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단 '희망FC', 하늘 높이 꿈을 차올린다

유난히 한파가 기승을 부린 올 겨울. 남쪽 지방인 경남 창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중리초등학교는 낙동강 지천 옆에 있어 바람까지 세게 불 때가 많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이곳에 축구 장비를 갖춘 아이들 한 무리가 모여든다.

1월의 한 일요일, 오늘은 일곱 명이 전부다. 축구를 하기에는 적은 숫자지만 개의치 않는다. 초등학생답지 않게 눈빛들이 매섭다.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몸을 풀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 각종 연습에 들어간다. 공을 잘 간수하기 위한 드리블, 패스된 공을 발과 가슴 등으로 멈추게 하는 트래핑(trapping), 볼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차는 리프팅(lifting)까지. 감독의 훈련 방법과 따라 하는 아이들 모두 꽤 전문적이다. 경남지역에서 '공 좀 찬다'는 아이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축구단 이름은 '희망FC'.

▲ 희망FC 선수들이 일요일 아침마다 구슬땀을 흘린다. ⓒ 박기석

아이들 욕구와 재능에 맞춘 복지사업

'희망FC'는 축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의 감독 임유철(40)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경남지부에 사업을 제안해 지부가 지원하는 조손 가정, 편부모 가정 등 소외된 계층의 4·5·6학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지난 2월 축구단이 꾸려졌다.

당시 경남지부 사업위원장이던 함안 사랑샘지역아동센터장 이은경(여·47) 씨가 단장을 맡고 축구 지도자 김태근(40)씨가 감독이 돼 아이들을 선발했다. 축구의 생리를 전혀 몰랐던 이 단장이 어떻게 축구단을 운영하게 됐을까?

"지금까지는 아동 복지나 교육 등이 모두 어른들 머리에서 나왔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잘 맞는 것도 있었지만 안 맞는 것이 더 많았죠. 저는 정책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욕구와 재능에 맞는 복지사업을 진행하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제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저희가 꼭 성공적으로 정착해야 해요."

이렇게 뽑힌 아이들이 19명. 그러나 축구단 운영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경남 곳곳에 살다보니 훈련장에서 거리가 먼 아이들은 점점 오지 않게 됐다. 저학년인 4학년 학생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기도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 대상이라 부모님들이 자존심 상해 하고 불편함을 느껴 아이들이 억지로 포기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함께 운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현재 열 명 남짓이다.

김태근 감독은 초등학교 때 시작한 축구로 프로선수와 지도자 생활까지 두루 경험했다. 지금은 주중에 회사를 다니며 매주 일요일마다 김태근 축구교실을, 지난 2월부터는 '희망FC'까지 맡고 있다. '희망FC'에는 무료로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김태근 감독. ⓒ 박기석

다부진 체격과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달리 김 감독은 항상 싱글벙글 웃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훈련에 잘 따라오지 못한다고 혼내지는 않는다. 인성과 노력은 '희망FC' 단원에게 실력보다 중요하다.

"다른 데(축구단)서는 실력도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공 못 찬다고 혼나지 않습니다. 연습을 열심히 하고 안 하고 차이로 혼나긴 합니다. 다른 데서는 특별히 칭찬받는 일이 없는데 여기서 연습만 열심히 하고 착하게 생활하면 제가 칭찬을 많이 하니까 애들 눈빛이 달라지죠. 칭찬을 받고 싶다는 눈빛이 보여요." 

단체운동 하면서 사회성 키워

그러나 김 감독이 호랑이처럼 변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예절을 지키지 않고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 그렇다. 김 감독은 운동을 할 때나 일상에서나 항상 예의를 강조한다. 이날도 한 어린이가 점심식사를 하던 중 호되게 혼났다.

"여기가 네 집 안방이가? 어디 사람들 많은데 누워있노. 퍼뜩 안 일어나나?"

