량을 본다면…(고개를 갸웃거리며) 사고 대응 매뉴얼 잘 집행하고, 사고가 나면 있는 그대로 알려줬으면 한다. 정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으니까(웃음), 그만큼만 해도 이전 정부보다 낫지 않을까.

그런데 앞으로 이런 사고가 계속 터질텐데, 언제까지 잘 막을 수 있을까? 최소 10년 계획 같은 전략을 수립해야 사고에 대응함과 동시에 위험이 줄어든다. 현재의 위험은 정부가 대응할 수준을 넘어선 게 아닌가, 얼마나 더 죽어야 우리는 문제들을 바로잡을까, 이런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모두가 옳은 길을 만들어내는 일, 같이 사는 사회 만들기 등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

- 현대사회는 결국 구성원들이 함께 '위험'을 얼마나 감당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문재인씨가, 안철수씨가 대통령이 됐다면 ('지역사회 알 권리'로 화학물질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을까?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면 그들도 안 했을 거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안전은 '앞에 나서지 마라'였다. 하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동네에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 위험의 해결책을 아이들에게 찾으라고 넘기는 건 비겁한 일 아닐까. 적어도 내년 지방선거에선 '우리 동네 공장들의 정보를 공개하는 정치인을 뽑자' 하는 운동이라도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

토론토처럼 환경운동과 노동건강권 운동이 오래된 곳도 조례 제정까지 12년 걸렸다. 동의를 얻기 위한 길을 찾아가는 과정, 그 끈질김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많이 부럽기도 하다. 어쨌든 나도 아이가 있는데, 지금 사회를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 지역사회가 '안 되겠다, 우리 동네 기업은 반드시 정보 받아내고, 지도를 그려서 알아야겠다'며 움직일 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면, '(지금껏 나온 대책들이) 이게 맞는 해답인가'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 박소희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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