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노지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 노지원/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1912년 대서양을 횡단하는 첫 항해에서 빙산에 부닥쳐 침몰한 호화유람선 타이타닉. 만일 그 때 배에 탄 사람들이 항로 중에 거대한 빙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운명은 달랐을까. 평화운동가이자 정치학자인 더글라스 러미스는 “지구환경파괴 등을 불사하며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우리는 항로 중에 빙산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속력 질주하는 타이타닉호와 같다”고 꼬집었다. ‘타이타닉 현실주의’로 불리는 러미스의 비유는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가공할 사고를 보고서도 여전히 ‘경제성장을 위해 원전이 필요해’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원전은 위험하다. 한 번 사고가 나면 광범위한 지역에서, 수십 수백 년 동안 두고두고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다.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원전사고는 당시의 즉각적인 인명피해는 물론 지금까지도 암 발생과 기형아 증가 등의 악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역시 인체피폭, 지역폐쇄 등의 직접피해 외에 얼마나 가공할 후유증을 드러낼지 관련국들이 마음을 졸이며 주시하고 있다. 전 세계에 가동 중인 440여기의 원전에서 이미 3건의 대형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나라들은 모두 ‘우리 기술이 최고’라고 주장하던 미국, 구 소련, 일본이다. 우리 정부와 원전 관계자들이 ‘우리는 다르다’며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호언장담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

정부는 무엇보다 원전의 ‘경제성’을 강조하며 원전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고집한다. 일단 원전을 지어 놓으면 수십 년간 상대적으로 값싼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발전 단가’같은 직접비용 외에 노후원자로 해체와 사용후 핵연료 처리, 원전과 방폐장 지역주민을 설득하기 위한 사업비, 사고에 대비한 보험료와 사고보상비 등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감안하면 결코 싸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을 16조원으로 추산하지만, 한 민간연구소가 일본원자력위원회 기준으로 계산했더니 72조원이 나오기도 했다. 사고가 한 번 나기라도 하면 원전을 통해 얻은 경제적 이익과 비교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다.  
 
원전찬성론자들은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이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경제성도 낮지만 햇빛, 바람 등이 늘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공급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얘기다. 원전에 연구자원을 집중하느라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에 소홀했던 우리나라에는 맞는 얘기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박차를 가했던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이미 원전 발전량보다 더 많은 신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신재생에너지 중심 발전은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못한 것이지,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뒤를 따를 것인지, 서유럽의 단계적 탈원전 국가들을 따를 것인지는 이제 정부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라 국민의 토론과 합의에 맡겨야 한다. 원전의 경제성, 안전성을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재생에너지 등 대안에 대해서도 충실한 정보를 토대로 논쟁을 벌여야 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사실 한 때 ‘원전 회귀’를 추구했지만 후쿠시마 사고 후 유권자들의 요구로 ‘윤리위원회’ 등을 통한 전국민적 토론을 거친 끝에 ‘2022년까지 원전 완전폐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스스로 에너지구조를 선택한 독일 국민들은 자기 집 지붕에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고 단열시공을 하는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에너지소비절약에 더욱 자발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박근혜 차기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원전 확대 계획을 그대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를 본 후 ‘안전한 에너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무시한다면 거대한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전찬성론자들이 ‘우리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되뇌고 있지만, 미국, 러시아, 일본의 원전 당국도 모두 빙산은 없다고, 있어도 피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었음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7기 대학언론인 캠프> 참여자가 '원전'을 주제로 제출한 논술 과제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단비발언대'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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