이 어린이는 '희망FC'에 들어올 때부터 벌을 많이 받았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 아이들이 어른들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한 티가 많이 났다고 한다. 서로가 날카롭게 반응해 여름 합숙 때는 다툼이 많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 관계와 실력이 크게 좋아졌다. 오늘 혼난 아이도 당돌한 태도가 많이 고쳐졌다고 한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과)는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아이들이 단체운동을 하면서 사회성을 키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실적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은 교류할 친구들이 부족합니다. 학원에 가기도 힘들고 집에 혼자 있기 쉽지요.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 운동에 몰두하니 즐거움에 빠질 수밖에요. 운동을 하는 게 더 즐거우니 자연스레 나쁜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 훈련을 마친 뒤 감독님께 인사드리는 희망FC 단원들. ⓒ 박기석

'희망FC'와 함께 운동하는 김태근 축구교실 회원들과 그 부모님들도 '희망FC' 팬이다. 축구교실에 갑자기 끼어든 축구단이지만 기존 회원들과 잘 어울린다. 축구교실에 아들 다찬(10)군을 3년째 보내고 있는 빈명진(41)씨의 말이다.

"아이들끼리 위화감은 없어요. 김 감독도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고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축구교실 부모들이 '희망FC'를 응원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실력으로 뽑힌 '희망FC' 학생들이 가세해 팀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희망FC'는 2012년 유소년축구클럽리그 경남 남동부 리그에서 준우승했다.

▲ 2012년 유소년축구클럽 경남 남동부 리그에서 희망FC와 축구교실 아이들이 함께 팀을 이뤄 준우승했다. ⓒ 희망FC

축구단 사연 담은 영화도 제작

'희망FC'가 지금까지 운영될 수 있었던 데는 지역사회의 도움이 컸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경남지부는 아이들이 합숙할 수 있는 장소와 숙식을 제공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지난해 여름방학부터 11월까지 금, 토, 일 거의 매 주말을 함께 지냈다. 그런데 11월 이후로는 예산이 부족해 합숙을 할 수 없게 됐다. 경남 전 지역에서 모이기 때문에 합숙 위주로 훈련을 했던 이들은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단장은 훈련장소를 찾느라 백방으로 뛰었다. 이 때 '희망FC'의 소식을 듣고 흔쾌히 운동장을 빌려준 곳이 중리초등학교다.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은 학생들이 운동하기 안성맞춤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임유철 씨는 '희망FC' 활동을 필름에 담아 올 5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남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단 '경남FC'는 팀 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제공했다. 이 단장은 올해 '경남FC'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으려 애쓰고 있다.

"'경남FC'가 원래 금전적인 지원도 약속했는데 도 행정이 흔들리니 투자가 원활하지 못했어요. '경남FC'는 도민구단이라 도지사가 구단을 관리해요. 그런데 김두관 전 도지사가 사퇴하며 구단주 자리가 공석이었어요. 이제 도지사가 새로 뽑혔고 현재는 도지사와 면담을 요청해둔 상태입니다."

이 단장은 올해 목표를 경남 지역의 '새싹꿈터' 유치라고 말했다. '새싹꿈터'는 폐교를 새롭게 꾸며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캠프나 단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새싹꿈터'를 만드는 '드림투게더'는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와 KT, KBS를 비롯한 24개 회원사가 함께 하는 사회공헌 단체이다.

"기업과 정부 단체가 함께 한 드림투게더는 경기도 양평에 '새싹꿈터' 1호점을 만들었어요. 올해는 영·호남에 각각 1개씩 '새싹꿈터' 2, 3호점을 연다고 해 제가 영남권의 '새싹꿈터'를 유치하려 합니다. 경쟁지인 대구는 이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죠. 대구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좋은 경험을 할 여건이 충분해요. 경남지역은 이런 시설이 전혀 없어요. 경남지역에 '새싹꿈터'가 생긴다면 '희망FC'뿐 아니라 주변 여러 지역아동센터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에요. '희망FC'가 다시 합숙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됐으면 해요."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